'컬처프로젝트 23 Beck' (6건)


혜성처럼 등장해 90년대 음악 씬의 패러다임을 바꾼 아티스트 벡(Beck)이 드디어 처음으로 한국에서의 공연을 갖게 됐다. 조금 늦은 감이 없진 않지만 최근 작 [Morning Phase] 같은 앨범이 그래미 시상식에서 '올해의 앨범' 부문을 수상하는 등 여전히 그는 현시대에서 가장 중요한 작가라 말할 수 있는 인물이었다. 그리고 이번 내한 공연의 경우 그의 다양한 경력을 골고루 접할 수 있었던 지라 짧지 않은 기간 동안 그의 음악을 사랑해온 팬들의 입장에서는 꽤나 알찬 구성의 공연 아니었나 싶다. ‘뮤지션들의 뮤지션’이라는 타이틀에 걸맞게 이적, 이상순, 장기하와 아이유 커플, 김씨, 호란 등 국내의 유명한 뮤지션, 아티스트들의 모습 또한 볼 수 있었다.





척수손상으로 인해 허리가 좋지 않다는 소식이 있었지만 사실 이번 공연에서는 좀처럼 그런 낌새를 알아차릴 수 없을 정도로 건강하고 활기찬 퍼포먼스를 선보였다. 벡은 스테이지를 화려하게 장식하는 엔터테이너, 그리고 혁명적인 예술가 사이의 모습을 보여줬다. 선곡, 그리고 무대 구성에서는 엔터테인먼트 적인 요소들을 감지케 했는데, 다양한 샘플들을 오려 붙였던 앨범들을 착실하게, 하지만 더욱 임팩트있게 라이브 사운드로 체험하게끔 유도해냈다. 샘플링된 음원 위에 올려지는 연주는 확실히 그 박력이 달랐다. 무엇보다 벡의 현란한 듯 과장되지 않은 춤사위는 볼 때마다 인상적이었다.


무엇보다 한국 팬들을 위한 선곡의 배려가 엿보였다. 현대카드 주최의 공연이었던 만큼 가사에 '현대 차'가 들어가는 1999년도 곡 'Debra', 그리고 최근에는 공연에서 거의 하지 않았던 영화 [이터널 선샤인]의 삽입곡 'Everybody's Got to Learn Sometime' 등을 부르면서 관객들의 높은 호응을 유도해냈다. 심지어 ‘Debra’는 공연 이전에 미리 전달받은 셋리스트에도 없었던 곡이었다.



관객들부터 벡 본인에 이르기까지, 공연 시작 직전의 초조한 기다림







일찌감치 입장시간 이전부터 모여든 관객들은 나무그늘 아래서 입장순서를 기다렸다. 공연을 기다리는 관객들은 내부 로비와 외부 입구 옆에 마련된 벡의 사진이 있는 포토월 앞에서 사진촬영을 이어나갔고, 현대카드 슈퍼시리즈 공연의 연혁을 확인할 수 있는 히스토리월을 찬찬히 살펴보며 사진을 찍기도 했다. 심지어는 벡 자신 또한 포토월 앞에서 사진을 찍으면서 한국에서의 최초 공연을 앞둔 설레는 마음을 마음껏 드러냈다. 머천다이즈 판매부스 역시 인기가 있었는데, 판매하던 티셔츠에는 ‘두 개의 턴테이블과 하나의 마이크’가 그려져 있는 ‘Where It’s At’ 싱글 커버가 인쇄되어 있었다.





무엇보다 입장하자마자 장내에는 과연 벡의 공연답게 정체 불명의 다양한 성격의 곡들이 흘러나왔다. 썬더캣(Thundercat), 벨벳 언더그라운드(Velvet Underground) 부터 베이비 휴이(Baby Huey) 같은 60년대 소울 훵크라던가, 뉴 스쿨 힙합 같은 것들이 마치 벡의 음악처럼 제멋대로 이어졌다. ELO의 'Mr. Blue Sky'가 흐르고 웅장한 곡의 결말과 함께 조명이 소등되면서 바로 공연이 시작됐다.



공연 초반부를 달군 익숙한 기타 리프 중심의 대표곡들


붉은 조명 아래 노란색 실버톤 H42 기타를 든 벡이 무대 위로 등장했다. 올해 발매 20주년을 맞이한 걸작 앨범 [Odelay]의 첫 곡 'Devil's Haircut'으로 공연의 막이 오른다. 혼란스런 숫자를 배경으로 두 명의 기타연주자가 같은 음의 기타솔로를 더블링하는 방식이 재미있었다. '안녕하세요'라는 한국어 인사 직후 'Black Tambourine'를 연주하면서는 박수를 유도해내기도 했다.


벡의 대표곡 'Loser'의 익숙한 슬라이드 기타 소리가 흘러나오자 관객들은 환호했다. 예전의 라이브 버전 보다는 좀더 원곡에 충실한 듯한 어레인지를 들려줬는데, 벡을 대표하는 이 히트곡에서 관객들의 떼창이 지속됐다. 'Loser'를 조금 이른 타이밍에 부른 감이 없지 않나 싶기도 하지만 아무튼 우리는 이 노래를 부르기 위해 오늘 공연장을 찾은 것이었다.





LA 캘리포니아에서 성장했다는 말과 함께 그의 노래 'Hollywood Freaks'에 한국이 등장했던 가사 "Pop locking' beats from Korea"라는 추임새를 넣기도 하면서 라틴/힙합 풍의 'Que Onda Guero'를 불렀다. 소울풀한 곡을 원하느냐고 관객들에게 물은 직후에는 'Mixed Bizness'를 연주하면서 훵키한 비트 아래 마치 제임스 브라운(James Brown) 백 밴드에서나 나올 법한 드럼 솔로를 작렬시켜내기도 했다. [Odelay] 앨범에 수록된 히트 곡 'The New Pollution'의 경우 직접 탬버린을 치면서 불렀는데, 강렬한 푸른 조명으로 곡을 종료시켜낸다.



유독 공연장에서 두드러진 하드록 트랙들


소리의 파동을 붉은 선으로 표현해낸 배경 아래 마치 잭 화이트(Jack White)스러운 박력으로 'Soul of a Man'을 소화해내면서 장내를 불태웠다. 형형색색의 배경아래 펼쳐진 'Think I'm in Love'의 경우엔 도나 썸머(Donna Summer)의 클래식 'I Feel Love'을 매쉬업하면서 벡 다운 재치를 보여주기도 한다. 무거운 리프들이 관객들을 때리는 'Go It Alone'에서도 유독 원곡보다 강렬한 형태로 어레인지해내면서 분위기를 뜨겁게 유도해갔다. 큰 볼륨으로 듣기에 적합한 노래들이다.





