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컬처프로젝트 16 스노우 화이트/현장스케치' (4건)


착한 백설공주와 나쁜 계모 왕비의 그 유명한 권선징악 스토리가 두 여성 간의 섹슈얼리티 문제로 흥미롭게 다시 태어났다. 앙쥴렝 프렐조카쥬(이하 프렐조카쥬)는 상반되는 이미지의 의상과 다른 장르의 춤 동작으로 공주와 왕비의 캐릭터를 대비시켜 <Snow White(스노우 화이트)>의 두 축으로 삼는다. 이런 시도를 통해 백설공주는 자신의 욕망에 충실한 사춘기 소녀로, 계모 왕비는 아름다움에 관한 강박증에 걸린 성인 여성으로 탈바꿈된다. 패션 디자이너 장 폴 고티에가 디자인한 인상적인 의상들은 이 같은 새로운 해석에 효과적으로 힘을 보탠다.





‘누구나 아는 이야기’를 뒤집는 과감한 상상력


오늘날 우리가 알고 있는 동화의 원작들은 사실 선정적이고 잔혹한 설정을 지닌 것들이 많다. 디즈니 애니메이션의 어린이 버전으로 오랫동안 알려진 ‘백설공주’ 이야기도 마찬가지다. 프렐조카쥬는 바로 이 이야기의 어두운 진실에 관심을 가졌다. 그는 디즈니 버전 대신 그림 형제의 원작을 바탕으로, 장기인 관능적 안무와 연출을 가미해 자신만의 색깔을 덧입혔다. 이런 과정을 거쳐 오랜 시간 동안 익숙해졌던 ‘백설공주’ 이야기는 한층 새롭고 강렬하게 탈바꿈했다.





이 작업에서 가장 핵심적인 것은 기존 캐릭터를 재해석하는 일이다. <스노우 화이트>는 초반부부터 백설공주와 계모 왕비의 기존 이미지를 해체하는 비주얼로 이 극이 ‘새로운 이야기’임을 선언한다. 클래식 발레나 네오클래식 발레의 동화적 튀튀(클래식 발레리나 스커트) 대신 옆 라인을 과감하게 드러낸 의상을 입은 백설공주는 순진한 소녀의 모습보다는 여성으로서의 욕망이 시작되는 과도기적 숙녀로 그려진다. 반면 왕비는 진한 메이크업과 가터벨트 차림, 성숙한 여인의 굴곡을 드러낸 아슬아슬한 옷차림으로 백설공주와 상반된 매력을 보여준다. 애니메이션 속 패션을 재현한 듯한 왕비의 비주얼은 그야말로 압도적이다. 이처럼 극단적으로 대비되는 인물 설정은 기존의 권선징악적 서사 대신 사춘기 소녀와 성인 여성의 욕망과 섹슈얼리티 문제로 이야기의 틀을 자연스럽게 재배치한다.


기존 서사의 ‘낯설게 하기’에 성공한 <스노우 화이트>는 이런 강력한 해석의 힘을 원동력으로 새로운 메시지나 춤의 영역을 향해 거침없이 나아간다. 그 중에서도 특히 두드러지는 것은 계모 왕비의 존재감이다. 공주를 질투하는 못된 계모 정도로 단순화됐던 기존 설정과 달리 <스노우 화이트>의 왕비는 거울 앞에서 떠날 줄 모르는 나르시스적 여성상을 보여준다. 그런 자기애적 판타지가 무너졌을 때, 왕비는 주변을 휘젓는 과격한 발차기 동작을 통해 그 자괴감을 그려낸다. 백설공주가 섬세한 발레 테크닉으로 로맨틱한 여성상을 보여준다면, 왕비는 거친 현대무용으로 히스테리컬한 여성의 단면을 표현한다. 특유의 장신구와 의상들을 하나둘씩 벗어 던지면서 노파로 변하는 장면에서는 흡사 <지킬 앤 하이드>의 대표적인 변신 장면을 떠올리게 하며 진한 인상을 남긴다.



프렐조카쥬가 창조한 ‘컨템포러리 백설공주’




