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컬처프로젝트 12 The Killers/전문가 칼럼' (4건)

 

 


저녁 7시. 킬러스의 내한 공연은 3호선 버터플라이의 오프닝으로 시작되었다. ‘헤어지는 날 바로 오늘’, ‘너와 나’, ‘티티카카’, ‘내가 고백을 하면 깜짝 놀랄 거야’ 등의 노래로 30분 동안 뜨거운 무대를 보여준 이들은 킬러스와 잘 어울린다는 생각을 하게 했다. 킬러스의 음악을 정확하고 깔끔한 인상이라고 한다면 3호선 버터플라이는 그의 대척점에 있다고 할 수 있으니 일견 레이어드 룩처럼 보이기도 했다. 특히 3호선 버터플라이의 오프닝은 킬러스가 직접 선정했는데, 올림픽 홀의 사운드가 상당히 깔끔하고 좋아서 본 공연의 기대감도 함께 상승하는 효과를 줬다. 오프닝 공연이 끝나고 무대를 세팅하는 동안 Battle Born 투어의 심벌인 번개 로고를 공개하는 깜짝 이벤트도 마찬가지. 노련한 스태프가 객석을 향해 “1, 2, 3” 카운트다운을 하며 관객들과 함께 가려진 커튼을 젖히며 기대감이 최고로 올라갔다. 


이번 공연 첫 곡 “Mr. Brightside”가 흐르는 동안엔 관객석의 조명이 꺼지지 않아 왠지 어색했는데 많은 관객들도 이 점을 옥의 티라고 여겼을 것이다. 물론 그 이후엔 1시간 30분의 시간이 짧게 여겨질 정도로 화려하고 완벽한 무대를 선보였는데, 공연이 끝나자 문득 처음에 조명이 꺼지지 않은 이유가 노래 제목을 반영한 이벤트였구나 싶었다.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Brightside' 이니까) 공연은 정말 좋았다.

 


 

 

드라마틱한 구조와 청량감 가득했던 킬러스 공연

 

 

 

 

보컬의 브랜든 플라워스(Brandon Flowers), 기타의 데이브 큐닝(Dave Keuning), 베이스의 마크 스토머(Mark Stoermer) 그리고 드럼의 로니 배누치 주니어(Ronnie Vannucci Jr.)로 구성된 킬러스는 2002년 라스베이거스에서 결성된 후에 미국보다 영국에서 먼저 유명해졌다. 데뷔 앨범 “Hot Fuss”는 UK 차트 1위와 빌보드 앨범 차트 7위에 올랐고 이후엔 발표하는 앨범마다 차트에 진입하고 화제가 되며 유수 록 페스티벌의 무대에 오르는 성공을 이어왔다. 한국 공연은 2010년에 예정되어 있었지만 갑작스런 브랜든 플라워스의 모친 상으로 취소되었는데, 이번 공연은 3년 만에 성사된 공연이기도 했다. “Battle Born” 발매를 기념하는 월드투어인 이번 공연은 ‘Mr. Brightside’로 시작해 ‘Spaceman’, ‘The Way It Was’, ‘Smile Like You Mean It’, ‘Human’, ‘All These Things That I've Done’ 같은 대표곡으로 구성되었다. 모두 아름다운 멜로디와 보컬을 특징으로 하는 곡인데, 특히 드라마틱한 구조가 인상적인 곡들은 관객들과의 합창, 콜 앤 리스펀스로 더 인상적이었다. 브랜든 플라워스는 특히 시원시원한 성량을 가졌는데, 정확한 발음과 음정 덕분에 킬러스의 음악에서 청량감을 느끼게 된다고 생각한다. 전반적으로 이런 특징들을 잘 살린 공연이었다.

 

 

 

 

무대에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건 두 가지다. 하나는 무대 중앙에 위치해 곡마다 다른 조명을 번쩍이던 번개 마크와 그 로고가 붙은 신시사이저를 연주하던 브랜든 플라워스의 모습. 그는 두 번째 곡 ‘Spaceman’을 부르자마자 재킷을 벗어 던지고 수시로 모니터 앰프 위에 올라서서 관객과 호응하고 동조하는 모습을 보였다.

 

 

 

 

다른 하나는 드러머 로니 배누치가 입은 티셔츠. 한글로 '로니 바누치'라고 쓰였다. 그는 공연 중간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티셔츠를 뽐내곤 했고, 관객들은 “로니! 로니!”를 연호하기도 했다. 그리고 ‘The Way It Was’가 흐를 때 브랜든이 한국어로 인사말을 남겼는데 “우리는 죄의 도시에서 왔다. 그리고 오늘 밤 우리는 너의 것이다.”란 문장을 열심히 읽었다. 


개인적으로 내한공연에서 한국어 인사말은 재밌는 이벤트라고 생각하는데(어떤 얘기를 하냐가 궁금하기도 하고) 밴드의 시작점이었던 라스베이거스를 ‘죄의 도시’라고 말하는 브랜든이 위트 있어 보이게 했다. 게다가 “오늘밤 우리는 너의 것이다”라는 영어 식 표현을 쓰는 바람에 많은 사람들이 ‘오글거렸다’는 생각을 했을 수도 있겠지만 그 표현대로, 공연이 끝날 때까지 이들은 한 치의 실수도 없이 좋은 음악을 들려줬으니 진심이었다고 생각한다.

