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컬처프로젝트 11 스튜디오 지브리 레이아웃 전/전문가 칼럼' (5건)

 

1990년대에는 대중적인 성공을 통해 스튜디오 지브리가 메이저 제작사로 발돋움하는 여러 작품들이 나타난다. 그리고 현재에 이르기까지 스튜디오 지브리의 작품은 작품이 공개될 때마다 최고 흥행작으로 손꼽히며 흥행 기록을 갈아치운다. 또한 스튜디오 지브리의 작품들은 해외 유명 영화제에서 다수의 상을 수상하며 대중성은 물론, 예술성까지 인정받아 세계 3대 애니메이션의 제작사로의 입지를 확고히 해오고 있다.

 

이번에는 스튜디오 지브리의 부흥기라 할 수 있는 1990년대에서부터 2000년 대에 이르는 스튜디오 지브리의 대표 작품들을 소개하고, 애니메이션 공정에 쓰인 레이아웃과 실제 애니메이션의 작품을 비교하고자 한다.

 

 

1990년대, 스튜디오 지브리만의 정체성을 찾아가다

 

1990년대 스튜디오 지브리의 작품에는 일본의 과거를 고찰할 수 있는 심도 깊은 이야기에서부터 현재의 일본을 아우르는 이야기까지 현재와 과거, 현실과 환상을 넘나드는 이야기들이 펼쳐진다. 또한 이 시기에는 정치적 이데올로기에 대한 비난과 성찰, 자연과 인간의 대립으로 사랑과 생명에 관한 문제를 다룬 작품 등 스튜디오 지브리만의 색깔을 지닌 작품이 해외 영화제에서 여러 상을 수상함으로써 작품성까지 인정 받은 시기이기도 하다.

 

 

추억은 방울방울 (1991)

 

<추억은 방울방울>은 직장여성 ‘타에코’의 어린 시절에 대한 회상과 여행을 통해 1960년대의 일본 사회상과 생활상을 보여주면서 추억과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작품이다.

 

 

 

 

<추억은 방울방울>의 주인공 타에코가 토시오와 함께 드라이브를 하러 간 장소에서 대화를 나누는 장면이다. 이 레이아웃은 구름과 울타리 배경을 중심으로 두 인물의 움직임을 보여주고 있다. 레이아웃에 울타리는 소품이라는 메모가 명시되어 있어 인물들의 움직임이 좀 더 강조될 것을 알 수 있다. 실제 애니메이션에서는 토시오가 레이아웃 뒤쪽의 화살표 방향으로 걸어 나와 울타리를 잡고 앞을 바라보는데, 그 움직임과 함께 타에코 시선의 이동, 각 인물에 따른 하이라이트, 그림자의 움직임 그리고 각 배경 그림자에 대한 디테일한 묘사를 볼 수 있는 것이 특징이다.

 

 

폼포코 너구리 대작전 (1994)

 

<폼포코 너구리 대작전>은 인간의 이기심으로 인해 갑자기 삶의 터전을 잃게 된 너구리들의 이야기를 그린 영화로, 인간과 동물의 공존이란 주제를 해학적으로 풀어낸 작품이다.

 

 

 

 

너구리인 쇼우키치와 오키요가 변신술로 하얀 공을 만들어 공놀이를 하고, 함께 노래를 부르는 장면이다. 이 장면의 레이아웃은 두 너구리와 너구리들이 밟고 있는 풀, 그리고 배경으로 구성되어 있다. 하늘에 떠 있는 달이 두 너구리를 비추는 빛과 그림자 부분을 표시하기 위해 하이라이트 부분은 빨간 선으로, 그림자는 파란색으로 색칠하였다. 그 아래로는 너구리들의 움직임에 맞게 풀을 별도로 분리하여 작업하도록 배치해 놓았는데, 너구리들이 숲 속 한 가운데 어색하게 떠있는 듯한 모습을 막기 위해 너구리들 앞에 별도의 풀을 배치해 자연스럽게 보이도록 하였다.

 

 

모노노케 히메(1997)

 

<모노노케 히메>는 기존의 스튜디오 지브리 작품과 달리 거친 이미지를 통해 자연에 대한 소중함과 경이로움 등 인간과 환경에 대한 철학적 메시지를 담고 있는 작품이다.

 

 

 

 

시시가미의 목을 되돌려 주고 난 뒤, 아시타카와 산이 서로 각자의 삶을 살아가기로 하며 이별의 인사를 전하는 장면이다. 이 레이아웃 안에는 두 인물과 들개가 배치되어 있는데, 인물에 대해서는 이전의 레이아웃처럼 그림자를 파란색으로 표시하여 음영의 구분을 주었고, 들개 역시 같은 방식으로 지시되어 있다. 단, 들개의 몸통 뒤 쪽에 빛이라는 문구를 표시하여 다른 영역과 음영의 차이가 나도록 지시하였음을 확인할 수 있다. 구름은 Book A로 움직임을 주도록 하였고 뒤 쪽 배경으로 Book B라는 영역을 따로 주어 바람의 방향에 맞게 전체의 움직임을 디테일하게 표현하도록 지시하고 있다.

