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컬처프로젝트 20 5 Nights II/아티스트 정보' (5건)


The 1975는 추억의 그룹 스트록스(The Strokes)를 떠올리게 한다. 2000년대 초반 우리는 그들의 음악을 좋아했고, 스키니와 가죽 재킷 같은 패션 스타일에도 이끌렸다. The 1975도 똑같다. 유쾌하고 시원시원한 팝을 바탕으로 숙련된 연주를 곁들이는 The 1975. 이들의 노래는 당연히 귀에 착 달라 붙을 수밖에 없는 거부할 수 없는 노래다.

 




영국이 기다렸던 신예 밴드


한 인터뷰에 따르면 데뷔 앨범이 나왔던 2013년, 그들은 300회 가량의 공연을 소화했다. 보컬 매튜 힐리(Matthew Healy)는 그렇게 여기저기 뛰어다니면서 공연을 소화한 통에 여기가 어딘지 감을 잡지 못할 때도 있었다고 말한다. 두 달이나 가족의 얼굴을 못 보던 때도 있었는데 일찍이 예상됐던 일이다. 그들은 앨범 발매 전부터 밥 먹듯이 자국 공연 매진 기록을 세우던 밴드다.


영국에는 아델, 그리고 그 뒤를 바짝 추격하는 샘 스미스가 있다. 팝 시장의 기둥과 다름 없는 그런 대세 보컬리스트에 대한 강렬한 애정도 있지만, 한편으로 영국은 리버틴스나 악틱 멍키스 같은 자국의 젊은 밴드에 대한 오래된 기대와 믿음이 있다. 그런 팬덤이 새로운 스타에 대한 열망이 쌓일 무렵 The 1975가 튀어나왔다. 그들은 멋이 있고 과하지 않은 광기가 있었고, 그리고 무엇보다도 노래가 맑고 힘이 넘쳤으며, 게다가 신비로웠다. 메인스트림에 진입하기 전까지 1년에 공연을 열 번 할까 말까 했던 동네 밴드였다.



열세 살 소년들의 이야기


The 1975는 맨체스터에서 만난 고등학교 친구들의 밴드다. 지역에서 청소년 밴드 지원 프로그램이 생겨 2002년 결성했고, 처음엔 주로 펑크에 몰입해 닥치는 대로 커버만 했다고 말한다. 자신의 곡을 쓸 수 있을 때까지 그렇게 합주만 했다. 성공을 이룬 폼나는 밴드에 대한 환상이든 망상이든 꿈을 키우며 밴드 생활을 지속해 왔을 테지만, 꽤 오랜 시간 적극적인 활동이 없었던 걸 보면 그들은 그냥 순간의 즐거움에 취해 어쩔 줄 모르는 절친들의 순수한 모임이었던 모양이다.


10년이 지나 멤버들이 20대 초반을 맞이했을 때 첫 EP가 나왔다. 대표곡 ‘The City’의 뮤직 비디오가 공개됐고, 이런 저런 레이블로부터 구체적으로 계약을 논하는 연락이 오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들은 조급해하지 않았고 진짜로 끌리는 환경이 찾아오기 전까지 움직이지 않았다.


멤버들에 따르면 그들은 그럭저럭 여유로운 환경에서 원하는 바를 존중 받으며 그늘 없이 성장해왔던 중산계급 출신들이다. 게다가 보컬 매튜 힐리의 부모는 둘 다 영국에서 꽤 유명한 배우다. 그런 그는 한때 밴드의 드러머였다가 보컬이 나가는 바람에 뒤늦게 마이크 앞에 섰다. 조건도 유리했고 음악도 준수했던 만큼 일찍부터 쇼비즈니스의 단맛에 취할 수도 있었을 텐데 그들은 서두르지 않았고, 그들은 약 10년 동안 그저 하고 싶은 대로 했고 놀고 싶은 대로 놀았다.





침착하게 만든 데뷔 앨범


앨범 데뷔 전까지 만든 세 장의 EP는 그들이 폴라로이드라고 말하듯 바로 찍어서 바로 볼 수 있는 사진처럼 즉각적으로 재미있게 만든 작업물이다. 하지만 정규 앨범에 있어서는 마음가짐이 달랐다. 3일 걸린 곡도 있었지만 세 달이 걸린 곡도 있었으며, 결국 지난 5년간 만들고 다듬어왔던 노래들을 모았다. 유명해지기 전이니 서두를 필요 없이 자연스럽게 만들었다고 하는데, 데뷔와 함께 세상의 갑작스러운 관심과 사랑을 경험한 뮤지션 대부분이 그렇듯 활동은 지속된다 해도 그런 작품은 더는 나올 수 없을 것이다. 


악틱 멍키스와 폴스의 프로듀서였던 마이크 크로시가 그들의 데뷔 앨범의 작업을 도왔고, 그렇게 만든 앨범은 결국 영국 앨범 차트 1위에 앉았다. 그런 성과 앞에서 멤버들은 생각하길, 그들의 데뷔 앨범 [The 1975]는 밴드에만 미쳐 청소년기를 함께 보낸 네 명의 청년들이 십대 시절부터 쌓아온 기록이다. 그들 자신이 사랑하고 세상으로부터 사랑받는 작품이 나왔다는 건 끔찍하게 행복한 일이지만, 어쩌면 그들은 위험할 수도 있었다. 밴드 말고는 생각해본 일도 없고 집중해온 일도 없기 때문이다. 