 

 

 

 

5번째 곡이었던 ‘Bling’부터 ‘Shadowplay’, ‘Human’, ‘Somebody Told Me’, ‘For Reasons Unknown’, ‘From Here On Out’으로 이어지던 공연 중반부는 정말 킬러스의 매력과 무대 연출, 관객들이 결합된 최고의 순간이었다고 생각한다. 푸른색, 붉은색으로 바뀌던 레이저 조명은 ‘Shadowplay’에서 초록색으로 바뀌어 낮게 깔리는 스모그 사이에서 빛났고 ‘From Here on Out’을 부를 때에는 콜 앤 리스펀스로 브랜든과 관객들이 한 소절씩 주고받았다. 끝날 듯 끝날 듯 끝나지 않고 수 차례 이어지는 콜 앤 리스펀스가 상당히 즐거웠던 순간으로 기억될 것이다. 그리고 멤버 소개도 인상적이었는데, 브랜든이 멤버들에게 이런저런 말을 걸면 그들이 대답대신 악기를 연주하는 방식이었다. 그때 드러머 로니 배누치가 열정적인 드럼 솔로를 마쳤을 때 다른 멤버들이 그를 향해 부채질을 해주던 장면도 인상적이었다. “우리는 베가스에서 출발했지, 그리고 지금 여기에 있네.”라는 브랜든의 멘트도 많은 사람들의 기억에 남았을 듯.

 

 

관객과의 호응을 즐겁게 유도한 에너자이저, 킬러스

 

 

 

 


마지막 곡은 ‘All These Things That I've Done’이었다. 킬러스 한국 팬 카페에서 준비한 ‘꽃가루 이벤트’도 펼쳐졌고, “I got SOUL, but I'm not soldier”란 가사를 “I got SEOUL, but I'm not soldier”라고 바꿔 쓴 티셔츠와 수건도 등장했다. 앞서 말했듯 킬러스의 음악은 아름다운 멜로디와 드라마틱한 구조를 특징으로 한다. 공연에서 활용하기 쉬운, 요컨대 ‘아레나 록’이라고 부를만한 에너지 넘치는 곡들이 포진해 있다. 키가 크고 말끔하게 잘생긴 브랜든 플라워스(그는 모델로도 활동 중이다)의 이미지와 어울려 응원가나 군가 같은 느낌도 준다. 


이번 내한 공연은 이 모든 특징들이 압축된 시간이었다. 킬러스를 잘 모르던 사람들도 90분의 공연이 끝난 뒤엔 이들에게 반할만 하다고 본다. 마지막 곡이 끝난 뒤 앵콜 요청이 있을 때, 잠깐 장비를 점검하러 무대에 올라온 스태프들이 박수를 더 치라고 유도하기도 했다. 이렇게 스태프들이 유머 넘치는 내한 공연도 처음이었던 듯. 앵콜은 ‘Change Your Mind’와 ‘Jenny Was A Friend Of Mine’를 불렀다.

 

 

 

 

그리고 대망의 ‘진짜’ 마지막 곡은 ‘When You Were Young’. 브랜든이 “하나 더 부를까? 어떤 곡을 부를까?”라고 물었을 때의 객석에서 이구동성으로 외친 곡이기도 했다. 첫 곡 ‘Mr. Brightside’와 함께 개인적으로도 가장 좋아하는 곡이라 굉장히 기뻤고, 그래서 특히 인상적으로 기억될 공연이란 생각이 든다. 마지막으로 이 자리에 없던 사람들에겐 유튜브의 공연 영상을 꼭 찾아보길 권한다. 운동부 남자 후배 같은 브랜든은 ‘귀요미’고 이번 한국 공연은 관객과의 호응이 얼마나 중요한 지 보여준 바로미터 같았기 때문이다. 정말 죽여주던 시간이었다.


 

<Set List>

 

 

 

 

 



Writer. 차우진

 

대중음악 웹진 [weiv] 에디터. [청춘의 사운드] 저자
여러 매체에 음악을 비롯해 대중문화 전반에 대한 글을 쓰고 있다.


 

 


[현장스케치] 강렬한 인상을 남긴 '컬처프로젝트 12 The Killers' 현장 스케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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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Killers

 

 

21세기 뉴웨이브의 상징 킬러스, 올해 반드시 선택해야만 하는 Battle Born World Tour


모두가 기다려온 킬러스의 내한공연이 다시금 극적으로 성사됐다. 4년 만에 갖는 'Battle Born World Tour'라 명명한 이번 투어는 이미 대부분의 국가에서 매진사례를 기록해내고 있는 중이다. 이는 킬러스의 국내 첫 내한공연이 되며, 따라서 2004년도 결성이래 기다려온 수많은 국내 팬들은 이미 환호할 만발의 준비를 갖춰낸 상태다.