신작 [Morning Phase] 중심의 차분한 포크 곡들


공연 초반부 내내 하드한 곡들을 이어나가다가 너무도 아무렇지 않게 정반대 분위기의 곡들을 연주하기 시작했다. 이는 단순히 분위기전환용 구색 맞추기가 아닌, 벡의 또 다른 색깔을 보여주는 챕터라 칭하는 편이 옳다. 사실 벡은 포크 아티스트로 커리어를 시작했던 인물이기도 하다. 벡의 걸작 발라드 앨범 [Sea Change]에 수록된 'Lost Cause'로 포크 챕터가 시작된다. 이후 [Morning Phase]의 곡을 몇 개 하겠다 말하면서 미묘한 박자임에도 편안하게 다가오는 'Blackbird Chain', 배경의 뿌연 잔상이 더욱 싸이키한 무드를 자아내는 촉촉한 'Heart Is a Drum', 그리고 목가적인 분위기를 점차 고조시켜가는 'Blue Moon'을 차례로 이어냈다.


특히 이 챕터에서는 유독 업라이트 피아노 소리가 청명한 울림을 선사했는데, 이런 부드러운 레퍼토리가 전개됨에도 객석에서는 괴성이 터져나와 과연 벡의 공연장답다는 생각이 들었다. 최근 공연 레퍼토리에는 없었던 영화 [이터널 선샤인]의 삽입곡 'Everybody's Got to Learn Sometime'을 부른 것도 이색적이었다. 이 곡을 연주할 때 LED 배경화면에 아무것도 비춰지지 않은 채 진행됐는데, 아마도 한국측에서의 즉흥적인 리퀘스트에 의한 레퍼토리가 아닌가 싶기도 했다. 첫 소절이 흐르자 관객들이 환호했지만 이내 침묵을 유지하면서 곡에 빠져들어갔다. 벡의 공연 시작 바로 직전에 흘렀던 ELO의 'Mr. Blue Sky' 역시 영화 [이터널 선샤인]에서 흘렀던 곡이기도 했는데 여러모로 흥미로운 연결지점들이 존재한다. 이런 곡들에서 어른스럽고 섬세한 모습의 벡을 감지해낼 수 있었다. 생각해보니 그도 어느덧 40대 중반이다.





댄싱 머신 벡과 함께하는 댄스타임


90년대 벡의 팬이라면 그의 나이브한 브레익 댄스를 무척이나 보고 싶었을 것이다. 그리고 공연 막바지에 접어들면서 그에 대한 갈증이 해소됐다. 작년에 싱글로 공개된 'Dreams'를 시작으로 댄스 플로어 용 곡들이 이어졌다. 'Girl'을 공연하기 이전에는 미리 관객들에게 떼창 연습을 시키기도 했고, 'Sexx Laws'에서는 드디어 그의 현란한 제임스 브라운 스텝 같은 것을 볼 수 있었다. 결국 공연은 다시금 장내를 뒤흔들어 놓는 하드 록 'E-Pro'로 완료됐다. 무엇이 진짜 벡의 모습인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너희들을 제압하고 보겠다는 듯 스테이지를 불태우고는 퇴장한다. 사람들은 밴드가 무대 위를 떠났음에도 'E-Pro'의 후렴구를 떼창하며 앵콜을 기다렸다.





셋리스트에도 적혀있지 않았던 예상 밖의 앵콜


기타 연주자 제이슨 포크너가 최고라는 사인을 보이며 무대 위로 돌아왔다. 그리고 이들은 왠 슬로우잼을 연주하기 시작하는데, 이 곡은 기존에 전달받았던 셋리스트에는 없는 곡이었다. 이 노래의 정체는 아는 사람들은 아는 벡의 1999년도 곡 'Debra'였는데, 사실 이는 그의 공연에서 비교적 드물게 연주되는 곡이었다. 노래가사에는 실제로 '아가씨, 내 현대 차에 올라 타세요'라는 대목이 있었고, 때문에 당시 국내 음악잡지에서도 이에 대해 언급한 적이 있었다. 벡은 원곡의 가사 대신 '코엑스 몰에 다녀왔다'는 식의 나레이션을 새로 집어넣으면서 이 헐렁한 슬로우 잼을 완성했는데 후렴구절, 그리고 '현대 자동차'가 나오는 부분만큼은 제대로 불렀다. 특히 그는 '현대'라는 말을 반복했으며, 이는 마치 자신의 첫 내한이 현대카드가 주최가 될 것임을 이미 1999년도에 알았다는 듯한 제스처처럼 보이곤 했다. 이 곡이 흘러나오는 내내 객석에서는 꽤나 유쾌한 분위기가 지속됐다. 설마 했지만 결코 그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던, 오늘 공연의 백미가 아닌가 싶다.





'오늘은 단 한번뿐'이라는 말과 함께 벡의 히트곡 'Where It's At'이 이어졌다. 곡을 진행시키는 와중 갑자기 앰프 위에 앉더니 멤버들의 솔로타임이 진행됐다. 베이시스트 웨인 무어는 쉬크(Chic)의 'Good Times'를, 기타 연주자 제이슨 포크너는 데이빗 보위(David Bowie)의 'China Girl'을 연주했는데, 이에 맞춰 벡이 데이빗 보위의 모창을 시전하기도 했다. 로저 조셉 매닝 쥬니어는 벡이 샘플링하기도 했던 크라프트베르크(Kraftwerk)의 'Home Computer'를, 그리고 드러머 조이 워론커는 프린스(Prince)의 '1999'를 부르면서 분위기가 무르익어갔다. 멤버 소개가 끝나고 카운트다운 이후 다시 벡의 'Where It's At'을 광란의 분위기로 이어내면서 대단원의 막이 내려진다.



벡의 뒤를 든든히 받쳐주는 백업 연주자들


언제나 그랬듯 벡의 투어 멤버들은 화려한 편이다. 기타, 그리고 키보드 멤버로는 모두 젤리피쉬(Jellyfish) 출신으로 벡과는 오랫동안 함께해온 제이슨 포크너(Jason Falkner)와 로저 조셉 매닝 쥬니어(Roger Joseph Manning Jr.)가 각각 함께했다. 로저 조셉 매닝 쥬니어는 네이트 루스(Nate Ruess)의 밴드 펀(Fun,)의 첫 앨범을 함께 만들었던 인물이기도 하다. 드러머의 경우 라디오헤드(Radiohead)의 톰 요크(Thom Yorke)와 레드 핫 칠리 페퍼스(Red Hot Chili Peppers)의 플리(Flea)가 함께하는 프로젝트 아톰스 포 피스(Atoms for Peace)와 R.E.M. 등을 거쳐간 조이 워론커(Joey Waronker)가 배치되어 탄탄한 리듬라인을 만들어내고 있다. 앞에 레드 핫 칠리 페퍼스 얘기가 잠시 나왔는데, 현재 레드 핫 칠리 페퍼스의 멤버인 조쉬 클링호퍼(Josh Klinghoffer) 역시 벡의 투어 기타리스트를 거쳐간 인물이기도 하다.