프렐조카쥬의 안무적 특징은 감각적이고 세련된 에로티시즘에 있다. 그의 전작들에서 나타나는 공통적인 안무에는 무용수 사이의 절묘한 접촉과 박력 넘치는 신체의 전시가 들어가 있다. 이런 특징은 <스노우 화이트>에서도 그대로 이어진다. 클래식 발레가 주를 이루는 국내에서 모던 발레 또는 컨템포러리 발레는 그 추상적 움직임 때문에 관객들에게 대체로 난해하게 수용되곤 한다. 이는 온갖 종류의 철학적 주제로 점철된 현대무용이 어렵게 느껴지는 것과 일맥상통하는 것이다. 그런데 <스노우 화이트>에서의 발레 신들은 충분히 ‘현대적’이면서도 어렵지 않게 다가온다. 가령 백설공주와 왕자의 2인무는 정적 속에서 무반주로 시작함에도 관객의 시선을 확 잡아끈다. 이런 몰입이 가능한 것은 프렐조카쥬의 섬세한 에로티시즘이 있기 때문이다. 두 사람이 보여주는 로맨틱한 디테일들은 프렐조카쥬의 특징을 오롯이 담아낸다. 왕자가 반대쪽으로 쓰려지려는 백설공주의 발목을 잡아 절묘하게 균형을 유지하는 순간이나, 머리로 백설공주의 배를 부드럽게 밀쳐내는 장난스러운 동작들은 그야말로 연인들만이 보여줄 수 있는 은밀한 ‘연결성’을 담고 있다.


이런 연결성은 후반부에서 또 한 번 인상적으로 반복된다. 왕자가 죽은 백설공주의 시체를 부둥켜안고 추는 2인무가 그것이다. 가사상태를 연기하는 백설공주와 그녀를 끌어안고 추는 왕자의 춤은 고난도의 테크닉과 집중력을 필요로 하는 명장면이다. 의식을 잃은 공주의 몸이 중력과 왕자의 동작에 따라 이리저리 휩쓸리는 아슬아슬한 순간, 관객들의 몰입감은 어느 때보다 높았다. 왕자의 키스로 인해 백설공주가 부활한다는 원작의 설정보다, 격렬한 춤을 통해 되살아난다는 <스노우 화이트>의 해석은 훨씬 낭만적이면서 공감을 자아낼 만하다.



기괴하면서도 매력적인 판타지


기본적으로 원작의 정서를 따라가는 까닭에 이 작품의 무대는 시종일관 어둡다. 이는 처음부터 이 이야기가 ‘그들은 행복하게 살았습니다’로 끝나는 동화가 아니라는 것을 반증한다. 결국 계모 왕비는 원작처럼 불에 달군 쇠구두를 신고 죽을 때까지 몸부림치며 죽음을 맞는다. 이런 결말을 향해 달려가는 <스노우 화이트>는 ‘스노우 화이트’ 옷을 입은 백설공주의 등장에 흰 조명을 비춘다. 이는 극 전반을 지배하는 계모 왕비의 강렬한 비주얼과 균형을 맞추려는 연출과 조명의 예술적 감각이 빛나는 부분이다.





원작에는 몇 가지 초현실적인 설정이 등장하는데, 그 중 하나가 ‘마법의 거울’이다. <스노우 화이트>에서도 왕비의 애장품인 마법의 거울은 그녀의 일그러진 내면과 추악한 욕망을 드러내는 효과적인 도구가 된다. 거대한 액자형 거울 앞에 선 왕비와 거울에 비친 왕비의 모습이 함께 보여주는 대칭적 움직임은 인물의 나르시스적 면모를 인상적으로 보여준다. 또 거친 질감의 절벽 사이에서 나타난 난쟁이들, 몸에 와이어를 끼우고 공중에서 등장해 백설공주를 들어올리는 친모 왕비의 영혼은 발레에서는 쉽게 볼 수 없는 연출로 눈길을 끌었다. 


의상과 음악은 처음부터 프렐조카쥬의 안무와 함께 이 파격적인 해석의 핵심적 요소였다. 패션 디자이너 장 폴 고티에의 의상은 작품 전반에 걸쳐 강한 인상을 남겼다. 특히 계모 왕비와 백설공주에 대한 ‘선택’과 ‘집중’은 <스노우 화이트>가 기존 이야기의 전형을 극복할 수 있게 한 일등공신이 됐다. 구스타프 말러가 작곡한 웅장한 교향곡의 선율은 로맨틱하면서도 동화적인 원작의 본질을 연결해주며 작품에 안정감을 주는 데 기여했다. 


컨템포러리 아트에서 ‘파격’은 이제 일상적인 것이 됐다. 하지만 원작의 내용과 형식을 극단적으로 바꿔 전혀 다른 느낌으로 만드는 시도는 종종 ‘파격’보다 ‘파괴’라는 결과를 초래하곤 한다. 때문에 진정한 파격은 비슷한 내용과 형식을 미묘하게 비틀어 전혀 다른 정서와 메시지를 도출할 때 가능하다. <스노우 화이트>의 파격이 인상적이었던 것은 바로 이런 까닭에서다.