 

2012년도에 발매된 킬러스의 네 번째 정규작 “Battle Born”의 투어인 'Battle Born World Tour'는 2012년 7월 20일 노스 캐롤라이나에서 시작되어 유럽과 전미를 돌고 2013년 9월 21일 싱가폴을 시작으로 아시아 일정이 진행될 예정이다. 우리나라는 오는 10월 5일에 공연이 펼쳐질 예정이다. 롤라팔루자, 핑크팝, 그리고 독일의 록 앰 링 같은 전세계 가장 중요한 페스티발에서도 이들의 모습을 확인할 수 있었다. 아낌없이 퍼부어대는 조명과 위풍당당한 퍼포먼스를 그 동안 우리는 여느 동영상 사이트들을 통해 재차 감상해왔고 드디어 우리가 직접 경험할 차례가 왔다. 이번 투어 중 브랜든 플라워스의 키보드 앞에는 “Battle Born” 앨범 커버 한가운데에 있는 번개모양 전열등이 설치되어 있기도 했다.

 

 

The Killers 공연 모습 (좌), (우)

 

Dave Keuning

 

 

투어의 오프닝 밴드 역시 각 지역마다 달랐다. 티건 앤 사라, 버진스, 가스라잇 앤썸, 심지어는 킬러스의 한참 선배인 밴드 제임스가 그들의 무대에 앞서 공연하기도 했다. 아일랜드에서 공연했을 당시에는 작년도에 가장 인상적인 데뷔를 치뤘던 소울 싱어 프랭크 오션과 투 도어 시네마 클럽이 스페셜 게스트로 출연하기도 했다.

 

 

The Killers

 

 

킬러스는 유독 투어 도중 변수가 많은 밴드였다. 알려진 대로 2010년 무렵, 한국을 비롯한 아시아 국가 또한 방문할 예정이었지만 킬러스 멤버 가족의 병으로 인해 부득이하게 스케줄을 취소시킨 안타까운 일이 있었다. 2009년도에도 일본 후지 록페스티발 무대를 사정상 취소하기도 했다.

 

물론 이번 투어에서도 변수는 끊임없이 이어져갔다. 2012년 11월 13일 맨체스터 아레나에서의 공연 도중 ‘Bling (Confession of a King)’을 부르던 브랜든 플라워스는 노래를 멈춘 후 결국 끝까지 완수해내지 못했는데 자신의 목소리가 가버렸다고 무대 위에서 밝히기도 한다. 때문에 다음날 맨체스터에서의 공연과 이후 공연들이 연기되는 일이 벌어졌다. 이렇게 뭔가 조짐이 보이다가 한달 후인 12월에 잡힌 뉴욕과 토론토에서의 공연은 결국 브랜든 플라워스의 후두염으로 인해 모조리 연기되기에 이른다. 3월에는 폭설로 인해 벨기에, 룩셈부르크, 프랑스, 스위스 등 유럽지역 공연마저 연기됐다. 첫 내한공연 취소의 악몽을 경험했던 팬들에게 이런 소식들은 괜히 움찔하게끔 만드는 역할을 하는데, 투어 도중 이런 저런 사고가 많은 만큼 왠지 이번 내한 공연을 그냥 지나치면 다시 이들의 공연을 국내에서 제대로 볼 기회가 쉽게 오지 않을 것 같기도 하다.

 

아니나 다를까 이번에도 킬러스의 내한공연은 우여곡절 끝에 성사됐다. 밴드의 베이시스트 마크 스토머가 개인적인 사정으로 아시아 지역을 돌지 못한 채 미리 집으로 귀향 조치됐기 때문이다. 그는 트위터에서 모든 것이 괜찮으며 집에서 시간을 보내면서 회복하기를 기다릴 것이라는 글을 남기기도 했다. 때문에 이번 아시아 투어에는 브랜든 플라워스의 솔로 투어 당시 함께했던 제이크 블랜턴이 대타로 활약하게 된다. 게다가 2집 “Sam's Town” 투어에서 함께 했던 테드 세이블레이가 다시금 이번 투어에 투입되어 기타와 건반, 그리고 백 코러스를 담당하게 된다고 한다.

 

 

The Killers

 

 

'Battle Born World Tour' 중 페스티발 무대를 제외하고는 영국의 웸블리 스타디움에서의 공연이 가장 큰 규모의 헤드라이닝 쇼였고 킬러스는 이례적으로 ‘Wembley Song’이라는 신곡을 바로 이 무대에서 선보여낸다. 이 노래는 이번 투어 중 오직 웸블리 스타디움에서만 불려졌다. 이 유서 깊은 스타디움을 다녀간 유명한 밴드를 읊는 대목이 있는데 곡의 마지막은 '아직도 프레디의 노랫소리가 들린다'며 한 소절을 마무리 짓는다. 자신들이 이 역사적인 공연장에서 또 하나의 역사를 만들고 있다는 것을 공표하고 있는 셈인데 이 곡에서 웸블리를 다녀간 아티스트들이 언급되는 가사는 이렇다.