M83의 프로듀서, 그리고 나인 인치 네일스(Nine Inch Nails)의 투어 멤버로도 유명한 저스틴 멜달-존센(Justin Meldal-Johnsen)은 벡의 베이시스트로 꽤나 오랫동안 활동해왔는데, 이번 투어에서는 빠지면서 대신 웨인 무어(Wayne Moore)가 합류했다. 그는 퍼렐 윌리암스(Pharrell Williams)의 투어 베이시스트였고 주로 R&B 뮤지션들의 공연과 레코딩을 다뤄왔는데, 때문에 과거 저스틴 멜달-존센의 연주보다는 확실히 그루브감이 늘어난 듯한 인상을 줬다.



벡의 족적을 체험케 하는 무규칙 퍼포먼스


대표 곡을 거의 망라했고, 확실히 벡의 노래가 지닌 힘을 느끼게끔 하는 공연이었다. 카운터컬쳐가 메인스트림이 될 수 있는 시기에 등장해 빛을 발한 벡은 별개로 웰 메이드 포크 음반들을 병행해 완수해냈고, 따라서 다양한 팬층을 확보하는 데에 성공했다. 그리고 이번 라이브는 이런 그의 족적을 추적하는 종합선물세트라 할만한 퍼포먼스였다. 벡의 음악에는 새로움과 낡음이 공존했고 불가사의한 리듬 속에서도 컨트리의 향기가 감지되곤 했다. 물론 공연장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벡의 라이브에서는 항상 독특한 개성이 돌출됐다. 섬세하지만 완벽함에 얽매이지 않는 태도를 고수했고, 이는 감동적이면서 동시에 흥미진진했다. 원곡의 색다른 어레인지 또한 두드러졌고, 모든 것이 뒤죽박죽된 이 퍼포먼스의 형태 속에서 벡 고유의 세계관에 충분히 빠져들 수 있었다. 다양한 소리를 뒤엉켜내면서 이상하게 즐길 수 있는 공연을 창조해내는 것이 벡이 지닌 무기였고, 이는 말 그대로 '음악' 그 자체를 체험하게끔 하는 경험이었다. 그는 록 스타도, 랩퍼도, 그리고 댄스가수도 아니었다. 그저 ‘벡’ 자기 자신일 뿐이다.





Writer. 한상철

음악애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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벡이 지나치게 비주얼 적인 부분에 의존하는 아티스트는 아니었지만 의외로 웬만한 중요한 뮤직비디오 감독들은 모두 그를 거쳐갔다. 과거 [The Information] 앨범의 수록 곡 전곡의 비디오를 만들기도 했을 만큼 재기 넘치는 시도를 했던 벡이었고, 유명 감독들과 함께한 비디오에서도 자신의 고유의 색깔을 제대로 유지해내는 편이었다. 여러 감독들과의 작업 이외에도 'Sexx Laws'나 'The New Pollution' 같은 비디오의 경우 벡 자신이 직접 연출해내기도 했다. 특히 'Sexx Laws'의 경우엔 [사랑도 리콜이 되나요?], [스쿨 오브 락], [쿵푸팬더] 등으로 알려진 코미디 배우 잭 블랙(Jack Black)이 직접 출연한 바 있다. 아직 스타가 되기 이전 시기의 잭 블랙이 거의 주연급 역할로 활약해내면서 이후 그의 행보를 점칠 수 있는 계기를 이 비디오가 마련해내기도 했다. 물론 잭 블랙뿐만 아니라 대체적으로 벡과 함께 일했던 아티스트들은 이후 대부분 성공가도를 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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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 상상력의 소유자, 벡과 조우하다 - Michel Gondry : 'Cellphone's Dead', 'Deadweight'


주로 동화적인 상상력으로 무장해낸 작품들을 꾸준히 양산해온 프랑스 출신 감독 미셸 공드리(Michel Gondry)는 알려진 대로 뮤직비디오로 커리어를 시작했다. 영화 [이완 맥그리거의 인질]에 삽입된 벡의 'Deadweight'에서는 모든 것이 거꾸로 뒤바뀐 세상을 담아냈으며, 조잡한 색채와 효과를 이용해 마치 홈 비디오처럼 완성시켜낸 'Cellphone's Dead' 역시 미셸 공드리와 벡 사이의 접점을 보여주는 흥미로운 작업물로써 귀결됐다. 이후 벡 또한 미셸 공드리의 영화 [이터널 선샤인]에 주제곡을 제공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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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슨한 천재의 담담한 결과물 - Spike Jonze : 'Guess I'm Doing Fine'


벡의 차분한 앨범 [Sea Change]에 수록된 이 곡의 비디오 역시 미셸 공드리와 마찬가지로 현재 영화계에서 활약해내고 있는 재능 있는 스타 감독 스파이크 존즈(Spike Jonze)에 의해 완성됐다. [존 말코비치 되기]를 시작으로 최근 [그녀]까지 상상력으로는 그 누구에게도 뒤쳐지지 않는 인물인데, 황량한 공원을 배경으로 벡을 쫓아 다니는 어쿠스틱 기타, 그리고 지나가는 사람에게 현재 자신이 촬영하는 비디오의 곡에 대해 길게 설명해주다가 함께 공놀이를 하는 벡을 노래만큼이나 담담하게, 하지만 예측할 수 없게끔 담아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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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각의 화신이 이끌어낸 복고풍 터치 - Mark Romanek : 'Devils Haircut'


제이지(Jay-Z)부터 자니 캐쉬(Johnny Cash)까지 진중하면서도 감각적인 화면을 만들어내는 명인 마크 로마넥(Mark Romanek) 또한 벡의 대표 곡 'Devils Haircut'에서 함께했다. 붐 박스를 들고 카우보이 모자를 쓴 채 뉴욕 길거리를 돌아다니는 벡을 비춰내고 있는데, 화면 톤, 그리고 스톱된 상태에서 천천히 줌이 들어가는 방식을 마치 70년대 스타일처럼 묘사해냈다. 월 스트리트의 레드 큐브 조형물이 보이기도 하며, 심지어 브루클린 브릿지 아래에서 찍은 세피아 톤 장면의 경우 중후한 [원스 어폰어 타임 인 아메리카]의 영화 포스터 마저 연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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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측 불가능한 테크니션이 완수시킨 기이한 풍경들 - Garth Jennings : 'Lost Cause (Version 2)', 'Hell Yes'