흑백 사이에서 균형을 고민하다


밴드 말고 다른 미래를 생각해본 적 없기 때문에 그들은 다른 분야에선 미숙할지도 모르지만, 한편 밴드에만 집중해온 까닭에 그들은 일찍부터 당황하지 않고 이상적인 밴드상을 그릴 수 있었던 것 같다. The 1975는 명확한 콘셉트가 있는 밴드다. 공연을 할 때도 뮤직 비디오를 찍을 때도 일관된 색감, ‘블랙 앤 화이트’를 유지한다. 처음엔 음악에 대한 집중도를 높이기 위해 흑백으로 영상을 찍었다는데, 활동을 지속하다 보니 밴드는 명확한 색깔을 유지해야 한다는 걸 깨달았기 때문에 계속 고수하고 있는 스타일이라고 말한다.





흑백 이상으로 중요하게 생각하는 개념은 균형이다. 사랑과 섹스를 소재로 한 남녀의 현실적인 연애사를 가사로 푼다면, 사운드의 방향은 전형에서 벗어나 좀 더 재미있고 신선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식이다. 혹은 냉소적인 제스쳐를 취한다면 다음에는 농담도 좀 곁들여야 한다는 것이다. 사운드 구석구석에도 그런 균형감각이 드러난다. 그들은 이따금씩 1980년대풍 편곡을 입히는데, 신디사이저 위주로 도입부를 구성할 때도 있고 중간에 갑자기 강력한 관악 연주가 터져 나오기도 한다. 하지만 그들은 근본적으로 록 밴드인 만큼 화끈한 연주와 후련한 보컬로 쾌감을 만드는 일, 그래서 땀 흘리고 우리도 땀나게 하는 몰입이 우선이다.



Chocolate


과도하게 에너지를 쓰지 않으면서도 사람을 들뜨게 만드는 곡이다. 노래의 초반부에 전자장비를 활용해 사운드의 폭을 넓힌 뒤 경쾌한 멜로디를 터뜨리는데, 단순한 리프가 반복되지만 그걸 느낄 새가 없다. 아주 잘 만든 팝과 세련된 록 밴드가 만난 것 같은 곡으로 이 같은 균형의 구성은 데뷔 앨범의 또 다른 수록곡 ‘Settle Down’에서도 읽을 수 있다. 



출처: Youtube



Sex


‘Chocolate’가 그들의 여유를 보여준다면, ‘Sex’는 이 젊은 밴드가 가진 섹슈얼한 에너지가 두드러진다. 짜릿한 연주 중심의 노래이고, 그리고 힘을 다해 부르는 노래가 핵심이다. 가사는 남자친구가 있는 여자를 좋아하는 한 남자의 이야기로 좀 애처롭다. 남자는 관계의 발전을 원하지만 여자는 그를 단순한 파트너로만 생각한다. 이야기는 답답하고 애처로울지언정 사운드는 엄청 후련한 것이 노래의 매력이다.



출처: Youtube






Writer. 이민희

음악 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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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션 잭 화이트 혹은 영화 캐리비안 해적의 주인공 잭 스패로우가 떠오르는 인상이다. 체형은 호리호리하고 피부는 창백하며 긴 머리를 유지하고 페도라 두어 개를 돌려 쓴다. 너무 튀지도 밋밋하지도 않는 제임스 베이, 그의 음악을 열어보면 도무지 스물다섯의 데뷔 가수로 보이지 않는다. 원래 나이보다 열 살은 더 산 것 같고 한 10년은 더 활동해왔던 것처럼 보인다. 2015년 영국의 신예지만 마치 늘 봐왔던 사람처럼 느껴진다. 대표곡 ‘Let It Go’와 ‘Hold Back the River’가 전달하는 것처럼 그는 안정감으로 승부하는 싱어 송라이터다.

 




에릭 클랩튼을 발견한 열두 살 소년


그는 문득 집 어딘가에 방치된 삼촌이 놓고 간 다섯 줄짜리 스페니시 기타가 떠올랐다. 아버지에게 허락을 받은 뒤 그 낡은 기타를 가지고 연습에 매진했다. 열두 살 무렵 데릭 앤 도미노스의 ‘Layla’를 접한 뒤였다. 그가 흉내 내던 것들은 에릭 클랩튼처럼 록의 고전이 대부분이었고, 동시대 밴드라 해도 그가 선택했던 뮤지션은 킹스 오브 리온이었다. 일찍부터 굵직하고 묵직한 사운드에 사로잡힌 그였다.


맨 처음 씨디롬 교본으로 기타를 배웠다. 기초부터 차근차근 설명하는 교습법이 지루하다고 느껴 레슨으로 넘어갔지만 역시 큰 흥미를 못 느꼈다. 그런 그가 다음에 발견한 선생은 ‘훨씬 매력적인 선생’으로 회자한 ‘유튜브(Youtube)’다. 영상으로 핵심만 파악한 뒤 무한 연습에 들어갔다. 곧 플러그를 꼽았고 어쿠스틱에서 일렉트릭 기타로 넘어갔다.


열세 살 무렵, 괜한 짜증을 내며 일부러 가족과 대화를 단절하던 사춘기 시기부터 곡을 쓰기 시작했다. 한참 예민하고 우울했던 시기에 그가 마음을 달래는 방법이었다. 몇 년 뒤 그렇게 만든 곡으로 동네 무대에 섰고, 열아홉에 이르러서는 고향을 떠나 음악학교에 입학하게 된다. 처음엔 런던을 생각했지만 아무래도 체류비가 너무 비싸다는 판단에 브라이튼으로 갔고, 슈퍼마켓에서 카트를 정리하며 생계를 이어 갔다. 