Writer. 송준호
컬처 칼럼니스트. [더 뮤지컬] 부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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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addr | edit/del | reply Favicon of http://superseries.kr 슈퍼시리즈 2014.11.25 19:45 신고

    안녕하세요, 현대카드 현대캐피탈 블로그 담당자입니다.
    당사 블로그 운영 정책에 따라 광고성 문구가 삽입된 댓글로 삭제되었음을 알려드립니다.


Snow White의 막이 올랐던 날, 공연에 앞서 앙쥴렝 프렐조카쥬의 특별 강연이 열렸습니다. 현대카드 페이스북 페이지를 통해 응모한 신청자들을 발레 프렐조카쥬에서 직접 살펴보았고 그 중 25명이 강연에 초대되었습니다. 앙쥴렝 프렐조카쥬는 “여러분을 직접 만나게 되어 기쁩니다. 이제 강연 후엔 공연을 보시게 될 텐데 아무쪼록 즐거운 시간이 되셨으면 합니다”라며 참석자들을 반겼습니다. 팬들과 함께 모인 아늑한 방 안에서 그는 Snow White의 비하인드와 자신에 대한 이야기를 직접 들려 주었습니다.





“내가 거장인지는 솔직히 잘 모르겠다”


이미 들어 아시겠지만 Snow White를 일컬어 세 명의 거장이 만난 작품이라 말합니다. 패션계의 앙팡 테리블(Enfant Terrible) 장 폴 고티에가 의상을 디자인했고, 작곡가 구스타프 말러의 교향곡이 배경음악으로 쓰였으며, 제가 안무를 맡았죠. 솔직히 저를 거장이라고 부를 수 있을 지는 아직 잘 모르겠습니다. 다만 Snow White란 작품을 만들면서 <백설공주>의 원작을 해치지 않는 선에서 안무를 짜려 노력했고, 몸으로 표현할 수 있는 감정이 어디까지인지 그 감정을 극대화시키고자 했습니다.



“구스타프 말러와 그림 형제는 비슷한 점이 있다”


여러분들이 보시게 될 Snow White는 그림 형제의 동화 <백설공주>를 원작으로 합니다. 그림 형제는 독일의 작가들로 로맨틱하면서도 모던한 이야기를 만들어냈습니다. <백설공주>는 세월에 따라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면서 조금씩 다른 스토리로 변주되기도 했죠. 구스타프 말러 또한 독일의 작곡가로 로맨티시즘이 끝나갈 무렵, 로맨티시즘과 모더니즘 사이의 다리에서 독특한 작품 세계를 펼쳤습니다. 구스타프 말러와 그림 형제 모두 시대적인 상황을 반영하는 비슷한 점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말러의 교향곡 200여 개 버전을 전부 다 들어 봤다”


구스타프 말러의 교향곡이 1번부터 10번까지 있고, 각 교향곡 별로 서로 다른 지휘자와 오케스트라의 버전이 20개쯤 있으니, 계산해 보면 약 200여 개에 달하는 곡을 모두 들어본 셈이군요. 같은 곡이라도 어떤 오케스트라가 연주하느냐에 따라 느낌이 매우 달랐습니다. 지휘자의 해석에 따라 완전히 다른 뉘앙스를 풍기기도 하고요. 예를 들어 왕비가 백설공주에게 독사과를 먹이는 씬에서는 격정적이고도 잔인한, 마치 걷잡을 수 없는 폭풍우와 같은 느낌이 밀려드는 버전을 골랐습니다. 각 장면마다 제 안무와 의도에 가장 잘 들어맞는 것으로 하나하나 추려냈기 때문에 Snow White에 등장하는 배경음악들은 서로 다른 오케스트라와 지휘자의 곡들로 채워져 있습니다. 말러에 대한 다양한 해석들이 흥미로웠고 결과적으론 재미있는 과정이었습니다.



“가장 좋아하는 곡은 ‘아다지에토’다”


말러의 교향곡을 듣고 있으면 어떤 풍경이 그려집니다. 숲도 있고, 호수도 있고, 크게 비상하는 새도 있습니다. 자신의 귀로 들리는 풍경과 눈으로 보이는 풍경을 비교해 보는 것은 Snow White의 재미있는 감상 포인트가 될 겁니다. 개인적으로 말러의 곡 중에서 교향곡 5번 아다지에토(Adagietto)를 제일 좋아합니다. 독사과를 먹고 죽은 백설공주가 왕자와 함께 춤을 추는 장면에서 이 음악이 흘러 나오죠.