 

 

2000년대, 스튜디오 지브리의 현재 진행형

 

2000년대 그리고 현재까지 스튜디오 지브리는 계속되는 변화를 맞이했다. 디지털과 3D 애니메이션의 도입으로 애니메이션이 더욱 입체적이고 사실적으로 묘사되고 있지만, 스튜디오 지브리는 여전히 연필의 사각거림에 주목하며, 스튜디오 지브리만의 화려한 색채와 감성적인 연출법을 즐기고 있다. 또한 스튜디오 지브리만의 예측할 수 없는 상상력으로 대중들을 환상적인 모험의 세계로 안내하며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2001)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은 역대 일본영화의 흥행기록을 모두 갈아치우고, 베를린 국제 영화제에서 애니메이션 사상 최초로 ‘황금곰상’을 수상했을 만큼 대중성과 작품성 모두를 인정받은 작품이다.

 

 

 

 

이 장면은 유바바가 운영하는 엄청난 규모의 온천의 모습이다. 웅장한 분위기를 자아내는 이 장면의 레이아웃을 보고 있자면 레이아웃 배경에도 자세한 묘사와 지시가 들어있다는 것 자체가 놀랍게 느껴진다. 온천에 있는 지붕에서부터 각각의 창문, 다리와 나무까지 한 밤의 온천이 어떤 식으로 보이는지 세부적으로 묘사되어 있다. 특히 빨간색으로 표시된 네모 칸, PAN은 온천의 지붕 꼭대기에서 아래쪽 다리까지 카메라가 이동하는 지시가 기록되어 있어서 애니메이션에서 화면의 이동이 있음을 짐작하게 한다.

 

 

 

 

이 장면은 누구에게나 천대받던 가오나시가 자신에게 친절을 베푼 치히로에게 패를 몰래 훔쳐 건네주는 장면이다. 치히로와 가오나시의 레이아웃에서는 가오나시의 캐릭터가 투명한 형태라는 점, 그리고 일부분에서는 투명하지 않은 캐릭터의 형태를 지시해주는 부분을 확인할 수 있다. 또한 레이아웃에는 온천 내부의 배경을 전체적으로 뿌옇게 표현하고, 좌측 부분을 좀 더 구분 되게 표현하라고 지시되어 있는데 이 또한 실제 스틸컷을 보면 프레임 좌측 온천수로 인한 김이 새어 나오는 생동감을 느낄 수 있다.

 

 

하울의 움직이는 성 (2004)

 

영화 <하울의 움직이는 성>은 다이애나 윈 존스의 동명 소설을 애니메이션으로 만든 작품으로, 즐거운 상상력과 화려한 볼 거리를 제공한다.

 

 

 

 

이 장면은 움직이는 성을 바라보는 하울과 마클의 모습이다. 레이아웃에는 배경을 중심으로 움직이는 성의 모양과 그 형태가 어떠한지를 세밀하게 그리고 있다. 특히 움직임이 있는 굴뚝의 모양을 어떤 식으로 묘사할 것인지 레이아웃을 통해 지시하고 있다. 실제 영화에서도 디테일하게 그려진 움직이는 성은 신비스러우면서 기괴한 모습으로 영화 속 가장 인상적인 요소로 기억되고 있다.

 

 

 

 

하울과 소피가 하늘 위에 떠있는 장면의 이 레이아웃은 배경의 구름을 따로 나누어 움직임을 주라는 지시가 쓰여있다. BOOK A, B, C 등으로 각 BOOK마다 숫자가 다르게 표시되어 있는데, 방향 별로 구름의 속도가 다름을 보여준다. 방향에 맞는 캐릭터와 구름의 그림자 위치를 통해 빛의 방향도 확인할 수 있다.

 

 

벼랑 위의 포뇨 (2008)

 

<벼랑 위의 포뇨>는 인어공주를 현대적 시각에 맞게 아름답게 재해석한 작품으로, 호기심 강한 물고기 포뇨와 소스케가 만나 펼쳐지는 이야기가 귀엽고 사랑스러운 작품이다.

 

 

 

 

이 장면은 호기심 많은 물고기 소녀 포뇨가 수면 위에 올라오는 장면으로, 레이아웃에는 배경이 되는 수면에 대한 지시 사항이 자세히 적혀 있음을 알 수 있다. 물의 지면에 라인을 표시하고 물의 흐름에 대한 움직임은 빨간색으로 표시하였다. 또한 물 위 빛의 하이라이트와 그림자, 수면에서 움직임에 따른 물의 움직임들은 따로 분류해 표시하고 있다.

 

 

 

 

포뇨가 분신들과 함께 수면 위로 올라가는 장면의 레이아웃에서는 다음 장면과의 연결을 위해 하단에 메모로 따로 표시를 해 둔 점이 인상적이다. 441번 레이아웃에441번에서 448번까지의 장면 배경을 현재 441번의 레이아웃과 동일한 형태로 구성하는 건 어떤 지에 대해 의견을 묻고 요청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이 레이아웃을 통해 포뇨의 동작이 계속 이어질 것임을 예측할 수 있으며, 배경의 움직임에 따른 빛의 효과를 계속 연결 시키고자 하는 것으로 보인다.

 

이처럼 그림자의 위치, 바람의 방향, 캐릭터의 움직임 등 하나의 작품을 완성하기 위한 요소들이 세세하게 기록된 레이아웃은 애니메이터들의 정성과 노력의 흔적이 오롯이 담겨있는 공간이다. 영화가 상영되는 동안에도, 영화가 끝난 후에도 오랜 여운을 남기는 스튜디오 지브리의 작품 뒤에는 바로 이들의 수고와 열정에서 비롯되지 않았을까?