 

Pink Floyd, The Animals and Genesis and The Who without the moon.

ELO, INXS, Michael, you left us all to soon,

But you climbed those stairs to Wembley.

 

The Boss, The Stones, the Man in Black, the bitch is back,

And Fleetwood Mac, Take That, Bon Jovi.

Green Day, I said some shit, but that was the old me.

 

U2, Oasis, The Foos, The Eagles, Madonna and Muse. Metallica, Viva La Vida, AC/DC, GNR,

George Michael stay away from cars...

66 the winning team. Freddie Mercury and Queen.

 

 

 

 

웸블리 스타디움에서의 이 곡을 부르는 영상은 킬러스의 유튜브 채널에서 고화질로 확인 가능하다. 영국 가디언 지는 이 웸블리 스타디움의 라이브 리뷰에서 별 5개 만점을 선사해냈다. 킬러스는 웸블리 공연이 끝나고 몇 시간 후 6백 명 정도만이 수용 가능한 개러지(The Grage)라는 공연장에서 소규모 서프라이즈 공연을 펼치기 한다. 유독 영국에서 사랑 받는 밴드다운 이벤트들이다.

 

이번 투어에서 기타리스트 데이브 큐닝과 보컬 브랜든 플라워스는 투어하는 지역과 관련된 아티스트들의 노래를 커버하는 재미를 주기도 했다. 알려진 대로 리버풀에서는 비틀즈를, 맨체스터에서는 오아시스와 스미스를, 그리고 아일랜드 더블린에서는 U2, 벨파스트에서는 밴 모리슨 등을 각각 커버해왔다. 스코틀랜드에서 열리는 페스티발 T in the Park에서는 역시 트래비스의 곡을 연주했고 뉴욕 메디슨 스퀘어 가든에서는 프랭크 시나트라의 ‘New York, New York’을 열창하기도 했다. 킬러스가 공연했던 2012년 MTV EMA 시상식에서는 싸이 역시 퍼포먼스를 펼쳐 보이기도 했었는데 혹시 킬러스가 이번 내한공연에서는 ‘강남 스타일’을 커버하는 건 아닐까 하고 염려해본다.

 

 

Brandon Flowers

 

 

최근 셋 리스트들을 살펴보면 일단 시작은 밴드 최고의 히트 넘버 ‘Mr. Brightside’로 시작하며, 저스틴 팀버레이크가 영화 <사우스랜드 테일>에서 립싱크하기도 한 떼창 포인트가 존재하는 ‘All These Things That I've Done’으로 본 공연을 마무리 짓고 ‘When You Were Young’을 앵콜로 부르는 패턴을 취하고 있다. 감동적인 ‘Human’ 또한 레퍼토리에서 빠지는 일이 없었다. ‘Battle Born’ 앨범의 투어인 만큼 첫 싱글 ‘Runaways’를 필두로 ‘Mr. Brightside’의 속편과도 같은 ‘Miss Atomic Bomb’ 등의 새 앨범에 수록된 히트 넘버들 또한 공연장에서 울려 퍼질 예정이다.

 

도회적이고 세련된 로맨스의 감각으로, 점철된 가사들을 가슴 벅찬 멜로디 그리고 진중한 사운드에 실어낸 킬러스는 유독 공연장에서 팬들을 압도시켜왔다. 게다가 밴드가 성장해가면 갈수록 스케일 또한 더욱 커져만 갔다. 흥청망청 부르는 가스펠, 그리고 브로드웨이 뮤지컬의 클로징 같은 흥분과 품격을 지닌 자의식 과잉의 이 황홀경은 어느덧 킬러스의 트레이드마크로써 작용해내고 있었다. 솟구치는 박력과 어두운 환희로 채워진 강렬한 리듬, 그리고 컬러풀한 멜로디가 곧 대한민국을 엄습할 예정이다. 자신도 모르게 몸을 흔들고 있는 초만원의 청중들과 함께 킬러스의 퍼포먼스가 전달하는 극적인 감격의 순간을 곧 맛 볼 수 있게 될 것이다.

 

 


 

Writer. 한 상철

 

불싸조라는 밴드에서 기타를 치며 이런저런 글을 쓰고 있다. 취미는 피구와 우표수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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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Killers

 

 

친숙한 80's 뉴 웨이브/포스트 펑크를 계승시켜낸 열정적이고 웅장한 록 사운드를 뿜어내는 21세기 최고의 록 밴드 킬러스가 드디어 내한한다. 이들은 미국 라스 베이거스 출신이지만 The Strokes(스트록스)나 White Stripes(화이트 스트라입스)와 마찬가지로 영국에서 먼저 인기몰이를 하면서 세계적으로 뻗어나갔다. 현재 영국에서 가장 인기 있는 미국 밴드 중 하나로 자리매김해낸 이들은 어떤 상징과도 같은 런던 로얄 알버트 홀에서의 퍼포먼스마저 완수해내기까지 한다. 곰곰이 생각해보면 킬러스의 음악은 그들이 영향 받았던 영국 맨체스터 출신의 명 밴드들과 꽤나 여러가지 공통분모를 지니고 있었다. 영국 음악에서 영향 받은 미국 밴드가 다시금 영국에서 성공하고 있는 이런 뫼비우스의 띠 같은 상황의 뿌리를 추적해 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 싶다.