“죽은 백설공주가 왕자와 함께 추는 파드되 안무가 가장 힘들었다”


안무를 짜면서 가장 힘들었던 장면이 바로 이 파드되(Pas de deux, 발레에서 두 사람이 함께 추는 춤을 뜻함)입니다. 왕자가 죽은 백설공주의 몸을 껴안고 춤을 출 때, 공주는 죽어 있는 신체를 표현하면서 동시에 상대방의 움직임을 서포트 해주어야 합니다. 극 중에서 백설공주는 죽은 육신인 상태지만 무용수의 입장에선 넋 놓고 있으면 안 되는 거죠. 이 씬에서는 안무가로서 굉장한 상상력이 필요했습니다. 또 감정적으로도 오버하지 않는 슬픔을 담아내고 싶었고요. 힘들었지만 재미있었고 애착이 가는 장면입니다.  





“Snow White의 의상은 어느 시대에나 속하는 동시에 어느 시대에도 속하지 않는다”


처음 장 폴 고티에에게 무대의상을 의뢰했을 때 그는 무려 200개가 넘는 데셍을 보내왔습니다. 가장 마음에 들었던 것은 백설공주의 의상입니다만, 작품에 등장하는 모든 옷들을 하나도 빼놓지 말고 눈 여겨 봐주셨으면 합니다. 대개 무대의상이라고 하면 르네상스, 바로크, 이런 식으로 특정한 시대를 바탕으로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하지만 Snow White의 의상들은 시대를 초월합니다. 어느 시대에 갖다 놓아도 속하는 한편 어느 시대에도 속하지 않습니다. 시대를 규정할 수 없는 혁신적이고 아름다운 의상들입니다.



“우리는 ‘백설공주’의 시대에 살고 있다”


과학과 의학 기술이 발전하면서 사람들은 오래도록 아름다운 삶을 살 수 있게 됐습니다. 현대에는 60세 여성도 충분히 매혹적으로 보일 수 있습니다. 저는 우리가 백설공주의 시대에 살고 있다고 봅니다. 심리학적인 관점에서 말이죠. 여자로 커가는 딸을 보며 의식하든 의식하지 않든 어머니는 위기감을 느낄지도 모릅니다. 나이가 들며 여성성이 사라져가는 것을 인정하고 싶지 않은, 그리고 시간의 흐름에 저항하려는 심리. 점점 여자로 꽃 피어나는 딸과 나이를 먹고 시들어가는 어머니의 심리학적인 두 축, 그 사이의 보이지 않는 긴장감. 그러한 것들을 Snow White를 통해 표현하고 싶었습니다.



“춤은 나의 붓이고 안무를 통해 화폭 위에 그림을 그린다”


사실 안무가가 되어야겠다고 생각했던 적은 없습니다. 하지만 막연하게 예술가가 되어야겠다는 생각은 했습니다. 어렸을 때는 화가나 시인이 되고 싶었습니다. 그러다 우연히 춤을 접하고 나서야 알았죠. 아, 나는 춤으로 시를 쓰겠구나 하고요. 지금도 화가의 꿈은 버리지 않았는지 평소 시간의 5% 정도는 할애해서 늘 그림을 그립니다. 만약 제가 춤을 그만두게 되는 날이 온다면 아마 그림을 그리지 않을까요? 하지만 지금은 춤만이 나의 붓이고, 안무를 통해 화폭 위에 그림을 그립니다.





강연이 끝난 후 참석자들에게는 당일 관람 티켓과 앙쥴렝 프렐조카쥬의 사인이 담긴 프로그램북이 선물로 증정되었습니다. 가까이에서 만난 앙쥴렝 프렐조카쥬는 굉장히 낭만적이고 젊은 사람이었습니다. 질문에 답한 후에도 덧붙일 말이 생각나면 다시 부연 설명을 하는 등 충실하고 열의 넘치는 모습을 보여주었죠. 마지막 공연이 끝난 후 그는 “수많은 나라에서 공연했지만 한국 관객들의 열광적인 환호가 가장 기억에 남을 것 같다”라며 인사를 전했습니다. 그의 말처럼 다시 한 번 열광적인 환호를 보낼 날이 오길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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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카드 컬처프로젝트 16 Snow White(이하 스노우 화이트)의 막이 오르기 전, 우리는 스노우 화이트의 매혹적인 일면을 살짝 엿 볼 수 있었습니다. 세계적인 거장 앙쥴렝 프렐조카쥬, 구스타프 말러, 장 폴 고티에가 만들어낸 경이로운 세계. 드디어 모습을 드러낸 도발적인 무대 속으로 여러분을 안내합니다.