 

드로잉, 스토리, 캐릭터 등을 넘어 더 넓은 세계를 보여주는 스튜디오 지브리. 오늘 소개한 레이아웃 작품 외의 1300여 점의 작품을 선보일 스튜디오 지브리의 레이아웃 전이 기대된다.

 

 


  

Writer. 맹준재

 

주) 아트플러스엠 근무

KBS TV동화 행복한 세상

KBS TV 애니메이션 상상친구 꾸메푸메

http://www.artplusm.co.kr

 

 

"위 글은 스튜디오 지브리의 의견과 다를 수 있습니다."

 

 

 

[전문가 칼럼] 1980년대 스튜디오 지브리 작품과 레이아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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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성적인 스토리를 통해 대중들에게 상상력과 즐거움을 주는 스튜디오 지브리의 작품들은 레이아웃이라는 특별한 애니메이션의 제작 과정을 통해 더욱 완성도 높은 애니메이션을 만들어낸다. 특히 레이아웃은 누가 맡느냐에 따라 그 애니메이션의 완성도에 영향을 미칠 만큼 중요한 과정이라 할 수 있는데, 스튜디오 지브리의 작품에는 애니메이션계의 거장 다카하타 이사오 감독,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이 레이아웃에 직접 참여함으로써 작품의 완성도는 물론, 살아있는 듯한 실체감까지 부여하고 있다.

 

이번에는 스튜디오 지브리 레이아웃 전에서 볼 수 있는 1980년대 작품의 명장면들을 모아 스튜디오 지브리의 가장 큰 특징이자, 애니메이션 완성도에 중요한 역할을 하는 레이아웃과 비교해보며 스튜디오 지브리의 장면 구현력을 살펴보고자 한다.

 

 

1980년대, 스튜디오 지브리만의 철학적 메시지를 정착시키는 시기

 

1980년대의 스튜디오 지브리 작품은 판타지적 세계관과 자연과 인간의 공존에 대한 철학적 메시지를 담아내고 있다. 신기한 비행선, 빗자루를 타고 날아다니는 마녀, 탈 아시아적인 배경 등, 전 세계 모든 대중들이 쉽게 보고 즐길 수 있는 이야기를 통해 다소 간과하고 있던 주제들을 관객들에게 전하며 마음속에 작지만 큰 울림을 전한다.

 

 

바람 계곡의 나우시카 (1984)

 

 

 

 

<바람 계곡의 나우시카>는 스튜디오 지브리가 담고 있는 철학 중에서 자연의 소중함, 환경에 대한 인간의 고찰을 여실히 느끼게 해주는 작품이다.

 

마을로 돌아온 유파와 나우시카, 그리고 할머니가 함께 대화를 나누는 장면이다. 이 장면의 레이아웃을 살펴보면 나우시카의 모습이 정면으로 보이고 나우시카의 얼굴 주위에 빨간색 칸이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이 부분은 전체의 모습에서 빨간색 칸 부분까지 줌인 되는 카메라의 이동을 보여준다. 그 중에서도 좌측과 우측에 X자로 표시되어 있는 부분이 특징인데, 카메라가 줌이 되는 마지막 화면 위치를 정확히 조정하기 위한 부분으로 판단된다. 실제 제작에서는 X 표시가 되어 있지 않는 부분으로 고정하여 진행하도록 지시되어 있으며, 실제 장면에서는 나우시카의 위치나 우측 동물의 동작이 변경되어 있긴 하지만 카메라의 이동은 레이아웃의 배치를 그대로 따르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천공의 성 라퓨타 (1986)

 

걸리버 여행기의 하늘에 떠있는 섬의 나라 ‘라퓨타’에서 모티브를 얻은 <천공의 성 라퓨타>는 성을 날아다닐 수 있게 하는 전설의 비행석을 둘러싼 모험을 그린 작품이다.

 

 

 

 

지하 동굴 안에 숨어 있던 파즈와 시타가 우연히 만난 할아버지와 라퓨타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다 옷 속에 숨겨둔 비행석을 꺼내 드는 장면이다. 레이아웃에서는 노란 색으로 빛나는 비행석을 중심으로 그 주변의 음영을 파란색 색연필로 표시한 것을 확인할 수 있다. 또한, 레이아웃에서 할아버지가 비행석을 곧 손으로 만지려는 듯한 모습은 실제의 이미지에서도 생생하게 구현된다.

 

 

이 장면은 시타를 납치한 무스카가 죽은 로봇 병기를 바라보며 라퓨타의 존재를 설명하는 장면으로, 레이아웃을 살펴보면 빨간색으로 무스카의 동작과 그림자의 형태를 표시하고, 화살표를 통해 걸어오는 방향성을 명시한 것을 확인할 수 있다. 또한 그림자의 형태를 로봇 병기를 중심으로 원으로 경계를 잡아 주변 분위기를 알 수 있도록 하였다. 레이아웃에는 바닥 묘사까지 디테일 하게 표시되어 있는데, 실제 장면에서도 이 레이아웃의 형식을 그대로 구현했을 만큼 레이아웃의 정밀도가 굉장히 높음을 알 수 있다.

 

 

이웃집 토토로 (1988)

 

이웃집 토토로는 환상적인 캐릭터와 스토리, 살아있는 듯한 자연 묘사로 찬사를 받은 작품이다. 동시에 아이들의 순수한 마음까지 그려내어 스튜디오 지브리의 대표작으로 인정받고 있다.