[은하수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안내서], 그리고 곧 개봉을 앞둔 애니메이션 [씽]의 감독 가스 제닝스(Garth Jennings)는 벡과 두 편의 비디오를 제작했다. 스튜디오에서 연주하는 밴드를 느리게, 그리고 빠르게 재생해내면서 테크닉적인 면을 두각 시키고 있는 'Lost Cause'의 두 번째 비디오 버전, 그리고 일본을 배경으로 부채를 들고 춤추는 로봇을 등장시키는 미래 지향적인 'Hell Yes'까지 가쓰 제닝스 특유의 아기자기한 면모를 엿볼 수 있게끔 완성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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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세한 스타 뮤직비디오 감독의 세련된 흑백의 미학 - Sophie Muller : 'Heart Is A Drum'


비욘세(Beyonce), 마룬 5(Maroon 5), 그리고 킬러스(Killers) 등 유명 아티스트들의 비디오를 촬영해온 감독 소피 뮬러(Sophie Muller)는 벡의 최근작 [Morning Phase]에 수록된 'Heart Is A Drum'의 비디오를 담당했다. 종교적인 분위기와 신비한 흑백 톤의 화면을 유지시켜내고 있는 이 비디오에는 신부와 저승사자, 그리고 우주인 등을 벡과 함께 배치시켜내면서 예측할 수 없는 결론으로 향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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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riter. 한상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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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보로만 공개했다가 이후 수많은 현업 뮤지션이 레코딩하면서 앨범 형태로 발매된 [Song Reader], 그리고 다양한 아티스트들과 사전 계획 없이 모여 단 하루 만에 곡을 창조해냈던 '레코드 클럽' 프로젝트 등에서 짐작할 수 있듯 벡은 다양하고 새로운 음악적 시도와 그 일환인 콜라보레이션에 무척 적극적인 태도를 취하는 인물이었다. 인맥 또한 남다른 벡이었고, 따라서 그런 그와 함께 협업해낸 아티스트들을 되짚어 보는 것은 그의 음악적 DNA를 탐구하는 계기를 마련해주기도 한다.


Paul McCartney – 공연 협연부터 그래미 어워드 해프닝까지 연속된 인연


제58회 그래미 시상식 애프터 파티에서 벡이 폴 매카트니(Paul McCartney)와 입장 거부당했던 사실이 일단은 널리 알려져 있지만, 그 이전에 여러모로 벡과 겹치는 지점이 있는 인물이었다. 일단은 벡의 아버지 데이빗 캠벨이 폴 매카트니의 2001년 작 [Driving Rain]에 참여한 이후 몇몇 앨범들에서 함께한 적이 있고, 벡의 경우엔 동물 애호 단체 PETA 설립 35주년을 기념해 할리우드에서 열린 행사에서 폴 매카트니의 게스트로 출연해 함께 노래를 부르기도 했다. 참고로 벡의 프로듀서 나이젤 고드리치는 폴 매카트니의 2005년도 앨범 [Chaos and Creation in the Backyard]의 총 프로듀서를 담당하기도 했다.





Jack Black – 연기와 노래를 제공한 코미디 배우


[사랑도 리콜이 되나요?], [스쿨 오브 락], [쿵푸팬더] 등으로 알려진 코미디 배우 잭 블랙은 아직 스타가 되기 이전인 1999년 무렵 벡의 'Sexx Laws' 뮤직비디오에 출연했다. 이 혼란스러운 뮤직비디오에서 그는 아예 중간에 대사까지 삽입되기도 할 만큼 핵심인물을 연기해내고 있었다. 이후에는 벡의 [Song Reader] 앨범에 잭 블랙이 직접 참여해 ‘We All Wear Cloaks’라는 곡을 녹음하기까지 한다-이 앨범에는 잭 화이트(Jack White)도 있다-. 또한 잭 블랙의 밴드 터네이셔스 D(Tenacious D)의 첫 번째 정규앨범은 벡의 프로듀서 더스트 브라더스가 프로듀싱한 작품이기도 하다. 이처럼 세상이 여러모로 참 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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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ate Ruess (of Fun.) – 음악적 영웅이 선사하는 피처링


올해 초 현대카드 컬처프로젝트 20 <5 Nights Ⅱ> 내한을 통해 한국 관객들에게 짙은 인상을 남긴 펀(Fun.)의 네이트 루스(Nate Ruess). 그는 자신의 음악적 영웅 중 하나인 벡을 첫 솔로 앨범 [Grand Romantic]의 삽입곡 'What This World Is Coming To'의 피처링 대상으로 꼽았다. 인터뷰에 의하면 네이트 루스는 도대체 벡 같은 사람이 왜 자신의 앨범에 함께하기로 했는지 모르겠다며 자신이 운이 좋았다고 말했다. 사실 네이트 루스는 'You Light My Fire'를 벡의 재기 넘치는 [Midnight Vultures] 스타일로 함께하고 싶었지만 그래미 시상식에서의 벡의 공연을 보고 [Sea Change]나 신작 [Morning Phase] 분위기 같은 차분한 곡을 함께해야겠다고 마음을 바꿨다. 벡 역시 'What This World Is Coming To'를 마음에 들어 했으며, 네이트 루스는 벡을 가리켜 일하는 것을 멈추지 않는 놀라운 사나이라며 칭송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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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Chemical Brothers – 절제된 비트와 서정적 멜로디의 조화


영국을 대표하는 전자음악 듀오 케미컬 브라더스(The Chemical Brothers)는 매 앨범마다 다양한 보컬을 참여시키는 것으로 유명하다. 초기 빅 비트 스타일로 돌아왔던 작년도 앨범 [Born in the Echoes]의 마지막 곡 'Wide Open'에서 벡이 노래를 불렀는데, 케미컬 브라더스의 절제된 비트 사이에 벡의 서정적인 멜로디 라인이 적절히 매치되면서 현재 유행하고 있는 EDM의 파도에 결코 묻히지 않는 별개의 색을 지닌 트랙으로 완수했다. 확실히 벡의 참여가 곡을 더욱 진중하게 만들어내는 작용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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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83 – 80년대 신스팝에 녹아 드는 목소리