 

 



'말러'의 날개를 타고 새처럼 날아오르길

 

첫 공연을 하루 앞 둔 11월 13일 목요일,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에서 스노우 화이트의 기자간담회가 열렸습니다. 행사에는 스노우 화이트의 예술감독이자 안무가인 앙쥴렝 프렐조카쥬(Angelin Preljocaj)외에도 발레 프렐조카쥬의 주연 무용수들이 참석했는데 백설공주 역을 맡은 에밀리 랄랑드(Émilie Lalande), 왕자 역의 쟝 샤를르 주스니(Jean-Charles Jousni), 그리고 이번 공연을 통해 처음으로 왕비를 연기할 레아 드 나탈(Léa De Natale)이 한국 관객들에게 인사를 전했습니다. 기자간담회에서는 주요 방송사 및 일간지, 공연 관계자들이 자리한 가운데 앙쥴렝 프렐조카쥬의 SNOW WHITE에 대한 심도 있는 인터뷰가 오고 갔습니다.

 

 

원작인 그림형제의 <백설공주>와 스노우 화이트는 어떤 차이점이 있는가?


앙쥴렝> 기본적인 맥락은 같다. 동화 속 <백설공주>를 보면 어딘지 모르게 착 가라앉은 어둡고 신비로운 분위기가 있는데 이러한 점이 구스타프 말러를 떠오르게 했다. 말러의 교향곡은 굉장히 로맨틱하고 모던한 선율들로 이루어져 있는데 듣고 있으면 로맨티시즘의 극단으로 가는 듯하다. 이런 특성이 <백설공주> 이야기와 일맥상통한다고 생각했다.


 

구스타프 말러의 음악을 배경으로 춤을 추는 것은 어땠는지 궁금하다.


레아>
구스파프 말러의 음악에는 고귀한 느낌이 있다. 어렵다기보다는 환상적인 경험이었다.
쟝> 교향곡 자체에 깊이가 있다. 무용수들끼리 모여 나름대로 그 깊이를 해석하는데 주력했던 것 같다. 각 선율과 악기의 소리마다 어떻게 움직임을 녹여내야 할지 머리 속으로 그리며 춤을 췄다. 교향곡 전체와의 조화도 고려했고 안무가와 의논한 시간도 많았다. 
앙줄렝> 말러의 교향곡은 힘이 있다. 마치 큰 숨을 토해내는 듯한데, 아주 큰 새가 날개를 펼치고 비상하는 그림을 떠올리게 한다. 그 큰 새가 무용수들과 관객들을 날아 오르게 할 것이다.

 

 

 


백설공주가 죽고 난 후 왕자와 함께 춤을 추고 키스를 하는 장면이 있다. 중요한 씬인데 어떻게 표현했나?

 

에밀리> 그 키스씬은 극 전체에서 가장 감정이 요동치는 순간이다. 너무나도 슬프지만 마음은 따라주지 않는 왕자의 심정이 절절하게 녹아있다. 구스타프 말러의 교향곡 5번, 아다지에토에 맞춰 춤을 추는데 안무가의 의도를 가장 잘 드러내는 장면이라고 생각한다.

쟝> 섬세하면서도 순수한, 자연스럽고 절제된 슬픔을 표현해야 했다. 사랑하는 이가 죽었고 그녀가 누워있는 모습을 보며 춤을 추어야 했는데 어떤 계산이나 의도가 없어도 저절로 감정 표현이 됐다. 공주의 죽음을 받아들일 수 없는 왕자의 몸짓, 그 어느 곳에서 속하지 못하는 황망함. 이런 것들을 온 맘을 다해 진지하게 표현해야 했다. 음악, 안무, 미장센이 삼위일체를 이루는 장면이다.
앙쥴렝> 나는 이 장면을 환생이라고 봤다. 극 중에서 공주는 죽은 몸이지만 무용수로서는 왕자와 춤을 추고 몸을 움직여야 했다. 에밀리가 많은 고민을 했을 것이다. 미동도 하지 않는 육체지만 실제로는 상대 무용수를 서포트해야 하고 섬세한 동작들을 취해야 했다. 안무가인 나로서는 가장 어렵고도 흥미로운 작업이었다.



백설공주 못지 않게 큰 축을 이루는 캐릭터가 바로 왕비다. 잔혹한 왕비를 어떻게 해석했는가?


레아> 왕비를 그로테스크하다고 표현하기도 하는데 개인적으로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왕비는 유혹적이면서도 화가 나 있는 상태다. 이러한 이중적인 감정을 표현하는 데에 많은 신경을 썼다. 왕비 역할로 무대에 서는 것은 내일이 처음인데 나의 해석을 관객들이 어떻게 받아들일지 기대가 된다.
앙쥴렝> 레아는 대단한 무용수다. 그녀에게 신뢰를 보낸다. 아마 서울의 관객에게는 레아의 왕비가 최고의 선택이 될 것이다. SNOW WHITE의 왕비는 이중적이고 복합적인 캐릭터다. 엄마인 동시에 여자인 그녀는 딸을 보살피는 것보다 본인의 여성성에 더 집착한다. 나는 이것이 현 시대의 미묘한 감성을 반영한다고 생각했다. 현대의 여성들은 전보다 더 오랫동안 아름다운 삶을 영위할 수 있다. 60대가 되어도 충분히 미모를 유지할 수 있는 것이다. 여자로 자라나는 딸을 바라보며 자신의 여성성을 잃지 않고 세월에 항거하려는 긴장감. 나는 그런 관점으로 왕비를 바라봤다.