공연이 끝나고 난 뒤


음악 전문기관 BIMM(Brighton Institute of Modern Music)에 입학했지만, 사실 그는 당시 수업보다 현장 공연을 통해 얻은 것이 더 많았다. 습득하고 연마한 결과를 즉각적으로 테스트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누군가는 그의 공연을 보고 런던행 열차를 탈 것을 제안하기도 했다는데, 사실 제안이라기보다는 단순한 칭찬에 가까웠다. 막연하게나마 성공한 미래를 그려보긴 했지만 구체적으로 실행할 방법을 찾지 못한 시기였다.


그러다 여느 때처럼 수업과 일을 끝내고 무대에 섰던 어느 밤, 그는 자신의 공연을 촬영하는 한 남자를 봤다. 범상치 않은 장비를 지닌 그는 본인 직업을 카메라 맨이라 소개했다. 제임스 베이가 들려준 첫 노래를 접하자 마자 반해 다음에 이어진 노래를 카메라에 담았는데, 이를 유튜브에 올려도 되겠냐고 물었다. 거절할 이유가 없었던 그는 그러라고 했는데, 몇 달이 지나 생각지도 못한 곳에서 갑자기 연락이 왔다. 음반사 리퍼블릭 레코드의 관계자가 유튜브를 통해 공연 영상을 봤다며 그를 만나길 원한다고 했다. 익명의 카메라맨이 찍었던 그 영상이 음반 관계자를 연결해준 것이다.


리퍼블릭은 그의 친구들이 권했던 런던보다 먼 곳, 뉴욕에 있었다. 우왕좌왕하며 맨하튼 거리를 가로지르던 그는 미국에 도착한지 6주 뒤에 계약을 성사하고, 내시빌에 위치한 블랙버드 스튜디오에서 녹음을 시작했다. 데뷔의 계기가 된 영상은 현재 사라진 상태이며, 제임스 베이는 그 영상을 찍은 카메라맨이 지금 어디서 무엇을 하고 지내는지도 모른다. 그저 그의 가슴 속에 존재할 뿐이다. 제임스 베이는 이 모든 경험을 한 편의 영화라고 설명한다. 

 




유튜브 너머의 세상


카메라를 든 천사를 만난 뒤 모든 작업이 순조롭게 진행되어 2013년 첫 EP [The Dark of the Morning]이 나온다. 호지어의 미국 투어에 참여해 넓은 무대를 경험하고, 버버리 패션쇼에서 공연했으며, BBC 라디오1에 진출해 라이브 쇼를 마쳤다. 지난해 그의 노래 ‘Let It Go’가 차트에 등장했고, 2015년 2월 브릿 어워즈를 통해 비평가상을 수상했으며, 3월 나온 데뷔 앨범 [Chaos and the Calm]은 순식간에 UK 앨범 차트 1위에 올랐다.


앨범에는 그가 어린 날부터 접했던 모든 음악이 자연스럽게 녹아 있다. 그는 가끔 기타 하나만 들고서 단조롭게 노래하는데, 여백의 포크와 밀당의 블루스를 아는 그의 노래이기에 결코 헐렁한 느낌이 들지 않는다. 그러다 그는 목청을 높여 힘의 노래를 부른다. 후련하다. 근본적으로 록과 소울에 대한 고른 이해를 가지고 노래하기 때문이다. 그는 스타일을 가리지 않는 가수로 일단 목소리가 좋고 음역대가 안정적이다.


그는 어린 시절 마이클 잭슨과 브루스 스프링스틴을 보면서 성장했다고 말한다. 마이클 잭슨처럼 상당한 영향력을 가지고 다양한 장르를 소화하고 싶었고, 브루스 스프링스틴처럼 비즈니스의 한복판에서 가치 있는 땀을 뿌리는 근육의 음악을 꿈꿨다. 우상은 먼 곳에 있지만 그런 높이로 향하는 것이 헛된 꿈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본인의 꿈에 근접해가는 오늘날의 그의 음악은 잭슨처럼 유연하고 스프링스틴처럼 뜨겁다. 



‘Hold Back The River’


그의 강점이 명확하게 담겨 있는 노래다. 처음엔 독백하듯 나직하게 시작했다가 나중에는 한 옥타브를 올려 노래하는데, 마치 긴장을 한참 쌓아두다가 하이라이트에서 믿음직하게 폭발하는 것 같다. 대척점에 있는 ‘Let It Go’나 ‘Scar’와 함께 들으면 보컬과 연주에 있어 그가 얼마나 힘 조절에 능숙한지를 살펴볼 수 있다.



출처: Youtube



‘If I Ain’t Got You’


알리시아 키스(Alicia Keys)의 유명한 노래로 가끔 공연을 통해 선보이며 반응을 얻게 됐다. 그에게 그 유명한 ‘If I Ain’t Got You’는 그저 기타 하나로 노래하기에 충분하며 화려할 것도 없다. 연주를 하고는 있지만 스킬을 과시하지 않고 간간이 코드만 잡는 것으로 할 일을 충분히 마친 것만 같다. 허전하거나 불편하다는 느낌은 없다. 그는 미더운 보컬로서 목소리를 드러내는 일에 주력하며 곡의 간절한 감정을 제대로 실어 나른다.