케미컬 브라더스는 물론 곧 첫 내한공연을 가질 예정인 프랑스 출신의 전자음악 뮤지션 M83의 새 앨범 [Junk]에서도 벡은 자신의 목소리를 빌려주었다. M83은 밴드 기반으로 서정적이면서 과거 지향적인 전자음악을 만들어온 아티스트인데, 벡이 함께한 'Time Wind'라는 곡은 M83 특유의 멜랑꼴리한 80's 신스팝처럼 주조해 놓았다. 벡 또한 능청스럽게 이 바이브를 요리해낸다. 벡의 투어에서 꽤나 오랜시간 베이스를 연주했던 저스틴 멜달-존센(Justin Meldal-Johnsen)은 프로듀서로도 이름을 날리고 있는데, M83의 최근 2장을 그가 프로듀싱했다. 때문에 벡과 M83의 협업에는 저스틴 멜달-존센의 역할이 절대적이었음을 추측해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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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r – 감미로운 전자음악과 어울리는 담담한 나레이션


벡은 의외로 전자음악 뮤지션들과 많이 작업해왔지만 아티스트를 선별할 때 확실히 자신의 취향 같은 것이 엿보였다. 프랑스 출신으로 90년대 말부터 달콤하고 은은한 소리 만들기에 집중했지만, 국내에서는 'Sexy Boy'의 코믹한 이미지가 부각된 듀오 에어(Air)의 2001년도 앨범 [10 000 Hz Legend]에 수록된 'The Vagabond'는 하모니카로 시작해 어쿠스틱 기타로 전개된다. 결코 흥분하는 법 없이 에어와 벡 각각의 음악적 색채가 적절히 믹스되어 있는 곡으로 완성됐다. 에어 특유의 시네마틱한 스트링, 그리고 그 위에 담담하고 로맨틱하게 읊조리는 중반부 나레이션은 전성기 시절 셀쥬 갱스부르(Serge Gainsbourg) 마저 떠오르곤 한다. 곡 막바지의 팔세토 애드립은 좀 과하지만 나름 코믹하며, 결국 곡이 끝날 무렵 자기가 생각해도 이상한지 결국 웃어버리는 것이 그대로 앨범에 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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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rlotte Gainsbourg – 넓은 음악적 스펙트럼이 불러온 콜라보레이션


셀쥬 갱스브루의 딸 샬롯 갱스브루(Charlotte Gainsbourg)와도 작업했다. 샬롯 갱스브루의 2009년도 솔로 앨범 [IRM]을 위해 스튜디오에서 공동작업을 시작했는데, 두 사람은 서로가 비슷한 감수성을 지니고 있음을 알아차렸다고 한다. 필자 생각에는 워낙 벡의 스펙트럼이 넓기 때문에 샬롯 갱스브루의 취향을 커버하고 있는 것 아닌가 싶은데, 아무튼 벡은 앨범에 수록된 대부분의 곡을 직접 작곡해줬고, 자신의 아버지 데이빗 캠벨(David Campbell)까지 끌어들여 스트링 섹션을 완성했다. 앨범에 수록된 'Heaven Can Wait'의 경우에는 아예 벡이 노래까지 같이 불러줬는데 기괴한 뮤직비디오에 벡이 직접 출연까지 감행하며 이 프로젝트에 힘을 실어준다. 


 

출처: Youtube



벡은 샬롯 갱스브루의 아버지인 셀쥬 갱스브루에게 일종의 빚이 있다. 그는 과거 자신의 곡 'Paper Tiger'에서 셀쥬 갱스브루의 'Cargo Culte'를, 그리고 'The Horrible Fanfare/Landslide/Exoskeleton'에서도 마찬가지로 셀쥬 갱스브루의 'Requiem Pour Un Con'의 비트를 샘플링한 적이 있기 때문이다. 샬롯 갱스브루의 [IRM] 앨범의 컨셉만을 확인하면 셀쥬 갱스브루와 제인 버킨(Jane Birkin)의 작업물을 떠올려 볼 수도 있겠지만 정작 그런 분위기는 샬롯 갱스브루와의 작업물보다는 의외로 벡이 배트 포 래쉬스(Bat for Lashes)와 영화 [이클립스]를 위해 만들고 듀엣 한 'Let's Get Lost'에서 더 두드러진다.



Thurston Moore (from Sonic Youth) – 부지런한 벡의 프로듀서로의 면모


벡은 프로듀서로서의 작업 또한 꾸준히 이어나갔다. 레코드 클럽 프로젝트 당시 함께했던 소닉 유스(Sonic Youth)의 써스턴 무어(Thurston Moore)의 2010년 솔로 작 [Demolished Thoughts]를 프로듀싱했고, 비슷한 시기인 2011년도에는 페이브먼트(Pavement) 출신의 스티븐 말크머스(Stephen Malkmus)의 밴드 스티븐 말크머슨 앤 더 직스(Stephen Malkmus and the Jicks)의 [Mirror Traffic]도 프로듀싱했다. 둘 다 약간은 삐딱한 기타 중심의 날것이 부각되는 인디 록 앨범이었는데, 벡의 프로듀서로서의 작업물 중 샬롯 갱스브루 정도만을 알고 있던 이들에게는 이것들이 꽤나 의외의 작업이라 생각될 수도 있을 것 같다. 



Seu Jorge – 남미의 보사 노바까지 섭렵하다


벡은 과거 자신의 작품에서도 보사 노바를 비롯한 남미 음악들을 적극 수용해내고 있는 모습을 보였고, 결국 자신의 보사 노바 트랙 'Tropicalia'를 브라질 뮤지션 세우 조르쥬(Seu Jorge)와 함께 다시 부르기에 이른다. 세우 조르쥬는 데이빗 보위(David Bowie) 곡들을 보사 노바로 커버한 앨범, 그리고 영화 [시티 오브 갓]에 출연하면서 이름을 알린 뮤지션인데 에이즈 퇴치 기금 마련을 위한 컴필레이션 [Red Hot + Rio 2]를 위해 벡과의 콜라보레이션이 새롭게 성사됐다. 세우 조르쥬의 목소리가 입혀진 벡의 곡을 들으면 그저 벡이 그럴듯하게 이 장르를 흉내만 내는 수준이 아님을 알아차리게 된다. 벡은 비교적 여러 장르에 다리를 걸치고 있었지만 그 모든 것들에 정통한 편이었다.