 


Joy Division

 

 

Joy Division

 

 

킬러스는 조이 디비전의 어둠, 그리고 숭고한 댄스 비트를 흡수해냈다. 킬러스의 곡 ‘All These Things That I've Done’의 뮤직비디오 경우 U2와 디페쉬 모드, 그리고 조이 디비전 등의 흑백사진으로 유명한 사진작가 Anton Corbijn(안톤 코빈)이 감독했다. 안톤 코빈은 2007년 무렵 장편영화 데뷔작으로 조이 디비전의 보컬 이안 커티스의 생애를 추적한 작품 을 감독하는데 영화 마지막에는 킬러스가 부른 조이 디비전의 ‘Shadowplay’가 흐르기도 했다. 이렇듯 확실히 안톤 코빈은 킬러스를 '제 2의 조이 디비전'으로 지목한 모양이었다.

 

 

Anton Corbijn <Control>

 

 

1976년 맨체스터에서 결성한 이래 4년이라는 짧고 굵은 활동으로 그 수명을 다한 포스트 펑크의 상징 조이 디비전은 킬러스의 음악을 언급할 때 항상 따라다니던 이름이었다. 보컬 이안 커티스의 내성적인 가사와 마치 간질환자를 보는 듯한 라이브 퍼포먼스는 당시 씬에 충격을 선사했다. 활동 기간도 짧았고 활동 당시 상업적으로 성공을 거둔 것도 아니었지만 1980년대 말 이후의 얼터너티브, 그리고 2천 년대의 포스트 펑크, 개러지 리바이벌 씬에 이들은 가장 강한 영향을 끼쳤다.

 

첫 미국 투어 출발 전날인 1980년 5월 18일, 보컬 이안 커티스가 갑자기 자살하면서 조이 디비전은 비극적으로 해산한다. 그 뒤 남겨진 멤버들은 New Order(뉴 오더)를 결성하게 되며, 조이 디비전 보다는 좀 더 댄스뮤직에 집중해내는 그들의 음악 또한 후대에 수많은 이들에게 영향을 미치게 된다. 이미 '킬러스'라는 밴드명 자체도 뉴 오더의 뮤직비디오 ‘Crystal’에 나오는 가상 밴드의 이름에서 따온 것이니 킬러스에게 있어 조이 디비전, 그리고 뉴 오더는 그 어떤 밴드들 보다도 각별한 존재일 것이다. 킬러스는 공연 도중 직접 조이 디비전/뉴 오더의 Bernard Sumner(버나드 섬너)를 무대 위에 올려 ‘Crystal’을 함께 공연하기도 했다. 감동적인 재회다.

 

아직도 수많은 이들이 조이 디비전의 로고, 그리고 “Unknown Pleasures”의 커버 그림이 새겨진 티셔츠를 입고 다닌다. 이안 커티스가 자살하기 한달 전에 공개된 조이 디비전의 싱글 ‘Love Will Tear Us Apart’ 역시 한 시대의 앤썸으로써 여전히 애청 되어지고 있는 중이다. 위대한 자포자기는 이런 방식으로 계승되어졌다.

 

 

The Smiths

 

 

The Smiths

 

 

스미스 역시 조이 디비전과 마찬가지로 맨체스터 출신 밴드였다. 스미스의 도회적이고 세련된 로맨스에 영향 받은 가사를 킬러스는 가슴 벅찬 80년대 풍 신스팝에 맞물려내면서 어떤 황홀경을 만들어갔다. 킬러스의 보컬 브랜든 플라워스는 스미스의 ‘Louder Than Bombs’를 사춘기 시절 듣고 굉장히 큰 영향을 받았다고 밝혔다. 아마도 모리씨가 작성한 우울하면서도 뒤틀린 가사가 그의 감수성을 자극하지 않았나 싶다. 이렇듯 전세계 모든 우울한 소년들은 결국 스미스를 찾았다.

 

스미스 역시 활동기간은 채 5년 정도에 그쳤고 히트곡이 많은 편도 아니지만 오늘날 80년대 영국의 가장 중요한 록밴드 중 하나로 인지되고 있다. 스미스의 섬세한 관점, 그리고 혁신적인 음악은 90년대 브릿팝과 얼터너티브 록 뮤지션들에게 지대한 영향을 끼치고 있었다. 모리씨는 오스카 와일드와 잭 캐루악 등의 소설가들을 가사에서 줄곧 인용하면서 지적인 팬들을 수용해냈고, 자니 마는 독특한 기타 이펙팅과 연주, 그리고 훌륭한 송라이팅을 통해 음악적인 부분을 충족시켜냈다. '스미스'라는 이름에 대해 모리씨는 "스미스란 가장 흔한 이름이며 지금은 세상의 보통 사람들이 얼굴을 보여줄 때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라 설명하고 있었다. 모리씨의 수많은 어록 또한 음악과는 별개로 세간에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결국 밴드는 가사를 쓰는 모리씨와 노래를 만드는 자니 마와의 분열로 인해 와해됐으며 현재는 두 명 모두 각자 솔로로 활동해나가는 중이다. 스미스 해산 이후 네 명은 스미스에 대한 권리 문제로 법정에서 처음 다시 재회하게 되며 재결성 프로젝트 역시 번번히 무산됐다. '스미스'라는 이름은 여전히 하나의 신기루처럼 남겨져 있을 뿐이었다.