 

 

 

 

메이가 토토로, 사츠키와 함께 집 앞에 커다란 나무를 키워내는 장면이다. 이웃집 토토로의 주인공, 메이와 사츠키의 집 앞 배경을 보여주는 이 레이아웃은 큰 나무를 기준으로 배경의 다른 나무들을 상대적으로 작게 그려냈다. 또한, 저녁 달빛으로 생긴 나무의 그림자, 구름의 느낌, 나무의 위치로 인해 가려지는 그림자까지 세밀하게 그려낸 것을 엿볼 수 있는데 실제 장면에서 레이아웃 형태를 그대로 재현한 것을 확인할 수 있을 만큼 높은 완성도를 자랑한다.

 

 

 

 

엄마를 찾아 나선 메이를 찾기 위해 사츠키와 토토로가 나무 위로 뛰어올라 소리를 지르는 장면이다. 이 장면의 레이아웃을 통해 토토로와 사츠키의 움직임은 물론, 전체적인 배경과 나무 사이의 디테일 한 묘사를 통해 장면의 전체적인 분위기를 느낄 수 있게 한다. 토토로, 사츠키의 캐릭터와 주변 나뭇잎의 묘사는 나무 위로 나타난 토토로로 인해 위기의 상황이 극복되는 듯한 느낌을 자아낸다.

 

이처럼 스튜디오 지브리의 레이아웃에는 캐릭터의 세세한 움직임에서부터 연출 의도, 카메라 워크까지 세세한 내용이 담겨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감독의 생각과 이야기를 손으로 그려낸 레이아웃은 하나의 작품으로 완성되어 영화의 장면과는 또 다른 감동을 전한다.

 

다음은 1990년대부터 2000년대에 이르기까지, 대중들에게 많은 사랑을 받은 스튜디오 지브리의 대표 작품과 레이아웃을 살펴보며, 영화 스틸 컷에서 느낄 수 없는 또 다른 묘미를 찾아보고자 한다.

 

 


  

Writer. 맹준재

 

주) 아트플러스엠 근무

KBS TV동화 행복한 세상

KBS TV 애니메이션 상상친구 꾸메푸메

http://www.artplusm.co.kr

 

 

"위 글은 스튜디오 지브리의 의견과 다를 수 있습니다."

 

 

 

[전문가 칼럼] 1990년대부터 2000년대까지, 스튜디오 지브리 작품과 레이아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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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니메이션 업계 종사자 혹은 그림을 공부하는 미술학도들이 현대카드 컬처프로젝트 11 스튜디오 지브리 레이아웃 展을 찾는다면, ‘레이아웃이란 이런 것이다’라는 원론적인 부분이나 애니메이션의 개념들은 잠깐 접어둘 것을 권한다. 종이 한 장의 테두리로는 가둬둘 수 없는 상상력의 넓이와 깊이를 만나보게 될 테니 말이다.

 

'천공의 성 라퓨타’ C1606 이라고 적힌, 8장 남짓의 레이아웃 시트지가 투박한 테이프로 연결되어 있다. 세로로 길게 확장된 레이아웃 시트지에는 긴 뿌리를 가진 라퓨타 성이 라인으로만 그려져 있다. 자연스레 양손의 엄지와 검지를 교차시켜 작은 카메라 뷰파인더를 만들어 라퓨타 성의 하단 뿌리부터 성의 꼭대기까지 영감의 카메라를 틸트 업 시켜 본다. 조금 더 가까이 다가가 그림을 유심히 본다. 용지에 묻은 손자국, 힘주어 눌러 그린 연필자국, 처음 그었던 라인이 맘에 안 들었던 것인지 지우개로 지운 흔적이 보인다. 구름은 1프레임에 몇 mm를 움직여야 하는지 꼼꼼히 설명한 필체에서는 세심함마저 느껴진다.

 

균일한 품질의 제품을 대량생산하기 위한 설계도 이미지가 순간 머리 속을 스치고 지나가지만 눈앞에 걸려 있는 이 설계도는 사람의 눈과 마음과 손으로 그려낸 진짜 그림이 아니던가. 애니메이션에서 '레이아웃'이란 것은 그런 것이다. 통상, 디자인, 회화, 조각에서부터 기획, 재테크에 이르기까지 '레이아웃'은 대략적인 윤곽을 잡는 것으로 간단히 설명할 수 있지만 애니메이션의 '레이아웃', 특히 스튜디오 지브리의 '레이아웃'은 대략이란 의미와는 정반대로 대단히 정확해야 하고 정교해야 하며 아름다워야 하는 상상의 설계도 같은 것이다.

 

 

사실적이어서 더욱 아름다운 다카하타 이사오 감독의 레이아웃

 

 

 

 

현대카드 컬처프로젝트 11 스튜디오 지브리 레이아웃 展을 통해 다시금 재조명되는 인물이 있다. 대부분의 관객들이 스튜디오 지브리와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을 하나의 공식처럼 암기하고 있었을 때, 출입구의 이 문구를 본다면 분명 시험지에 잘못 적어낸 답을 본 것처럼 혼란스러울지도 모른다.