왕비가 백설공주에게 사과를 먹이는 장면에서 죽이려는 자와 죽지 않으려는 자의 강렬한 부딪힘이 느껴진다. 이 장면에서는 어떤 점을 고려했는가?


앙쥴렝> 우선 전체적으로 그림형제의 동화를 충실히 재현해내려 노력했는데 각 장면이 동화의 순서를 그대로 따랐다. <백설공주>의 가장 흥미로운 점은 죽음 앞에서도 결국 사랑이 승리한다는 것이다. 물론 사과를 먹이는 장면에도 죽음의 요소가 깃들어 있지만 폭력적이기보다는 에로틱하게 표현하려고 했다. 무용수들의 몸과 몸이 맞닿는 에너지의 합, 마치 보이지 않는 끈으로 연결되어 있는 것 같은 움직임. 그런 것들에 중점을 뒀다. 또 사과는 굉장히 복합적인 상징물이다. 지혜의 상징이기도 하다. 아담과 이브에서 이브가 사과를 먹은 후 선과 악을 알게 되는 것처럼 백설공주도 사과를 먹고 죽음에 이르지만 결국 새로운 차원으로 도달한다. 사과가 백설공주를 성숙하게 만드는 계기가 되었다고 할 수 있다.

 


세계적인 디자이너 장 폴 고티에와의 작업은 어떠했나?

앙쥴렝> 사실 그가 내 공연을 보러 온다는 걸 알고 있었고 나 역시 그의 쇼를 보러 가곤 했다. 언젠가 인어공주를 재해석한 그의 의상을 봤는데 캐릭터 분석 능력이 매우 탁월했다. 맨 처음 SNOW WHITE를 구상하면서 당연히 장 폴 고티에를 떠올렸고 그 역시 제안에 흔쾌히 응해 줬다. 완성된 의상들을 봤을 때에는 감탄을 금치 못했다. 아마 나라면 이렇게까지 상상하지 못했을 것이다.

 


이번이 네 번째 내한이다. 한국 관객들에게 소개하고 싶은 다른 작품이 있다면 무엇인가?

앙쥴렝> 한국의 관객을 만나는 일은 언제나 즐겁다. 다음에 오면 <로미오와 줄리엣>을 공연하고 싶다. 파리에서는 내년 9월 다시 무대에 올릴 예정이다. 사랑이라는 주제를 극적인 여정으로 풀어낸 드라마틱한 작품이다.
 


관객들이 SNOW WHITE를 어떻게 봐주었으면 하는가?

앙쥴렝> 꿈 속에 있는 듯 유영하는 기분을 느꼈으면 한다. 감정에 자신을 맡겨라. 앞서 말한 대로 무용수들과 함께 말러의 날개를 타고 마음껏 비상하며 여행하길 바란다.

 


드디어 베일을 벗은 치명적인 무대


기자간담회 이튿날인 11월 14일 금요일. 본 공연을 다섯 시간 앞두고 사전 리허설이 열렸습니다. Press Call을 겸한 리허설에서는 의상과 메이크업을 마친 무용수들이 최종적으로 무대 동선을 체크하고 안무를 완벽히 맞춥니다. 공개된 장면은 백설공주의 성인식부터 왕비의 등장과 거울 씬, 백설공주와 왕자가 사랑에 빠지는 모습까지입니다.



백설공주의 성인식


백설공주와 왕 앞에서 귀빈들이 우아한 춤을 춘다. 남녀가 짝을 이루며 무도회가 무르익을 때쯤 왕자가 등장해 백설공주와 첫인사를 나눈다. 왕자는 백설공주에게 붉은 천을 선물로 바친다.


 

왕비의 출현



두 마리의 검은 고양이를 거느린 왕비의 등장으로 좌중은 혼란에 빠진다. 치명적인 왕비의 손짓에 사람들은 경악하며 위협을 느낀다. 장차 백설공주와 왕자에게 왕비의 마수가 드리울 것을 암시한다.


거울 앞에 선 왕비



당당하고 고혹적인 모습의 왕비는 거울 속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바라보며 흡족해 한다. 왕비와 두 마리의 고양이가 거울 속에서 완벽한 대칭을 이룬다. 



사랑을 속삭이는 연인들



큰 돌 위에 누운 남녀가 저마다 서로를 탐하며 사랑을 나누고 모두가 함께 어울려 춤을 춘다. 