 

 

 

 

킬러스는 맨체스터에서의 공연에서 스미스의 위대한 송가 ‘There is a Light that Never Goes Out’을 커버하기도 했다. 이 노래는 영화 <500일의 섬머>에서도 직접 언급되는 곡으로 비관적이면서도 서정적인 가사는 확실히 킬러스가 고스란히 수혈 받은 지점이기도 했다. 킬러스는 모리씨의 솔로곡 ‘Why Don't You Find Out for Yourself’ 또한 재해석해내 자신들의 싱글 비사이드에 수록해냈던 전적 또한 있다. 킬러스의 스미스에 대한 사랑은 끝이 없는데 무엇보다 브랜든 플라워스의 목 부진으로 맨체스터에서의 공연일정이 취소되었을 때 이들은 사과문에서 스미스의 곡 ‘I Started Something I Couldn't Finish’와 모리씨의 곡 ‘We'll Let You Know’, 그리고 ‘Suedehead’의 일부 가사를 인용하기까지 한다. 사실 스미스의 팬이 아니라면 일반적인 사과문으로 비춰질 수도 있겠지만 그간 이들이 스미스에 대한 영향을 언급하고 다녔다는 점으로 미루어 봤을 때 이는 분명 스미스의 노래 제목으로 만든 글귀였다. 사과문 전문은 이렇다.

 

"Manchester, we started something we couldn't finish and we're so, so sorry. Working on rescheduling tonight and tomorrow's shows. Will let you know new dates ASAP"

 

 

 

 

조이 디비전과 스미스 이외에도 킬러스는 영국에서의 공연 당시 오아시스의 곡을 커버하기도 했다. 2012년도 V 페스티발에서는 영국에서 가장 위대한 밴드 중 하나에게 헌정하려 한다는 멘트와 함께 오아시스의 클래식 ‘Don't Look Back In Anger’를 풍부한 목소리를 통해 완수해낸다. 사실 킬러스는 영국 투어 시 지역을 의식하는 커버곡을 연주하곤 했는데 2012년도 리버풀 공연 당시에는 비틀즈의 ‘In My Life’와 역시 리버풀 출신 거장 Echo & The Bunnymen(에코 앤 더 버니맨)의 ‘Bring on the Dancing Horses’를 열창하면서 지역에 대한 예의를 차리기도 했다. 아일랜드 더블린에서의 공연 때는 U2의 ‘With or Without You’와 ‘Ultraviolet’, 그리고 ‘If God Will Send His Angels’ 등을 연주하기도 한다.

 

서두에 했던 질문, 그러니까 영국인들이 킬러스의 음악을 사랑하기 때문에 킬러스가 영국 밴드의 곡들을 커버해 부르는 것인지, 혹은 킬러스가 영국 뮤지션들의 음악을 좋아했기 때문에 영국인들이 이들의 음악을 좋아하는 것인지에 대한 질문은 크게 의미가 없어 보인다. 일단은 좋은 음악이 존재하고, 그 좋은 음악에 영향 받아 재창조된 또 다른 좋은 음악이 발생하는 것일 뿐이다. 우리는 가끔씩 이렇게 지극히 당연한 사실을 잊은 채 살아간다.

 

 


 

Writer. 한상철

 

불싸조라는 밴드에서 기타를 치며 이런저런 글을 쓰고 있다. 취미는 피구와 우표수집이다.

 



[전문가 칼럼] 2000년대 영국이 사랑한 미국 밴드들, 그 중심엔 킬러스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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킬러스는 이른바 ‘영국이 사랑한 미국밴드’로 통한다. 말 그대로 출신은 미국이고 거기서 활동을 시작하려 했지만 영국에서 먼저 발견된 후 영국의 스타로 승승장구했다는 뜻이다. 하지만 이제는 그런 밴드를 찾기 어렵다. 팝 시장에 대한 세계의 관심은 전 같지 않고, 영국에서 먼저 사랑 받은 특수한 미국 밴드란 이제 찾기 어려울 만큼 시장은 대통합을 이뤘다. 다만 킬러스와 킹스 오브 리온의 음악을 사랑했던 이들이라면 지난 몇 년간 관찰했을 법한, 이례적인 사운드를 들려주는 미국 밴드가 가까운 거리에 있다. 대부분 미국 인디에서 출발하고, 피치포크 미디어나 각종 파워 블로거들의 입소문을 통해 여러 페스티벌과 차트에 진출한 사례들이다.