 

"다카하타 이사오와 미야자키 하야오의 비밀 설계도" <추억은 방울방울>의 레이아웃을 본다면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것과는 분명한 차이를 느낄 수 있다. 다카하타 이사오 감독은 사실주의에 입각한 애니메이션 표현에 중점을 두고 그로부터 현실을 반영하고 감동을 전달한다. 실제 작화가 들어가기 전의 레이아웃에서 조차 자동차 계기판의 바늘 하나하나를 놓치지 않는다. 캐릭터의 웃는 얼굴 위에 근육의 움직임이 어떻게 표현되는지도 상세히 설명하고 있다. 주로 상상의 이미지를 표현하는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작품과 달리 리얼리즘에 베이스를 둔 다카하타 이사오 감독 작품에는 이런 디테일이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경우가 많다. 단순히 ‘정교하게 잘 그렸네’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정교하게, 사실적으로, 그래서 당연한 것처럼 받아들이게 되는 것에서 오는 감동은 몇 백 년이 지나도 변하지 않는 진리이기 때문이다. 그 놀라우리만치 현실을 반영한 작품이 수십 수백 장이 되어 전시되고 있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이것은 촬영 버튼으로 쉽게 전사된 한 장의 사진이 아니라 비 내리는 새벽, 하얀 스탠드 조명 밑에서 피곤한 눈을 비비며 한선 한선 그어나간 인간미 넘치는 그림이라는 점을 상기할 때마다 경이로움 경이로움을 느끼게 한다.

 

 

현대카드 컬처프로젝트 11 스튜디오 지브리 레이아웃 展의 묘미

 

전시된 작품은 <바람계곡의 나우시카>를 시작으로 스튜디오 지브리가 제작한 애니메이션 순으로 관람객을 안내한다. 각 애니메이션마다 특정 레이아웃과 실제 애니메이션으로 제작된 화면을 비교할 수 있도록 모니터를 준비해 두었는데 스튜디오 지브리의 레이아웃이 애니메이션 제작에 있어서 어떤 역할을 하는지 직관적으로 알 수 있었다. 다시 한번 이 전시의 메인 타이틀인 '레이아웃'에 대해 생각해 본다. 모든 애니메이션 제작에 레이아웃 시스템을 사용하지는 않는다. 혼자서 혹은 아주 소수의 인력으로 작품을 만드는 짧은 단편 애니메이션 제작에는 레이아웃 단계가 더욱 필요 없어진다. 왜냐하면 작가의 머리 속에 이미 설계도가 그려져 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레이아웃은 공동작업 및 분할작업이 필요한 경우 그림과 연출의 통일성을 유지하기 위해 가이드 역할을 하는 설계도라고 먼저 이해하면 될 것 같다.

 

 

 

 

전시장 입구에서부터 들려오던 메인 테마 곡에 이끌리다 보면 잘 보관된 <모노노케 히메>의 레이아웃이 펼쳐지기 시작한다. 액자 프레임 속에 정성스레 나열된 레이아웃은 제각각 그림체가 조금씩 다르다. 작업자의 이름을 명시하지 않은 수 많은 레이아웃 숲에서 미야자키의 작업을 찾아내는 것도 이 전시의 또 다른 관람포인트이지 않을까? 다카하타 이사오 감독과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이 가장 신뢰한다는 애니메이터 오츠카 신지 미술감독의 레이아웃이 유독 눈에 띈다. 영화 <7인의 사무라이>를 연상시키는 무사들의 긴장과 패기를 효율적이면서 인상적인 선으로 표현하고 있다. 제한된 자본과 시간 때문에 고안된 레이아웃 시스템 속에서 그려내기 어려운 장면을 아주 빠른 속도로 잘 표현하는 오츠카 신지 씨에 대한 두 감독의 애정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는 부분이다.

 

 

 

타원형의 어두운 터널을 지나니 입 꼬리가 자연스레 살짝 올라간다.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의 초반부에 나왔던 그 터널을 지나가고 있다. 머리 속에서는 이미 애니메이션에서처럼 보라색 미풍과 메마른 낙엽이 몇 조각 날리고 있었다. 실제 가오나시가 내 옆까지 바싹 다가온다. 둘은 아무 말없이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레이아웃을 쳐다보고 있다. 누군가가 가오나시의 탈을 쓰고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는 것은 지각되지만 그 긴장감은 글을 적는 지금도 생생하다. 전시장 곳곳에 애니메이션의 오브젝트와 공간과 인물들이 실제 존재할 수 있으니 스튜디오 지브리의 애니메이션을 본 관람객이라면 쉽게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다시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목소리가 인터뷰영상을 통해 들린다. 그가 생각하는 것은 오직 하나로 귀결되는 것 같다. 결론은 그림의 문제이다. 다양한 형태로 애니메이션이 제작되고 있고, 장편 애니메이션은 수익에 대한 부담을 항상 떠안고 있으며, 그 해결책 중의 하나로 디지털 애니메이션 제작방식을 고수하는 스튜디오가 늘어나고 있지만, 한 장 한 장 그려진 좋은 레이아웃의 연속이 바로 '좋은 애니메이션'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 나 역시 그의 생각에 전적으로 동감한다. 스튜디오 지브리가 제작하는 애니메이션 영화는 하얀 무지 종이에 그려지는, '그림을 그린다. 창작한다'의 예술 결과물이므로 더욱 그렇지 않을까?