이들 앞에 등장한 백설공주



붉은 천을 휘날리며 왕자를 떠올리는 백설공주를 두고 남녀들은 붉은 천을 빼앗고 장난치며 놀린다. 
 


왕자와 백설공주의 사랑



지나던 왕자가 백설공주를 보고 이끌리듯 다가간다. 사랑에 빠지게 된 백설공주와 왕자는 떨리는 첫 키스를 나눈다.


 

기자간담회와 Press Call을 통해 모습을 드러낸 스노우 화이트는 순수하면서도 관능적인 매력을 뿜어냈습니다. 구스타프 말러의 웅장하고도 로맨틱한 음악, 장 폴 고티에의 파격적인 의상, 앙쥴렝 프렐조카쥬의 탁월하고 에로틱한 안무, 무용수들의 치밀하고 완벽한 움직임이 더해져 기대감은 최고조에 이르렀습니다. 스


스노우 화이트와 함께 비상할 3일 간의 여정. 아찔하게 아름답고 치명적인 무대의 막이 이제 오르려는 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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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즈니의 사랑스러운 애니메이션을 떠올리며 극장을 찾았다면 예상 외로 잔혹한 장면들로 채워진 무대를 보고 당혹감을 느꼈을지도, 안무가의 이름과 전작들에 대한 기대가 앞섰다면 생각보다 얌전한 작품의 수위에 대해 실망했을지도 모른다. 현대카드가 16번째 컬처프로젝트로 국내 관객들 앞에 선보인 앙쥴렝 프렐조카쥬(이하 프렐조카쥬)의 <Snow White(스노우 화이트)> 이야기다.


 



프렐조카쥬는 우리가 권선징악의 전래동화로 기억하는 백설공주 이야기를 죽음을 이겨낸 숭고한 사랑이야기로 해석했다. 그는 그림형제의 원작을 바탕으로 안무하되 스토리텔링을 그대로 따라가는 것이 아니라 백설공주와 왕자의 사랑을 작품의 중심에 놓았다. 


동화에서는 백설공주의 생모가 공주를 낳다 죽었다고 간단히 언급될 뿐이지만 프렐조카쥬는 작품의 도입부에서 만삭의 왕비를 등장시켜 그가 진통의 고통 속에 죽어가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으로 죽음 속에서 태어난 백설공주의 존재를 뚜렷이 각인시킨다. 이 장면은 뒷부분에 가서 독이 든 사과를 먹고 백설공주가 왕자의 키스로 죽음에서 되돌아오는 장면과 좋은 대구를 이룬다. 


그러나 첫 번째 죽음에서 백설공주의 아버지인 왕이 아내의 죽음을 막지 못하고 대신 어린 딸을 받아 안아야 했던 반면 두 번째 죽음에서 이웃나라 왕자는 죽은 백설공주를 간절한 부름으로 되살려낸다. 아내를 잃은 왕은 곧 아름다운 새 아내를 맞아들이지만 왕자는 되살아난 백설공주와 결혼식을 올린다. 두 개의 죽음은 닮은 듯하지만 죽음을 둘러싼 사랑은 이처럼 다르다. 

 


동화 속 가장 아름다운 악녀


백설공주와 대립각을 세우는 인물인 계모는 작품에서 가장 중요한 인물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백설공주가 밝음이라면 계모는 어둠을 의미하며, 모두가 사랑하는 백설공주와는 반대로 계모는 모든 사람이 두려워하며 피하려 한다. 무도회가 한창인 백설공주의 성인식에 <잠자는 숲숙의 미녀>의 카라보스를 떠올리게 하는 불청객처럼 계모가 등장한다. 





분노를 쏟아내며 무도회를 아수라장으로 만드는 계모는 사람들을 자기 뜻대로 두려움에 떨게 하는 위협적인 인물이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죽은 왕비의 그림자와 다 자란 공주의 존재에 가려진 채 인정욕구에 시달리는 연약한 인물이기도, 또 늙음을 두려워하며 사랑을 갈구하는 한 여성이기도 하다. 


이러한 프렐조카쥬의 계모는 장 크리스토프 마이요가 안무한 <신데렐라>의 계모나 <로미오와 줄리엣>의 캐플릿 부인과도 닮아 있다. 그들과의 차이는 백설공주의 계모는 자신의 지위(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성이라는)를 지키기 위해서라면 방해가 되는 존재를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제거할 수 있는 힘과 악의를 가졌다는 점이다.