출처: Youtube






Writer. 이민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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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addr | edit/del | reply 김휘은 2015.12.31 09:20 신고

    사진입니다

  2. addr | edit/del | reply 김휘은 2015.12.31 09:21 신고

    사진입니다


마치 <트와일라잇>의 주요 캐릭터가 포스터 밖으로 나온 것만 같은 아담 램버트, 그는 예나 지금이나 참 한결 같은 인상으로 노래한다. 짙은 스모키 메이크업에 몸에 착 달라붙는 가죽 의상을 하고, 그리고 힐을 신고 무대 위에 오른다. 움직임도 남달라 몸을 많이 흔들지는 않으며 대신 강렬한 눈빛과 표정으로 충분한 매력을 발산한다. 일단 기본적으로 연기력이 있는 캐릭터다. 무대 위의 자아와 진짜 인간 사이에는 약간의 괴리가 있기 마련인데, 그는 그렇지 않으며 무대에서 보여지는 것이 온전한 자신이라 말한다. 다만 스포트라이트가 쏟아지고 관중의 함성이 들릴 때면 무언가 하나 더 튀어나올 뿐이라 덧붙인다.





아메리칸 아이돌의 이단아


잘 알려진 것처럼 아담 램버트는 TV 오디션 프로그램 <아메리칸 아이돌> 출신이다. 2009년 시즌8의 2위로 무대에서 내려왔는데, 시즌 우승자 크리스 알렌보다 훨씬 강렬한 기억을 남기고 대회와 작별했다. 그는 그런 쇼에 최적화된 인물로 일단 소리통이 크고 목청이 좋다. 그래서 노래가 시작되면 강력한 보컬로 사람들의 눈을 번쩍 뜨게 만든다. 다수의 청중을 상대하는 일에도 흔들림이 없었다. 그런 자신감과 오기는 그가 어릴 적부터 크고 작은 무대에서 다져온 경험을 통해 쌓아왔을 것이다. 대회가 끝난 뒤에도 그는 대회 출신들과 다른 길을 걸었다. 쇼가 끝나고 이름도 사라지는 숱한 도전자와 다르게 그는 데뷔 앨범으로 확실한 성공을 거뒀다. 그리고 ‘특별한 밴드’에 들어갔다.



뮤지컬로부터 시작된 자신감


그의 본격적인 활동은 대학 입학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대학에 입학했지만 5주 만에 그만 두고 학창시절에 경험했던 뮤지컬을 하기 위해 짐을 싸서 LA로 갔다. 원하는 걸 얻으려면 무언가 하나 포기해야 한다고 생각하면서 그는 캠퍼스를 떠났다. 그리고 생계를 위해 크루즈에서 일했고, 이따금씩 가이드 보컬로 알바를 뛰었다.


그러다 스물한 살에 뮤지컬 <헤어>에 캐스팅됐고, 유럽 투어 멤버가 되어 미국을 떠났다. 그는 거기서 얻은 것이 많다고 하는데, 어쩌면 지금 들려주는 음악과 그 음악에 걸맞는 스타일을 거기서 찾았는지도 모른다. 그는 회고하길 “나는 유럽에서 섹스, 약물, 로큰롤, 그리고 진짜 나를 발견했다.”고 말한다. 이후 그는 다양한 뮤지컬 극단 소속이 됐고, 록 밴드 시티즌 베인의 구성원이 되었으나 오래 가진 못했다. 그리고 곧 공개 오디션의 문을 두드린다. 많은 고민 끝에 내린 결정이었을 텐데, 결과적으로 그의 판단은 옳았다. 





이례적이고 충격적인 데뷔 무대


2009년의 아메리칸 뮤직 어워드 당시 현장에선 전화가 빗발치고 방송국이 난리가 났다. 이상한 신예가 나타나 전에 없이 수위 높은 공연을 선보였기 때문이다. 그 이상한 신예는 남성 댄서를 가죽끈으로 묶어 무대 위를 질질 끌고 다녔으며, 남성 기타리스트의 머리채를 휘어잡고 입을 맞췄다. <아메리칸 아이돌>을 졸업한 뒤 신곡 ‘For Your Entertainment’를 공개한 아담 램버트의 데뷔 무대는 실로 화끈하고 충격적이었다. 신예에게 이례적으로 크고 부담스러운 무대가 주어졌고, 그는 그 무대의 무게와 영향력을 충분히 감지한 뒤 충격의 퍼포먼스를 준비한 것이다. 그로 인해 그는 적이 많이 생겼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노래가 실린 데뷔 앨범은 논란과 무관한 성과가 돌아왔다. 2009년 발표한 [For Your Entertainment]는 빌보드 앨범차트 3위에 올랐다. 



퀸이 선택한 제 2의 프레디 머큐리


2012년 두 번째 앨범 [Trespassing](2012)이 나온 당시, 변함없이 왕성하게 활동하면서 무대를 가로지르긴 했지만 앨범의 유효기간이 처음보다 짧아 약간 걱정스러웠다고 그는 말한다. 그때 새로운 제안이 왔는데, 1980년대 노래를 재해석하는 작업으로 사실 다른 사람들의 노래를 부르는 건 익숙한 일이라 판단해 흔쾌히 수락했다. 그건 그가 오디션 시절에 늘 해왔던 일이고, 그런 노래를 받아들여 자신의 노래로 만드는 일에 그는 어느 정도 자신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에게 주어진 1980년대 노래는 바로 ‘퀸(Queen)’의 노래로 결코 수월한 것이 아니었다. 프레디 머큐리 없이 재결성을 선언한 퀸이 낙점한 대상이 그였던 것이다. 그러나 걱정할 일은 생기지 않았다. 전세계를 도는 투어팀에 합류한 그는 프레디 머큐리를 흉내 내려 하지 않았는데, 그건 근본적으로 불가능한 일이었고, 퀸의 오래된 팬들도 원하지 않는 일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는 과하지도 부족하지도 않은 자신의 노래를 불렀다. 늘 그래왔던 것처럼 전혀 쫄지 않으며 퀸의 기둥 로저 테일러와 브라이언 메이와 함께 2014년의 인생을 새로운 무대에서 보냈다. 엄청난 배짱이다.