 

 

결과가 아닌 과정에서 찾는 감동과 즐거움

 

사실, 현시대를 살고 있는 우리는 너무나 많은 최종 결과물을 경험하고 소비하고 있다. 영화에서부터 책, 음악, 음식, 제품 등 잘 만들어진 결과물의 포장만 벗겨내면 손쉽게 그것들을 경험할 수 있도록 되어있다. 여기서 몇 단계만 거슬러 올라가보자. 최종 결과물이 아닌 과정을 즐겨보자는 말이다. 모든 결과물은 분명히 누군가에 의해 만들어지고, 그들의 열정과 고민을 이해하고 공유할 수 있다면 결과물에 대한 또 다른 감동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현대카드 컬처프로젝트 11 스튜디오 지브리 레이아웃 展은 이런 프로세스의 묘미를 정확히 소개시켜 주는, 코멘터리 보다 조금 더 완성도가 높아진 독립된 의미로서 다가온다. 이 전시를 관람해야 하는 몇 백 가지 이유 중 첫 번째는 과정을 바라보는 상상의 시각에서 당신의 삶 자체에 적지 않은 풍성함을 연결시켜 주기 때문이라고 이야기하고 싶다. 이런 점에서 '현대카드 컬처프로젝트 11 스튜디오 지브리 레이아웃 展'이 주는 매력은 그들의 애니메이션을 보고 흘리는 눈물만큼이나 잔잔하고 숙성된 영감을 불러 일으키고 있는 것 같다.

 

초등학교 운동회 때 울려 퍼지던 '미래소년 코난'의 노래는 아직도 내 인생의 응원가로 남아있다. 레이아웃을 그렸던 제작자에게도, 엄마 손을 붙잡고 전시장에 들어선 7살의 꼬마아이에게도 남아있게 되기를 바란다.

 

 


 

Writer. 김영준

 

세계에 대한 관심을 비주얼 언어를 활용해 표현하고 있는 애니메이션 작가.

 

홍익대학교 시각디자인과 졸업

애니메이션 & 디자인 스튜디오 Earth Design Works 대표작가

단편애니메이션 벚꽃나무 코끼리 숲 / 여우모자 / The Memory of Fountain

 

 


 

 

"위 글은 스튜디오 지브리의 의견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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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니메이션을 제작하게 되면서 스튜디오 지브리의 레이아웃 전이 일본에서 열리고 있다는 사실을 회사 동료에게 듣고는 무척이나 궁금해졌다. 물론 스튜디오 지브리의 아트 웍은 두말할 것 없이 최고 레벨이기에 유명 거장의 애니메이터들이 그린 레이아웃은 뭐가 다를까, 조금이라도 그들의 발자취를 보고 느끼고 싶은 생각에 현지에 가지 못하는 아쉬움이 많았다. 그런데 일본 외의 타 국가에서 처음으로 국내에서 스튜디오 지브리의 레이아웃 전시회가 있다는 사실에 매우 흥분되고 기대된다. 필자의 경우 애니메이션의 업계에 첫발을 내밀게 된 이유가 스튜디오 지브리의 작품을 보게 되면서 시작되었기에 더 각별하게 느껴진다. 우스갯소리로 '스튜디오 지브리가 아니었으면 내 인생이 어떻게 됐을지 몰라' 라고 할 정도로 스튜디오 지브리의 작품들은 모든 이들에게 가슴 속 무언가를 꿈틀거리게 하는 마법의 힘이 있다고 생각된다.

 

애니메이션이란, 라틴어의 ‘anima’에서 나온 말로 정신, 또는 생명의 숨결이라는 뜻을 갖고 있다. 아무것도 없는 빈 종이에 그림을 그려 프레임 별로 촬영한 뒤, 초당 24프레임의 규정된 속도로 차례대로 스크린에 비추면 그 속에서 마치 실제처럼 움직임을 볼 수 있는 것이 그 특징이다. 어린 시절 한 번쯤 해봤을 플립북(아래 사진 참고, 공책 한 구석에 그림을 그려 페이지를 빠르게 넘기면 그림이 움직이게 하는 방식)처럼 단순한 그림들이 빠르게 넘어가면서 실감나는 영상이 된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 이제 이야기할 제작 과정에 대한 부분도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그림들을 연속해 움직이는 영상처럼 보이게 만든 것이 바로 애니메이션이다. 애니메이션의 기법에는 많은 종류가 있지만 그 중 상업적인 애니메이션이 가능하도록 처음 고안 된 것이 Cell 애니메이션이다. 1915년 허드(Earl Hurd)가 고안해 낸 기법으로, 종이에 그린 그림을 투명한 플라스틱인 셀룰로이드에 옮겨 채색한 뒤 배경은 그대로 두고 인물만 움직이게 하는 방식을 의미하는데, 이렇게 실감 나는 셀 애니메이션을 제작하기 위해서는 일반적으로 프리 프로덕션, 프로덕션, 포스트 프로덕션이라는 세 가지의 제작 공정을 통해 진행된다.


이제 스튜디오 지브리로 눈을 돌려보자. 스튜디오 지브리 역시 프리 프로덕션-프로덕션-포스트 프로덕션의 과정을 거친다. 



1. 프리 프로덕션 단계

프리 프로덕션은 애니메이션의 기획 단계로, 어떠한 애니메이션을 만들 것인가에 대한 첫걸음이다. 작품에 대한 가장 큰 그림을 그리는 기획, 스토리의 소재 발굴과 장면 별 대사와 지문, 분위기를 정리한 시나리오, 시나리오를 중심으로 실제 장면들이 어떻게 보여질지에 대한 스케치된 이미지 형식의 콘티, 그리고 스토리와 전체 분위기에 맞게 어떤 캐릭터를 등장시킬 것인지에 대한 디자인 등이 포함된다. 실사 영화와는 달리, 애니메이션은 한 장씩 그림을 그려나가는 작업이기 때문에 일단 많이 만들어두고 후반 작업을 통해 편집한다는 것은 여러모로 큰 손해다. 그렇기에 프리 프로덕션의 콘티 제작에서는 씬의 연결은 물론, 카메라 앵글, 인물의 연기 등 대략적인 구상이 필요하다.