이번 공연에서 계모 역으로 데뷔한 레아 드 나탈은 다리를 힘차게 위로 뻗는 동작구가 많은 안무를 시원시원한 발놀림으로 소화해내며 계모의 날카롭고 신경질적인 내면을 인상적으로 표현했다. 왕비다운 위엄을 잃지 않으면서도 교태가 느껴지는 몸짓으로 계모의 여성성을 다시금 환기시키고, 작품의 대단원인 백설공주의 결혼식에서 죄에 대한 대가로 불에 달궈진 쇠구두를 신고 춤을 추는 장면에서도 역동적인 몸짓으로 무대를 장악했다. 


작품에서 백설공주가 되살아나는 장면 못지않게 중요한 장면인 계모가 공주에게 독사과를 먹이는 장면은 죽이려는 계모와 죽지 않기 위해 저항하는 백설공주가 대립하며 에너지가 절정에 이르는 부분이다. 독이 든 사과는 계모의 살의를 상징하는 한편 그 먹음직스러움으로 공주를 유혹하는 성적 에너지로도 충만해 프렐조카쥬의 장기인 ‘난폭한 관능’을 유감 없이 보여주는 매개체다. 



죽음을 극복한 사랑


<스노우 화이트>에서 또 하나 눈에 띄는 것은 왕자의 존재다. 동화 원작에서 왕자는 마지막 순간에 나타나 백설공주를 구원하는 도구적인 역할에 머물러 있지만 프렐조카쥬의 왕자는 죽은 육신에 숨을 불어넣어주는 생명 그 자체이며, 백설공주 역시 동화 속 수동적인 주인공이 아니라 왕자에게 먼저 키스하는 도발적이고 적극적인 여성이다. 


왕자는 성인식 도중에 궁에서 쫓겨난 백설공주를 숲까지 따라가고, 둘은 계모의 위협이 없는 숲에서 서로에게 마음을 열고 연인이 된다. 서로를 만지고 희롱하며 즐거워하는 백설공주와 왕자의 모습은 어린 아이들처럼 천진난만하다. 낙원의 아담과 이브처럼 무구하던 둘의 사랑은 백설공주의 죽음을 계기로 구원에 이르는 깊고 숭고한 것으로 변화한다. 그동안 숱한 작품에서 죽음을 다양하게 변주해온 프렐조카쥬는 <스노우 화이트>에서 죽음을 통해 캐릭터의 성장과 사랑의 성숙을 동시에 이뤄냈다. 왕자가 잠든(혹은 죽은) 공주를 키스로 깨운다는 점에서 <스노우 화이트>의 키스는 <잠자는 숲속의 미녀>의 그것과 흡사해 보이지만 프렐조카쥬는 이 키스를 죽음을 극복한 사랑의 승리로 승화시키고 있다.





랄랑드는 순수한 백설공주일 때는 가벼운 몸놀림과 춤이 아닌 듯한 자연스러운 움직임을 보여주는 한편 죽은 다음 왕자와 2인무를 추는 장면에서는 무동(無動), 즉 움직이지 않은 채 무게중심을 이동시켜 죽은 육신을 표현하며 왕자 역의 장샤를르 주스니와 빈틈없는 호흡을 빚어냈다. 

 


구스타프 말러와 장 폴 고티에의 만남


안무 외에 재기 넘치는 아이디어 역시 돋보였다. 광산에서 일하는 일곱 난장이들이 등장하는 장면에서 무용수들이 줄을 타고 내려오며 만들어내는 아크로바틱한 움직임도 장관이었지만 그 장면에 사용된 음악이 말러의 교향곡 1번 ‘거인’이라는 점도 프렐조카쥬의 재치에 고개를 끄덕이게 했다. 


성년이 된 백설공주가 선물로 받은 붉은색 스카프나, 백설공주의 관으로 설정된 투명한 아크릴판 같은 암시로 가득한 소품들도 인상적이었다. 특유의 위트와 에로티시즘으로 무장한 장 폴 고티에의 의상 덕분에 인물 개개인의 캐릭터가 더욱 분명해졌고, 신중하게 선택된 말러의 음악들은 작품을 한층 풍성하고 입체감 있게 만들어주었다. 





컬처프로젝트 16 Snow White는 무용팬은 물론 말러의 선율이 무용과 만나면 어떤 결과물이 만들어지는지, 또 무용수들이 짖궂은 고티에의 의상을 입고 어떻게 춤을 추는지 궁금했던 사람들에게도 눈과 귀가 즐거운 자리가 되었을 것이다. 모쪼록 프렐조카쥬가 그의 희망사항처럼 다음번에는 <로미오와 줄리엣>을 가지고 한국을 곧 다시 방문해주기를 기대한다.





Writer. 윤단우
글 쓰는 사람. 쓴 책으로는 <사랑을 읽다>, <결혼파업, 30대 여자들이 결혼하지 않는 이유> 등이 있고

무용전문지 <몸>에서 무용 관련 취재를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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