 출처: Youtube



‘For Your Entertainment’


초기 시절부터 들려준 그의 음악은 어쨌든 통쾌한 록이다. 그리고 그 위에 뮤지컬에서 쌓았을 의도적인 과장과 풍성한 표현을 얹었다. 그래서 때때로 그의 음악은 마이 케미컬 로맨스, 폴 아웃 보이, 뮤즈를 상기하는 구석이 있다. 세고 묵직한 음악을 들려주는 밴드와 비슷한 소리를 낸다는 것인데, 혼자 터뜨리는 힘이 밴드를 이기는 것만 같다. 그런 그는 때때로 ‘Whataya Want from Me’ 같은 발라드를 통해 낭만적인 감정 표현을 즐기기도 하지만, 그래도 그는 ‘For Your Entertainment’ 같은 흥분의 노래가 훨씬 잘 어울린다. 그는 단순한 보컬리스트가 아니라 쇼의 지배자이기 때문이다.



출처: Youtube



‘The Original High’


돌이켜보니 1집과 2집은 화려하고 강렬한 표현을 즐기는 괴짜 신예의 인상을 굳히는 작업으로 두 앨범의 성격이 비슷했다. 하지만 그는 반복을 그리 좋아하지 않는 것 같다. 기꺼이 퀸이라는 모험의 세계에 몸을 던졌고, 일정을 마친 뒤에는 전과 다른 앨범을 낸 것이다. 2015년 발표한 3집 [The Original High]는 흡혈귀 같은 록커 이미지에서 벗어나 신스팝과 댄스 요소를 강화하는 것으로 방향을 틀었는데, 그 중에서도 타이틀 트랙 ‘The Original High’는 앨범의 성격을 압축하는 춤추기 좋은 노래다.



출처: Youtube






Writer. 이민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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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6월 복귀한 네이트 루스, 그가 전과 조금 다른 방식으로 돌아왔다. 첫 솔로 앨범을 발표했고 7월에는 서울에서 공연도 열었다. 사운드의 스케일은 전만큼 웅대했고 늘 그랬던 것처럼 최선을 다해 노래했다. 우리가 앨범과 공연을 통해 확인한 그의 솔로 앨범 음악은 Fun.(펀) 시절과 비슷한 만족을 줬지만, 곡의 내용은 달랐다. Fun.의 성공 뒤에 겪은 일이 달라졌기 때문이다. 





그래미가 선택한 노래, We Are Young


뮤지션을 꿈꾸며 실력을 연마하던 시절로 거슬러 올라가면, 그는 제멋대로 노래하는 일에 핏대를 세우는 소년이었고 레슨이 필요하다고 느끼긴 했지만 그렇게 배우고 싶지 않았다고 말한다. 대신 그는 자동차 안으로 들어가 보컬이 부각된 록의 명곡들을 틀어놨고, 그걸 따라 부르기 위해 온몸으로부터 에너지를 끌어올렸다. 그렇게 힘차게 노래하던 그는 십대의 끝자락에서 친구들과 함께 첫 밴드 ‘더 포맷’을 결성했고, 차곡차곡 EP를 발표하다가 소속사와 틀어져 레이블을 설립했다.


그 다음의 이력은 그 유명한 ‘Fun.’이다. 밴드의 기본부터 비즈니스의 허와 실, 그리고 구성원 사이의 음악적 견해차까지 다 경험한 뒤에 다른 밴드에서 활동하는 마음 맞는 동료들과 함께 결성한 밴드로, 데뷔 시절까지만 해도 크게 주목을 받진 못했다. 그러나 2집 [Some Nights](2012)가 나오면서 엄청난 성공을 이룬다. 일단 뮤지컬 드라마 <글리>가 그들의 노래 ‘We Are Young’을 택했다. 이전까지 <글리>는 히트한 팝 위주로 노래를 선별해왔으나 드라마 프로덕션이 본격적으로 노래 발굴에 나서면서 ‘We Are Young’은 이례적으로 싱글 공식 발매 전에 드라마측에 전달된 것이다. 더불어 미국 슈퍼볼 기간 동안 노출된 자동차 광고에도 그들의 노래가 쓰였다. 드라이빙 비트와 달콤한 멜로디가 구석구석 잘 살아있다는 것이 선택의 이유였다. ‘We Are Young’은 느리게 시작해 절정의 대목에서 후련하게 터뜨리는 노래로 오랜 시간 드러나지 않아왔다가 마침내 부상한 Fun.의 여정을 닮았다. 



출처: Youtube



이윽고 [Some Nights]는 약 300만 장이 팔리며 빌보드 앨범 차트 1위로 갔다. 그들의 대표곡 ‘We Are Young’은 2013년 그래미의 왕관을 쓰고 올해의 노래가 되었다. 네이스 루스에 따르면 이는 데뷔 12년 만에 이룬 일이고, 따라서 더는 젊지 않은 시기에 돌아온 감동적인 성과다.