 

 

Kings Of Leon

 


Kings Of Leon(킹스 오브 리온)은 미국 내시빌 출신으로, 팔로윌(Followill) 가의 형제들과 사촌으로 구성된 4인조 가족 밴드다. 2003년 첫 EP를 두 장 발표했는데, 발표와 동시에 영국과 미국의 매체로부터 고른 주목을 받았다. 가능성의 싹을 바라보는 양국의 시각은 같았지만 이후부터는 큰 차이를 보기 시작했다. 같은 해 데뷔 앨범 “Youth and Young Manhood”이 나오면서부터다. EP가 얻었던 상찬 이상이 쏟아졌다. “지난 10년 사이에 발표된 가장 우수한 데뷔 앨범(NME).” “롤링 스톤스가 갈망해왔을 짜릿한 반항과 저항(가디언).” 이 모든 호평들은 모두 영국 언론에서 나왔고 영국의 관심은 세계적인 세일즈로 연결됐다. 세계 기준으로 1집의 통산 판매량은 약 75만 장이다. 그러나 미국은 고작 10만 장. 이력을 통틀어 가장 실험적인 앨범으로 평가되는 3집 “Because of the Times”을 비롯해 이후 발표한 모든 앨범이 언제나 UK 차트 1위에 안착했다.

 

 

The Strokes

 


킬러스와 킹스 오브 리온 이전에 영국 시장에서 주목을 받았던 또 하나의 밴드가 있다. 포스트 펑크를 표방한 The Strokes(스트록스)다. 데뷔하기도 전에 그들의 데모는 영국의 각종 미디어에 전달됐다. 데뷔를 이룬 순간 영국과 미국의 일관된 반응이 따랐고(“록이 돌아왔다”) 2집 이후로는 양국의 쓰라린 외면도 고루 겪었는데(“뉴욕에서 가장 심하게 고장난 밴드”), 시작과 끝이 극명하게 다르다는 것은 비극이지만 그래도 의미는 남았다. 데뷔 시절의 그들은 뉴욕의 인디 음악 시장이 얼마나 생기있게 유지되는지를 보여줬던 밴드이고, 빌보드가 아닌 인디 기원의 음악이 영국을 제대로 관통할 수 있다는 것을 2000년대에 처음 일깨운 밴드다. 스트록스에 대한 영국의 ‘촉’은 킬러스와 킹스 오브 리온이라는 블루 오션을 개척할 수 있는 기반이 되었다.

 

 

Vampire Weekend

 


Vampire Weekend(뱀파이어 위크엔드)는 이례적인 사운드로 승부했던 경우다. 완연한 밴드의 구성으로 월드뮤직(아프로-큐반)을 귀엽게 해석해 세계로 진출한 밴드로, 데뷔 앨범은 빌보드 17위, UK 차트 15위를 기록했다. 사이키델릭 성향의 일렉트로니카를 선보이는 MGMT는 앨범 데뷔 당시 미국의 경우 신인에 주목하는 빌보드 차트에서만 찾을 수 있는 이름이었지만, 영국 차트에서는 12위를 차지하면서 다크호스로 부상한 뮤지션이다. 이후 등장한 Foster The People(포스터 더 피플)과 Fun(펀)은 MGMT와 마찬가지로 악기가 아닌 장비 위주의 폭넓은 사운드와 함께 다채로운 가성을 들려주지만, 지향과 결과가 완전히 다르다. 포스터 더 피플의 경우 영국에서 더 큰 관심을 가질 법한 화려한 편곡으로 승부했지만, 총기 사건이라는 민감한 미국적 소재 덕분에(‘Pump Up Kicks’) 미국에서 더 큰 호응을 얻을 수 있었다. 펀은 MGMT와 Mika를 섞어놓은 것처럼 풍부한 사운드 전개를 보여준다. 그들의 대표곡 ‘We Are Young’은 영국에서도 미국에서도 차트 1위를 차지했지만 미국의 환호가 더 컸다. 뮤지컬 형식의 드라마 <글리>가 펀을 발견했고, 덕분에 미국인 남녀노소가 즐길 수 있는 보편의 뮤지션으로 승승장구했기 때문이다.

 

 

킬러스를 먼저 알아본 영국

 

미국 라스 베이거스 출신의 4인조 킬러스의 시작은 여느 미국 밴드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남들 하는 것처럼 온라인 포트폴리오를 작성하고 지역의 크고 작은 무대를 전전하면서 미래를 찾고자 했다는 얘기다. 그러나 최종적인 결과는 달랐다. 모두가 아니라고 말할 때 남다른 확신을 갖고 있던 한 영국인에 의해 그들의 미래가 결정되었다.