 

2. 프로덕션 단계

이어 프로덕션 단계는 애니메이션 제작의 핵심 과정이다. 프로덕션 단계는 레이아웃- 원화- 동화- 스캔- 색 지정- 채색-검수- 촬영, 효과 등의 순으로 이루어진다. 우선 레이아웃은 프로덕션의 모든 과정의 시작이다. 콘티가 작품 전체의 설계도라면, 레이아웃은 각 컷과 각 씬의 설계도라고 볼 수 있을 정도로 중요도가 큰 작업이다. 레이아웃이 완성되면 등장인물의 동작이나 물체 운동의 핵심 부분이 되는 그림을 그리는 원화 작업과, 원화 작업 이후 그 사이의 비어 있는 그림들을 그려 움직이게 하는 동화 과정, 원, 동화의 과정을 통해 완성된 각각의 그림들을 디지털 작업이 가능하도록 하는 스캔 작업, 스캔 된 각각의 이미지들을 색 지정과 채색 작업을 진행하고, 이후 각 과정이 올바로 진행되었는지 다시 한 번 검토하는 검수 단계에 들어간다. 이후 각각의 완료된 그림을 영화 필름의 한 장인, 프레임(Frame) 별로 촬영하고 장면 별로 필요한 효과 영상 등을 추가로 제작하여 최종 편집을 통해 프로덕션의 과정을 마무리한다.

 

3. 포스트 프로덕션 단계

그 다음 포스트 프로덕션이라는 후반 제작 과정을 통해 편집과 합성 그리고 성우 더빙, 음악 및 음향 효과의 작업을 거치게 된다. 이 세가지 애니메이션 제작 과정 중 애니메이션 제작의 꽃이라 불리는 과정이 있다. 바로 프로덕션 과정 중 레이아웃이다.

 

 

레이아웃이란 사전적 의미로 무언가를 배치하는 뜻을 갖고 있는데, 애니메이션의 레이아웃이란 스토리의 한 장면 즉, 씬 안에 있는 모든 것들을 어떻게 표현할지에 대한 감독의 지시를 포괄한다. 레이아웃을 통해 애니메이션의 움직임을 주는 작업이 시작되고 많은 스테프들이 각 파트에 맞게 제작 하게 된다.

 

애니메이션은 여러 사람이 모여 작업하는 시스템을 갖고 있기 때문에 빠른 속도로 진행하는 것이 효율적이다. 왜냐하면 레이아웃을 보는 작업자들의 이해가 부족해 제작 시간이 지체되는 일이 생긴다면 그만큼의 손해가 커지게 되기 때문이다. 그만큼 레이아웃은 애니메이션 제작에서 필수 과정이며 실제 장면에 대해 원근법과 정확한 묘사 등 연출의 설명과 지시 사항 등이 포함되어있다. 그렇기 때문에 레이아웃에는 연출가의 연출에 대한 상상력과 수많은 고민들이 섞여 있다. 


특히 스튜디오 지브리의 다카하타 이사오 감독과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이라는 세계적인 거장들의 작품들은 엄청난 묘사와 완성도 높은 한 장의 레이아웃으로 이미 애니메이션의 한 장면을 상상하며 볼 수 있을 정도로 완벽하다고 할 수 있다. 애니메이션을 사랑하고 특히 스튜디오 지브리의 감성에 빠져 있는 모든 사람들에게 이번 전시회가 주는 의미는 정말 남다르다.

 

 


  

Writer. 맹준재

 

주) 아트플러스엠 근무

KBS TV동화 행복한 세상

KBS TV 애니메이션 상상친구 꾸메푸메

http://www.artplusm.co.kr

 

 

"위 글은 스튜디오 지브리의 의견과 다를 수 있습니다."




[전시 정보] 장면을 설계하다, 스튜디오 지브리의 레이아웃 시스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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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워드로 알아보는 미야자키 하야오의 세계


일본 애니메이션의 전성기는 70년대 후반에서 90년대였다. 70년대 말 토미노 요시유키의 <기동전사 건담>이 리얼리즘 로봇 애니메이션의 전성기를 열어젖히고, 미야자키 하야오가 이끄는 지브리 사단이 <바람계곡의 나우시카>(1984)와 <이웃집 토토로>(1988) 같은 걸작들을 연이어 쏟아 내고, 오토모 가츠히로의 <아키라>(1988)가 ‘재패니메이션’이라는 신조어를 탄생시키며 전 세계에 일본 애니메이션의 미학을 퍼뜨리던 그 시절은 일본 애니메이션의 황금기였을지 몰라도, 그 기간은 짧았다. 그 후, 많은 애니메이션 거장들은 극장용 애니메이션 제작에서 한 발 물러났고, 오로지 오타쿠 문화에 기반한 프랜차이즈 애니메이션의 전성기가 시작됐다. 버블 경제가 막을 내리면서 더 이상 한 편의 애니메이션에 예전 같은 작가주의적 공과 자본을 들일 수 없게 된 탓이기도 할 게다.