그가 만난 위대한 사랑


어마어마한 성공을 뒤로 하고 그는 차기작을 목표로 스튜디오로 돌아가 프로듀서 제프 바스커(Jeff Bhasker)와 긴 시간을 보냈다. 그런데 작업을 하다 보니 버리는 노래가 더 많았는데, Fun.의 전작과 너무 비슷하다는 게 이유였다. 반대로 애착이 가고, 그래서 살을 더 입히고 싶은 노래들은 메시지가 달랐다. 이전까지 Fun.으로 활동하면서 그가 집중해왔던 주제들은 고민과 냉소, 그리고 그 끝에 찾아가는 희망에 가까웠는데, 그는 만족과 환희를 표현하는 일에 갑자기 엄청 공을 들이기 시작한다.


사실 그의 음악이 달라지기 전에 그가 먼저 변했다. 새로운 사람을 만났기 때문이다. 그는 현재까지 패션 디자이너 샬롯 론슨(Charlotte Ronson)과 연애 중이다. 사만다 론슨의 쌍둥이 자매이자 뮤지션 마크 론슨의 여동생인 그녀는 12년 만에 빛을 본 뮤지션 네이트 루스에게 300만 장의 세일즈보다 더 큰 기쁨과 행복을 안겨주는 존재였던 것이 분명하다. 사랑에 빠진 그는 그녀와 더 많은 시간을 보내기 위해 곧장 집을 뉴욕으로 옮겼다. 1년 뒤에 발표한 솔로 앨범은 그 시기에 작업한 결과물이다.


 



앨범의 대표곡 ‘Nothing Without Love’를 만들었을 때, 도저히 Fun.의 형태로 발표할 수 없는 노래라는 걸 깨달았다. ‘Nothing Without Love’는 그가 전과 다른 관점으로 라디오를 받아들이기 시작한 시점에 나온 노래다. 세상엔 사랑을 다루는 노래는 많지만 그가 느끼고 있는 매일의 사랑의 기쁨과 행복을 제대로 표현하는 노래는 생각보다 찾기 어려웠다. 그래서 그는 기쁘지 않은 라디오를 껐고, 대신 벨 앤 세바스찬 같은 부드러운 노래들을 엄청나게 듣기 시작했다. 그리고 세상 어디에도 없는 아름다운 긍정의 노래를 구상했는데, 그렇게 해서 나온 노래가 ‘Nothing Like Love’다.



밴드 vs 솔로


사실 처음엔 곡의 뼈대를 만든 다음 Fun.의 멤버 둘을 불러 연주를 입혀봤다고 한다. 하지만 원했던 그림이 나오지 않았다. 사실 밴드의 속성이 그렇듯, 연주자를 고용한 형태가 아니라면 곡 작업에 있어 자신의 이야기만 주장할 수는 없다. 일단 멤버들을 설득할 만한 결과가 나와야 하고, 그 다음에 밴드 바깥의 누군가가 어떻게 받아들일지를 생각해야 한다. 하지만 그는 그러고 싶지 않았고 좀 더 이기적으로 앨범을 만들고 싶었다.


스튜디오에 돌아가 앨범을 찍고 활동을 지속하면서 돈을 계산하는 것은 쉬운 일이었다고 그는 말한다. 하지만 그런 판에 박힌 비즈니스에 이제는 관심도 없고 의미도 못 느꼈다. 그래서 자신한테 편한 것이 다른 사람한테도 편할 것이라는 마음으로 노래를 썼다. 차트나 세일즈 기록을 살펴보면 성과는 사실 Fun.보다 좋지 않다. 하지만 숫자가 인간의 진실을 말하지는 못하는 법, 확실히 그는 전보다 행복해 보인다. 진짜로 자신이 좋아하는 일에 매달리는 사람이 매력 없을 리가 없다. 


메시지는 달라졌지만 음악의 큰 골격은 전과 크게 다르지 않다. 그는 여전히 웅장한 사운드를 즐기고, 그 사운드와 힘을 겨루듯 열정적으로 노래한다. 사랑만이 오직 삶의 이유이고 가장 위대한 개념이라 거듭 주장하는 것처럼. 성공 이후에는 그만한 성과를 다시 만들어야 한다는 강박이 따르기 마련일 테지만 그는 그 모든 압박으로부터 자유로워 보인다. 우리는 그로부터 Fun. 시절과 같은 열정과 동시에 Fun. 시절에는 없었던 여유를 함께 보고 있다. 만족스러운 복귀다.



Nothing Without Love


Fun.의 대표곡 ‘We Are Young’은 퀸의 ‘We Are The Champions’에 준하는 희망의 송가 같은 느낌으로, 각각의 전투를 치르고 있는 세상 모든 개개인을 위해 필요한 노래 같았다. 홀로 발표한 ‘Nothing Without Love’도 큰 스케일로 구성한 노래라는 점에선 이와 비슷해 보인다. 하지만 전작의 거창한 주제와는 달리 순박한 고백을 주제로 노래의 내용이 변했다. 사랑밖에 모른다고 큰 목소리로 외치는, 너무 바보 같아서 사랑스러운 남자를 보는 것만 같다. 적절한 복귀의 방향이다. 그는 필요한 것을 유지했고, 필요한 만큼 내용을 바꾼 결과물로 돌아왔다.