 

출처: Youtube





Writer. 한상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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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의 음악 전문지 Q 매거진은 '60년대에는 비틀즈(The Beatles), 70년대에는 데이빗 보위(David Bowie), 그리고 80년대에는 프린스(Prince)와 스미스(The Smiths)가 있었다면 90년대에는 벡이 있다'라는 평가를 주저 없이 했다. 매회 특별한 음악을 발표한 벡은 데뷔 시절부터 자신의 음악만큼이나 범상치 않은 다양한 활약상으로도 널리 알려져 있다. 그 누구도 생각지 못했던 음악적 시도는 물론, 몇몇 재미있는 에피소드 일부를 되짚어 보자.





* 한국, 그리고 현대카드와의 인연


아는 사람들은 알겠지만 벡은 성장기 시절 한국인 이웃이 있는 코리아타운에서 2마일 떨어진 곳에서 살았다고 한다. 이제서야 최초로 한국을 방문하는 것이 의아할 정도로 과거 몇몇 그의 작품에서는 한국에 대한 인용을 찾아볼 수 있다. 주로 이런 요소들은 벡의 1999년도 앨범 [Midnite Vultures]에서 확인할 수 있었고 이후 소개하는 예시는 모두 이 앨범에 수록된 곡들이다.


- 'Nicotine & Gravy'의 뮤직비디오에는 오랜 시간 동안 '굿'이라는 한글과 코리아타운에서 촬영한듯한 한글간판의 실루엣이 정신 없이 등장한다. 


 

출처: Youtube



- 'Hollywood Freaks'라는 곡의 현란한 랩 가사 중에는 "Pop lockin' beats from Korea" 라는 대목이 존재한다.


- 'Debra'의 가사 중에는 심지어 "아가씨, 내 현대(차) 안으로 들어오세요(Lady, step inside my Hyundai)" 라는 내용이 있다. 확실하지는 않지만 벡의 'Deadweight' 뮤직비디오 막바지에 사람이 짊어지는 빨간 자동차가 현대 소나타라는 말이 있기도 하다. 실제로 벡이 현대 자동차를 타고 다녔는지에 대해서는 알려진 바가 없지만, 벡의 이런 가사와 비디오를 처음 접했을 당시에는 10여 년이 지난 후 직접 '현대카드'에서 벡을 데리고 올 거라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 마치 이 곡을 통해 벡 자신이 현대카드와의 인연을 예견한 것 같다.


 

출처: Youtube



* 악보로 발매한 앨범 [Song Reader]


2012년, 벡은 음반이 아닌 악보 형태로 이뤄진 새 앨범 [Song Reader]를 발표한다. 당연히 그 자체로는 음악을 들을 수 없었고 구매자가 스스로 그 악보를 연주할 수밖에는 없었다. 직접 연주하든, 타인에게 연주를 의뢰하든 간에 이를 감상하려면 기존의 수동적인 청취 태도와는 전혀 다른 것을 시도해야만 했다. 벡은 악보 서문에 ‘이 노래들을 스스로가 원하는 방식대로 편곡해도 좋고, 좋아하는 악기를 사용해 연주하라’는 등의 언급을 통해 연주자들에게 자유를 줬다. 즉, 이 프로젝트의 궁극적인 목적은 음악을 개방하면서 현존하는 형태의 음악이 제공하는 것 이상의 다른 차원의 가능성을 시도해보려는 것이었다. 악보의 출판과 동시에 개설된 공식 웹사이트(http://www.songreader.net)에는 팬들이 실제로 해석/연주한 음원과 동영상을 게시할 수 있는 공간이 마련되었다. 이 곳에서 같은 곡임에도 어떤 이는 차분하게, 또 어떤 이는 뒤죽박죽으로 제각기 이 악보를 해석해내는 광경을 엿볼 수 있다. 

 


출처: beck.com / store.mcsweeneys thedailybeast / thethoughtfox



이후 유명 아티스트들이 이를 연주한 컴필레이션 앨범을 2014년도에 발매했고 실제로 공연도 열었다. 녹음된 앨범에는 벡 자신은 물론 노라 존스(Norah Jones)에서부터 펀(Fun.), 잭 화이트(Jack White)와 배우 잭 블랙(Jack Black), 심지어는 마크 리봇(Marc Ribot) 같은 장인들이 참여했다. 항상 참신하고 개성적인 아이디어로 무장한 벡이 악보에 그린 세계관을 수많은 사람들이 표현해낸 것을 듣는 것은 흥미로운 일이고, 확실히 이는 유튜브 세대에 걸맞는 형태의 예술이었다.



* 구매자가 직접 커버를 꾸밀 수 있는 앨범 [The Information]


자신의 음악을 접하는 사람들이 단순한 감상에 그치지 않고 직접 참여할 수 있게끔 하는 시도는 사실 [Song Reader] 이전에도 있었다. 바로 2006년 작 [The Information]에서였는데, 이 앨범을 처음 구입하면 모눈종이에 있는 'BECK'이라는 글씨를 제외하고는 공란인 상태로 놓여있다. 하지만 음반 안에 삽입된 스티커를 사용해 이 공란을 직접 자유롭게 꾸밀 수 있게끔 해놓았다. 잘 꾸민 아트웍의 경우 전시가 되기도 했는데, 실제로 벡은 팬들의 작품을 모아 전시회를 개최하기도 했다. 사실 이런 시도는 점차 온라인화 되어가는 음반시장의 과도기에 직접 손으로 만지는 ‘경험’을 제공한다는 의미가 있다.


벡은 [The Information] 앨범의 수록 곡 모든 트랙을 비디오로 제작해 음반에 DVD로 동봉하기도 했다. 요즘에는 비욘세(Beyonce) 등 여러 가수들이 이런 식으로 발매하기도 하지만 2006년 당시에는 비교적 드문 새로운 시도였다. 게다가 요즘에는 뮤직비디오 대부분을 유튜브에 공개하는데, 벡은 10년 전 이미 이와 같은 방식으로 음반을 프로모션했던 셈이다. 주로 낮은 예산과 즉흥적인 방식의 시리즈 필름을 의도했으며, 심지어는 자신의 친구나 가족에게까지 연기를 시키기도 했다. 영상들을 인터넷에 올렸을 때, 이를 음반과 함께 감상하는 사람들로 하여금 어떤 경험을 일으킬지 궁금했다며 당시 이런 시도에 대한 이유를 밝혔다. 특히 'Cellphone's Dead' 같은 비디오는 유명한 미셸 공드리(Michel Gondry) 감독이 디렉팅했다. 그는 과거에 영화 [이완 맥그리거의 인질]에 삽입된 벡의 'Deadweight'의 비디오를 감독한 적 있고, 벡 역시 미셸 공드리의 [이터널 선샤인]의 주제곡 'Everybody's Gotta Learn Sometime'을 부른 바 있다.