 

 

공연 위주로 활동하던 2000년대 초반, 킬러스는 지역의 아마추어 밴드들이 이용하는 웹사이트에 자신의 음악을 업로드하던 중에 뮤지션 스카우터였던 브래든 메릭(Braden Merrick)이라는 인물에게 픽업됐다. 킬러스의 잠재력을 알아본 메릭은 밴드를 캘리포니아와 샌 프란시스코 등 다른 대도시로 데려갔다. 노래를 재녹음하는 것으로 그들의 데모를 강화하기 위해서였다. 그렇게 완성된 데모는 여러 메이저 레코드 회사에게 전달됐지만 워너 브라더스를 빼놓고 아무도 주목하지 않았고, 데모를 확인한 워너 브라더스는 킬러스의 쇼케이스를 준비했지만 결과적으로 레코드사의 관계자들에게 깊은 인상을 주지 못했다. 그러나 단 한 명이 그들을 색다른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워너 영국 지사 담당자 니얼 노버리(Niall Norbury)였다. 흥미롭게 여긴 킬러스의 음원을 노버리는 영국 어느 인디 레이블에서 일하는 친구에게 들려줬고, 이를 통해 2003년 7월 킬러스는 영국 레이블과 계약을 이룬다.


The Killers

 


킬러스 노래 구석구석에 깃든 풍성한 키보드는 1980년대 뉴 웨이브를 환기했고, 보컬 브랜든 플라워스의 표현 방식은 포스트 펑크로 묶이는 밴드들의 유형과 가까웠다. 공격적이면서도 세련된 그들의 사운드를 미국이 외면하는 동안 영국이 잽싸게 받아들인 것이다. 계약 이후 공식 발표된 킬러스의 ‘Mr. Brightside’는 영국 BBC 라디오1을 통해서 처음 소개됐으며 첫 싱글 또한 영국에서 나왔다. 이렇게 갑자기 영국에서 주목을 받자 미국의 레코드 행사가 그들을 다시 부랴부랴 미국으로 초대해 재평가의 기회를 마련했고, 그 결과 미국 레이블과 추가 계약을 이뤘다. 덕분에 그들의 데뷔 앨범 “Hot Fuss”(2004)는 영국과 미국에서 동시 발매될 수 있었다.

 

 

 

킬러스는 3집 “Day & Age”의 대표곡 ‘Human’이 히트하면서 이후에도 안정된 활동을 이어나갔지만, 그래도 가장 거대한 성공은 데뷔 앨범에 깃들어 있다. 이 성공을 영국과 미국의 통계 차이로 살펴보는 일은 꽤 흥미롭다. 일단 차트 기록을 살펴보면 영국에선 1위, 미국에선 7위였다. 단순히 차트의 고지를 선점했다는 데만 의미가 한정되지 않는다. “Hot Fuss”는 영국에서 무려 173주간, 즉 3년 이상 차트에 머무른 스테디 셀러였다. 판매량의 차이 또한 재미있다. 킬러스의 “Hot Fuss”는 세계적으로 7백만 장 이상이 나간 메가 히트작인데, 거기서 3백만은 미국에서 나왔고 2백만은 영국에서 나왔다. 물론 수치로 보면 영국이 1백만 장이나 뒤지지만, 미국인구가 3억이라는 걸 상기하면 158명 당 한 장을 갖고 있다는 계산이 나온다. 하지만 영국 인구는 6천만으로, 같은 계산법을 적용하면 31명 당 한 장씩 킬러스의 데뷔 앨범을 갖고 있다는 얘기가 된다. 덧붙여 킬러스의 “Hot Fuss”는 21세기 기준으로 영국에서 27번째로 많이 팔린 앨범이다.


The Killers



이후에도 영국은 킬러스를 환영했다. 현재까지 발표된 네 장의 앨범 모두가 UK 차트 1위 기록을 유지했다. 싱글을 살펴보면 ‘Mr. Brightside’처럼 영국과 미국의 차트가 고른 평가를 내렸던 곡들도 있지만(양국 모두 10위) 딱 거기까지다. 미국에선 ‘Mr. Brightside’를 제외하고 킬러스의 싱글이 10위권에 든 적이 없다. ‘Somebody Told Me’는 영국 3위였던 반면 미국 51위를 기록한 노래다. 후반기 대표곡 ‘Human’의 온도 차이도 극명하다. 영국에선 3위, 미국에선 32위로 마감됐다. 킬러스가 발표하는 모든 작품에 대한 영국 시장의 일관된 호응은 그들의 눈부신 데뷔작 “Hot Fuss”에 대한 공고한 믿음과 확신으로부터 시작된다. 영국은 데뷔 앨범에 그토록 열광했고, 어떤 성향의 음악을 발표하든 일단 접수할 가치가 있는 뮤지션이라는 인식이 오랜 시간 유지됐다는 것이다. 그로부터 시작된 신뢰가 없었다면 전세계는 킬러스라는 밴드를 영영 만나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Writer. 이민희(음악칼럼니스트)

각종 온라인/오프라인 매체에 대중음악 관련 글을 기고하고 있다.
음악웹진 백비트(100beat.com)와 네이버 뮤직의 편집인으로 활동중이다.

 



[전문가 칼럼] 킬러스 사운드의 모태, 조이 디비전과 맨체스터 시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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