출처: Youtube



You Light Up My Fire


‘Nothing Without Love’는 진지한 반면, 같은 앨범에 실린 ‘You Light Up My Fire’는 화사하게 깡총거리는 느낌이다. 사랑에 빠진 뒤 너무 행복해 발을 동동 굴리는 남자가 노래 안에 있으며, 그 행복한 남자가 듣는 우리로 하여금 행복하게 만든다. 듣자 마자 바로 흥얼거리게 되는 후렴구 멜로디 또한 이 노래의 강점이다. 


 

출처: Youtube





 

Writer. 이민희

음악 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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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addr | edit/del | reply ㅇㅇ 2016.01.08 11:00 신고

    노래이름이 Nothing like love가 아니라 Nothing without Love 입니다!! 너무 기대되네요~~

  2. addr | edit/del | reply Favicon of http://superseries.tistory.com 슈퍼시리즈 2016.01.08 11:37 신고

    안녕하세요 ㅇㅇ님, 해당 단어 수정했습니다. 컬처블로그에 관심을 갖고 의견 주셔서 감사합니다.


그의 음악은 뜯어볼 구석이 많다. 춤추기 좋은 소리와 리듬을 잔뜩 풀어내는 것으로 공연장을 찾아온 사람들을 들었다 놨다 한다. 한편으로는 다양한 보컬리스트와 나누는 협업을 즐기고, 화려한 디제잉 묘기 대신 인상적인 멜로디를 남기고자 하는 의욕이 강하다. 그런 그는 애초부터 EDM 같은 고정된 영역에만 머무를 마음이 없었다. 그의 꿈은 더 컸다. 성공한 DJ를 넘어 좋은 음악을 소개하는 뮤지션으로 인식되고 싶어 했다. 그의 꿈은 어느 정도 실현된 것 같다. 노래가 살아 있는 앨범이 두 장 나왔다. 나아가 노래의 힘을 아는 동료 뮤지션들이 그와 함께 작업하기를 원했다.





그가 만난 ‘정의’


본명 안톤 자슬라브스키(Anton Zaslavski), 1989년 러시아 태생으로 어린 날 가족과 함께 독일로 넘어와 남서부 지방의 카이져라우텐에서 성장했다. 학교 선생님이자 기타리스트였던 아버지, 피아노 교사였던 어머니 덕분에 접할 수 있는 음악의 폭이 넓었다. 악기도 일찍 접했다. 그는 지금도 기회가 있을 때마다 공연에서 피아노를 연주한다.


십대 시절 밴드 활동을 시작해 메탈하는 친구들과 어울렸는데, 그리 오래가진 않았다. 2009년 프랑스 일렉트로니카 뮤지션 ‘저스티스(Justice)’를 발견하면서 그는 변했다. 제드에 따르면 저스티스는 단순한 DJ가 아니었다. 전자음악의 전형에서 벗어나 비트와 함께 훌륭한 멜로디를 남긴 진짜 뮤지션, 나아가 그간 그가 알고 있었던 장르의 개념을 뒤엎은 아티스트였다. 막 20대가 된 그는 자신을 사로잡은 음악에 열정적으로 뛰어들었다. 대체로 즐겁고 가끔은 답답한 고민과 연구가 시작됐다. 일렉트로니카를 파기 시작한 것이다.


PC로 음악을 만드는 방법을 어느 정도 익힌 그는 점점 취향의 범위를 넓혀갔다. 하드록, 재즈, 펑크 등 닥치는 대로 대중음악의 교본들을 흡수하던 중에 그는 다프트 펑크(Daft Punk)의 ‘One More Time’을 접한다. 사실 그렇게 좋은 노래는 아니라고 생각했는데, 노래가 실린 앨범을 쭉 들어봤더니 다프트 펑크 또한 저스티스와 비슷한 충격이 왔다. 그들 음악에는 명쾌한 멜로디가 있었다. 그리고 자신은 물론 세상의 가슴을 뛰게 만드는 어마어마한 에너지가 있었다. 제드에게 다프트 펑크란 단순히 전자음악의 상징적인 이름이 아니라 위대한 음악을 만든 아티스트였다.



인터넷으로 만난 스크릴렉스


저스티스와 다프트 펑크에 미쳐 있었지만, 그는 그들과 똑같은 음악을 만들겠다는 열망은 없었다고 말한다. 이를 참고해 자신의 개성을 담아 비트와 멜로디가 함께 살아 있는 강력한 음악을 생각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런 음악은 아직 세상에 없다는 확신을 가지고 있었다. 그런데 곧 그런 확신이 와르르 무너진다. 여러 DJ가 드나드는 리믹스 전문 웹사이트에서 스크릴렉스(Skrillex)를 발견하면서다. 제드가 추구하고 구상했던 음악이 거기에 있었다. 심지어 이미 자신이 만든 것보다 훨씬 뛰어났다.


스크릴렉스로부터 DJ의 전형이 아닌 완벽한 뮤지션을 본 그는 존경의 마음을 담아 쪽지를 보냈다. 설마했으나 마침 온라인 상태였던 스크릴렉스로부터 2분만에 답이 왔다는데, 반응에 탄력을 받은 제드는 부끄러움을 억누르고 자신이 만든 미완의 노래를 그에게 보냈다. 독일과 미국을 오가는 온라인 쪽지로 시작된 인연은 결국 공식적인 데뷔로 이어졌다. 제드는 2011년 스크릴렉스가 설립한 레이블 오슬라(OWSLA)가 소개한 첫 번째 뮤지션이다. 마침내 앨범을 발표했을 때, 그는 스크릴렉스와는 다른 결정을 내렸다. 존경한 선배의 기계적이고 과감한 스타일과 비교해 그의 음악은 한결 따뜻했다. 하지만 나풀거리지 않았다. 온기, 그리고 힘이 함께 느껴지는 인간적인 사운드였다.