출처: udiscovermusic / bigactive / amazon



하나의 예시가 더 있다. 과거 발매한 'Where It's At'의 12인치 싱글 레코드의 경우, 원곡에 삽입된 샘플과 비트를 따로 분리해 ‘Bonus Beats’라는 트랙으로 수록해놓기도 했다. 이를 바탕으로 DJ들은 벡의 곡에 수록된 샘플을 툴로써 직접 턴테이블로 스크래치할 수 있었고, 드럼 비트만 있는 트랙 위에는 직접 랩도 해볼 수 있었다. 여러모로 청취자들과 인터랙티브한 관계를 모색해나가는 벡이다.



* 다양한 아티스트들과의 유별난 재해석 프로젝트 '레코드 클럽(Record Club)'


벡은 음악 팬들은 물론 다양한 아티스트들과의 협업에도 적극적인 편이었다. 2009년 그를 주축으로 진행된 '레코드 클럽'이라는 프로젝트는 벡이 다양한 뮤지션들을 섭외해 과거에 발표된 유명한 앨범들을 재해석하는 형태를 취한다. 하지만 이는 아무런 사전계획 없이 단 하루 만에 모여 리허설 없이 진행되기 때문에 원곡과는 전혀 다른 형태로 완성되곤 했다. 


 

출처: Youtube



벡은 이 프로젝트를 통해 벨벳 언더그라운드(The Velvet Underground), 레너드 코헨(Leonard Cohen), 인엑세스(INXS), 스킵 스펜스(Skip Spence), 그리고 야니(Yanni)의 앨범들을 재해석해 자신의 공식 웹사이트에 업로드 했다. 벡과 함께 작업한 인물들은 소닉 유스(Sonic Youth)의 써스턴 무어(Thurston Moore), 토어터스(Tortoise), 세인트 빈센트(St. Vincent), 윌코(Wilco), MGMT 등이다. 원곡의 이미지를 과감히 지워버리는, 몹시 새로운 해석이 이 과외활동 같은 프로젝트의 결과물로 돌출됐다.



출처: booooooom / youtube / vimeo / pitchfork


* 벡의 게릴라 콘서트


2005년도 앨범 [Guero]를 발매하기 직전에는 비밀리에 콘서트를 개최하기도 했다. 3월에는 런던에서, 그리고 4월에는 뉴욕에서 진행됐는데, 라디오 방송과 메일링 리스트에 등록된 이들에게 라이브의 개최를 알리고 단 500명의 관객을 앞에 두고 곧 발매될 새 앨범 수록곡들을 연주했다. 가장 열정적인 팬들에게 자신의 신곡을 제일 먼저 들려주고 싶었던 게 아니었나 싶다.


참고로 [Guero] 앨범에 수록된 'Black Tambourine'의 경우 데이빗 린치(David Lynch)의 영화 [인랜드 엠파이어]라던가 [500일의 썸머], [굿 와이프] 같은 작품에 삽입되기도 했으며, 'Broken Drum'의 경우 안타깝게도 젊은 나이에 작고한 뮤지션 엘리엇 스미스(Elliott Smith)에게 바치는 노래이기도 하다. [Guero] 앨범 전체를 리믹스한 리믹스 앨범 [Guerolito] 또한 화제를 모았다. 보즈 오브 캐나다(Boards of Canada)부터 엘-피(El-P), 그리고 현재 K-팝 씬에서도 각광받는 프로듀서 디플로(Diplo)까지 광범위한 아티스트들을 리믹서로 참여하게 하며 별개의 웰메이드 음반으로 구성했다.



* 벡의 웅장한 시도: 데이빗 보위의 'Sound and Vision' 리바이벌


2013년 무렵 벡은 데이빗 보위의 3분짜리 곡 'Sound and Vision'을 160명이나 되는 아티스트들과 함께 9분여의 러닝타임으로 재구축했다. 이는 한 자동차 회사의 90주년을 기념하는 광고 캠페인이었는데 벡을 중심으로 오케스트라와 마칭 밴드, 가스펠 중창단, 그리고 유명 연주자들과 함께 완수해낸다. 새로운 경지를 개척하려는 벡의 패기가 엿보이는 무대였다. 벡의 데이빗 보위에 대한 애정은 이후에도 계속되는데, 올해 그래미 시상식의 식전행사에서는 너바나(Nirvana)의 생존멤버들과 함께 그 무렵 세상을 뜬 데이빗 보위를 기리는 의미로 'The Man Who Sold the World'를 커버하기도 했다.


 

출처: Youtube






Writer. 한상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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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혁명가다."

벡의 걸작 앨범 [Odelay]의 음반 뒷면커버 아래 쓰여 있는 "Je suis un revolutionaire(나는 혁명가다)"라는 글귀는 조금 과장되어 보일지언정 벡이라는 아티스트를 비교적 간편하게 정리해주는 문장이다. 고전과 새로운 흐름 사이를 자유자재로 오가는 와중 스스로의 개성을 기발한 음악으로 승화시켜낸 아티스트 벡의 재능은 이미 수 차례에 걸쳐 입증되었다. 힙합과 록, 포크, 테크노, 펑크, 블루스 등을 모조리 뒤섞어낸 그는 무대 위에서 마치 제임스 브라운(James Brown)처럼 다리를 찢고 로봇 춤을 추다가 갑자기 어쿠스틱 기타를 매고 밥 딜런(Bob Dylan) 같은 포크 곡들을 부른다. 





예술가의 피를 타고나다.


1970년 7월 8일 LA에서 태어난 벡은 아티스트 가문에서 성장했다. 그의 아버지는 마이클 잭슨(Michael Jackson)과 아델(Adele), 폴 매카트니(Paul McCartney)를 비롯한 수많은 거장들부터 국내 가수 이승환의 '천일 동안'까지 전방위로 작업해온 저명한 편곡가이자 프로듀서, 지휘자인 데이비드 캠벨(David Campbell)이다. 앤디 워홀(Andy Warhol)의 팩토리 멤버였던 비비 한센(Bibbe Hansen)은 벡의 어머니이기도 하다. 무엇보다 벡이 해왔던 꼴라주 작업은 사실 플럭서스 무브먼트의 일원이었던 그의 외할아버지 알 한센(Al Hansen)에게서 영향 받은 것이었다. 이런 어마어마한 환경 속에서 성장해온 벡은 알차게 가족들의 영향을 흡수해갔는데, 열 살 무렵 부모가 이혼하고 어머니 곁에 머물기로 하면서 어머니의 성 '한센'을 따르게 된다. 그리고 고등학교를 중퇴한 이후 본격적으로 음악에 투신한다. 