그가 만난 넓은 세상


앨범 데뷔 이전까지 그는 온라인에서 활발하게 활동했다. DJ 전문 사이트 비트포트에 꾸준하게 작업물을 등록했고, 웹사이트 내에서 이루어진 리믹스 콘테스트에서 2위를 기록했다. 경험과 기록이 쌓이기 시작하자 온라인이 아닌 오프라인이 그를 원했다. 앨범과 공연을 준비해야 했다. 당시 그는 콤플렉스에 시달렸다고 말한다. 영어로 유창하게 말할 자신이 없어서 그랬다. 그때 그를 도운 인물도 스크릴렉스다. 공연에 매번 초대할 테니 와서 자신이 관중과 어떻게 소통하는지를 보라 했다.


한때 영어 울렁증에 떨던 인간적인 온라인 DJ는 결국 앨범 두 장을 발표했고, 동시대의 팝 아이콘과 공동작업을 논하는 국제 뮤지션이 됐다. 그는 아리아나 그란데의 대표곡 ‘Break Free’의 작곡과 프로듀싱을 비롯해 믹싱에 참여한 피처 아티스트다. 그리고 레이디 가가의 투어에 DJ로 시작해 그녀의 다섯 번째 앨범 [Artpop]에 투입돼 세 곡을 마감한 프로듀서다. 일본 아티스트 아무로 나미에도 그를 원했다. 그와 작업한 아티스트들은 그간 발표했던 노래들과 차별화된 결과를 그에게 의뢰했다. 그의 가능성과 비전을 믿었고, 그는 화끈한 노래로 그 믿음에 응답했다.



비틀스를 통해 배운 것


그는 각종 DJ들이 노래가 시작되기 전까지 1분 이상 전주를 깔아놓는 이유를 알지 못한다. 그렇게 불필요하게 곡을 늘이면서 폼을 잡는 일에 관심이 없다. 대신 비틀스의 방식, 혹은 퀸의 방식에 이끌렸다. 발표한 두 장의 앨범 [Clarity](2012)와 [True Colors](2015) 모두 위대한 아티스트에게 빚을 지고 있다고 그는 설명한다.


물론 제드의 음악과 비틀스의 음악은 다르다. 다만 제드는 비틀스로부터 대중음악의 본질, 즉 훌륭한 노래의 구성법을 배웠다. 디제잉 기반의 폭풍 같은 기계적인 사운드는 그가 들려주는 음악의 중요한 특징이다. DJ가 펼칠 수 있는 전자음악의 세계는 무한대에 가까운 데다 다양한 동료 아티스트를 만나면서 그의 사운드도 조금씩 변했다. 하지만 본질은 달라지지 않는다. 그는 지금까지도 멜로디를 놓지 않는다.



Spectrum


데뷔 앨범 [Clarity]의 대표곡이다. 처음 코드를 풀어놨을 때만 해도 이게 과연 괜찮은 클럽튠이 될 수 있을지, 그게 아니라면 다른 아티스트에게 줄 만한 곡인지 그는 뚜렷한 확신을 갖지 못했다고 말한다. 그러다 매력적인 보컬리스트 매튜 코마를 만났고, 그는 제드가 대단히 만족할 만한 멜로디를 얹었다. 그렇게 완성된 ‘Spectrum’은 제드에 따르면 앨범의 내용을 명확하게 요약하는 노래다. 보컬의 표현범위도 넓고, 자신의 사운드 메이킹도 살아 있기 때문이다. 여담으로 한국에서도 반응이 좋았다. 2013 가요대전을 통해 SM 출신의 가수들이 준비한 댄스 퍼포먼스에 제드의 ‘Spectrum’이 흘러나왔다.



출처: Youtube



Clarity


빌보드 8위를 기록한 제드의 대표적인 히트곡으로, 보컬로 참여한 폭시스의 싱그러운 목소리가 두드러진다. 제드의 성향이 그렇듯 누구나 쉽게 기억할 만한 선명한 멜로디, 그리고 DJ의 역량을 동시에 살펴볼 수 있는 노래이기도 하다. 처음엔 레이블에서 의심했던 노래다. 재생시간이 4분 30초가 넘기 때문이고, 그러면 라디오가 반기지 않기 때문이다. 처음엔 진짜 그랬다고 한다. 그런데 클럽을 통해서 퍼져나가기 시작했고, 결국엔 라디오가 기꺼이 선택하는 노래가 됐으며, 더 시간이 흘러서는 2014년 그래미로 갔다. 댄스분야 올해의 노래를 수상한 노래다. 



출처: Youtube





Writer. 이민희

음악 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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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addr | edit/del | reply 2016.01.10 00:23 신고

    스엠이 한건 spectrum 입니당!

  2. addr | edit/del | reply Favicon of http://superseries.tistory.com 슈퍼시리즈 2016.01.11 15:18 신고

    안녕하세요 엉님, 해당 타이틀 spectrum으로 확인 후 수정하였습니다. 컬처 블로그에 관심을 갖고 의견 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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