 


시대를 대표하는, 게으른 패배자들의 찬가, 'Loser'


기타 한 대와 단돈 8불을 손에 쥐고 뉴욕으로 떠난 벡은 거의 부랑자처럼 생활하다가 다시 LA로 돌아온다. 비디오 가게에서 일하던 와중 벡은 패배주의가 난무하던 90년대 한가운데에 방점을 찍은 싱글 'Loser'를 내놓으면서 화려하게 급부상했다. 랩+포크+블루스가 융합된 형태의 곡에 삽입된 "나는 패배자야, 그러니 나를 죽이는 게 어때?"라는 내용의 장난스런 후렴구는 수많은 이들을 사로잡는다. 특유의 자조와 적대적인 내용으로 국내에서도 인기를 끌었지만 정작 한국에는 이 노래가 수록된 메이저 데뷔작 [Mellow Gold]가 비교적 뒤늦게 라이센스 발매됐다. 나른한 권태감을 바탕으로 펼쳐지는 컨트리 블루스 기타 리프, 그리고 기이하게 엮여있는 힙합 비트는 90년대 중반 새로운 흐름을 예고케 했다. 커트 코베인(Kurt Cobain)의 비극적인 죽음 이후, 벡은 이 한 곡을 통해 '얼터너티브의 얼터너티브'가 된다.



출처: Youtube 



시대를 초월한 기발한 편집 감각의 정점 [Odelay]


'Loser'의 과열된 인기 이후 벡의 재능을 인정함에도 반신반의했던 이들에게 다음 정규 앨범 [Odelay]는 그야말로 회심의 카운터 펀치였다. 여유롭게 수많은 장르를 짜깁기해낸 이 레코드를 통해 그는 90년대에 가장 중요한 지점을 만들어낸다. 이만큼 여러 장르에 손을 대고 있음에도 종합적으로 잘 정리된 앨범도 드물었다. 'Where It's At' 같은 수록곡은 확실히 코믹했지만 앨범에서 펼쳐지는 수많은 샘플링 요소들은 단순한 인용이나 유머 수준에 머물지 않고, 그의 뇌 속에서 구성된 작품을 구현하는데 필요한 필수조건이 되었다. 



출처: Youtube



과거 류이치 사카모토(坂本龍一)가 YMO를 결성했을 당시 "미래는 컴퓨터의 보급에 의해 영감만 있으면 누구나 음악을 만들 수 있는 시대가 온다." 말했던 바 있다. 90년대 벡의 등장을 통해 사카모토가 언급한 바로 그 시기가 도래했다 생각해볼 수도 있었다. 이후 이런 벡의 작업방식은 수많은 추종자를 낳았고 [Odelay]를 발판으로 오늘날 벡은 모두가 인정하는 빅 네임이 됐다. 그러니까 오타쿠도 록스타가 될 수 있는 시대는 바로 이때부터였다.



영리한 천재, 진지한 송라이터로 거듭나다.


벡의 앨범 커버에는 일종의 법칙이 있다. 벡의 사진이 커버에 없는 앨범은 키취적인 샘플링 위주의 레코드이고, 벡의 사진이 커버에 있는 앨범은 차분한 발라드와 포크 위주의 앨범이라는 공식이다. [Mutations]에서부터 시작된 이 법칙은 비로소 [Sea Change]를 통해 완성된다. 이 차분한 앨범이 발매됐을 무렵 실제로 벡은 9년간 교제해온 리 리몬(Leigh Limon)과 헤어지고 심연의 바닥에 가라앉은 상태에 놓여있었다. 결국 스스로를 구출하기 위해 그는 이 앨범을 완성해나갔다. 앨범 표지의 그는 시간이 멈춰버린 것처럼 멍한 표정을 짓고 있다. 


 

출처: stereogum



일단 멈춰선 벡은 슬픔으로 흘러 넘치는 아름다운 멜로디, 그리고 아버지 데이빗 캠벨의 도움으로 완성된 장엄한 오케스트라를 삽입해낸다. 전체적으로 느리고 자조적인 가사로 이뤄진 이 앨범을 감상할 때마다 벡의 마음속 깊은 곳의 어둠을 들여다보고 있는 듯한 느낌을 받게 된다. 얼마 전 국내에서 재개봉한 영화 [이터널 선샤인]에 삽입된 벡이 부른 주제곡 'Everybody's Gotta Learn Sometime' 역시 이 앨범 직후 공개된 곡으로 마찬가지로 고독한 기운이 엿보였다.



출처: Youtube



그래미 올해의 앨범을 수상한 최근작 [Morning Phase]


벡의 2014년도 앨범 [Morning Phase] 또한 벡의 얼굴이 음반커버에 걸려있었고, 마찬가지로 침착한 앨범이 됐다. 척수손상치료에 전념하고 있었기 때문에 6년이라는 긴 공백 이후 나온 앨범이었고, 감미로운 싸이키델릭 포크/발라드를 중심으로 이를 완성시켜냈다. 결국 벡은 이 앨범을 통해 제57회 그래미 시상식에서 가장 중요한 부문인 '올해의 앨범' 상을 수상한다. 그 동안 주로 기발한 면면이 표면적으로 다뤄져 왔으나, 영역의 확장을 이뤄낸 본작으로 원숙미와 깊이를 지닌 작가임이 입증됐다. 당시 뉴요커(Newyorker) 지에 실린 리뷰는 앨범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이 음반을 50번 이상 들었지만 아직 단 하나의 결함도 발견하지 못했다." 



출처: Youtube



벡은 매번 좋은 의미에서 기대를 배반하는 앨범들을 내놓았다. 어지러울 정도로 다양한 스타일들을 섞어내며 시대의 최첨단을 질주하는 듯 보이다가도 현시대로부터 한발자국 물러난 채 진중한 매력을 발산하기도 했다. 그는 여전히 현 음악계에서 가장 빛나는 존재 중 한 명으로서 자신의 재능을 확대해가고 있다. 90년대의 시대정신을 내세운 'Loser'로 성공의 길에 들어섰지만 이후 그는 놀라운 상상력을 구사해내면서 대담하게 미지의 음악을 순차적으로 만들어나갔다. 그리고 이 작업물들은 현대 팝 씬을 활성화 시키는 어떤 자극제와도 같은 역할을 했다. 놀랍게도 이 젊은 거장은 아직 우리에게 보여줄 것이 더 많이 남아있는 것 같다.





Writer. 한상철

음악 애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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