 

미야자키 하야오는 우울한 재패니메이션의 암흑기에 고고하게 살아남은 거의 유일한 거장이다. 많은 사람들은 미야자키 감독의 전성기가 이미 지났다고 말하곤 하는데, 그것 역시 사실일지 모른다. 그의 미학적 세계는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에서 정점에 도달했고, 이후 <하울의 움직이는 성>과 <벼랑 위의 포뇨>를 거치며 조금씩 숨이 죽었다. 그러나 잠깐 ‘숨이 죽었다’라는 건 어쩌면 온당한 표현이 아닐지도 모른다. 젊은 시절의 에너지가 조금 깎이긴 했지만 그는 여전히 영화를 만들고 있다. 메시지가 조금 유연해지긴 했지만 그의 새로운 작품들은 여전히 예전 미야자키 영화들의 메시지를 똑같이 담고 있다. 끊임없이 영화를 만들며, 같은 주제 의식을 견지하는 예술가들을 일컬어 우리는 ‘작가’라고 부른다. 미야자키 하야오는 그 명칭에 가장 어울리는 현대의 예술가 중 한 명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몇 가지 키워드를 통해서 이 놀라운 작가를 아주 명확하게 머릿속에 담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가장 중요한 키워드는 ‘생태주의’다. 미야자키 감독은 오래 전 “나는 생태계의 한 부분으로서 인간성에 대한 문제를 제기하지 않고서는 영화를 만들 수 없는 단계에 이르렀다.”고 말한 바 있는데, 생태주의라 일컬을 만한 목소리가 가장 두드러졌던 작품은 아마도 <모노노케 히메>일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모두 죽어 버렸으면’을 외치며 파멸로 치닫는 21세기 일본 애니메이션(특히 <신세기 에반게리온>)의 급진적 생태주의와는 분명한 차이를 보인다. 혁명이나 문화적 패러다임 교체만이 파멸로부터 지구를 구한다고 믿는 급진적 생태주의와 달리 미야자키의 생태주의는 문명과 자연 사이에서 투쟁하는 인간에게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아라’(生きる)는 조언을 던진다.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생태주의는 당연히 정치적인 환기로 이어진다. 그는 끊임없이 파시즘, 전체주의에 대항해 온 정치적 예술가다. 그의 주인공들은 생태주의에 입각한 이상적인 공동체 부락에서 살아가고, 주인공들의 반대 지점에는 항상 전체주의 정부가 존재한다. <바람계곡의 나우시카>의 전제 국가 토르메키아, <천공의 성 라퓨타>의 강력한 군사정부, <미래소년 코난>의 1인 독재 국가 인더스트리아는 어떤 면에서 미야자키 감독이 어린 시절 직접 겪은 2차 대전의 일본 정부의 재현이 아닐까. <이웃집 토토로>에 대해서 그는 “일본을 굉장히 싫어했던 어릴 적 나 자신을 위해 어른이 되어 쓴 편지 같은 작품”이라고 말한 적도 있는데, 이는 태평양 전쟁 시절 잘못된 방향으로 나아가던 일본 사회에 대한 비판 정신의 발로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런 생태주의와 반 전체주의 사상이 가장 직접적으로 드러나는 다른 결정적 키워드를 고른다고 하면 당연히 ‘소녀’다. 미야자키 영화의 주인공은 언제나 소녀다. 강하고 정의로운 소년들이 등장하기는 하지만 그들은 소녀가 쥐고 있는 열쇠를 푸는 데 필요한 조연에 머무른다. <천공의 성 라퓨타>의 시타, <미래소년 코난>의 라나, <바람계곡의 나우시카>의 나우시카, <모노노케 히메>의 산,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의 치히로는 모두 소년(남자)들의 철없는 생명력을 다스리며 그들의 성장을 진두지휘하는 독립적인 캐릭터다. 미야자키 작품에 아버지의 존재가 거의 등장하지 않는다는 사실도 주목할 만하다. <천공의 성 라퓨타>와 <하울의 움직이는 성>에서는 아버지가 이미 죽었다는 설정이고, <바람계곡의 나우시카>의 아버지는 도중에 목숨을 잃는다. 가장 최근작인 <벼랑 위의 포뇨>에서도 아버지의 존재는 그리 중요하지 않다. 대신 미야자키 감독은 위대한 어머니를 주인공 소녀들에게 안겨 준다. <하울의 움직이는 성>에서 갑자기 90살 노파로 변해 버린 주인공은 다른 소년들의 어머니 역할을 스스로 수행하고, <천공의 성 라퓨타>의 여자 해적 대장이나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의 마녀 자매는 주인공을 강하게 단련시키는 유사 어머니 캐릭터다. 미야자키 하야오는 오직 여성의 자연적인 힘만이 남성들의 손에 망가져 버린 세상을 구원할 수 있다는 믿음을 갖고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1941년생인 미야자키 하야오는 더 이상 직접적으로 파시즘을 비판하지는 않는다. 그는 이탈리아 파시즘의 시대를 그린 <붉은 돼지>를 만들고 난 이후에는 “정치를 좌우로 편리하게 가르진 않는다”라고 말한 바도 있다. 역시 나이가 들면 사람은 정치적으로 조금 둥글둥글해지는 건가? 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놀랄 준비를 하는 게 좋을지도 모른다. 그가 올 여름 내놓을 신작 <바람 불다>는 일본이 전 세계를 대상으로 전쟁에 돌입하던 1930년대를 배경으로, 전투기 ‘제로센’의 제작자 호리코시 지로의 이야기를 다룬다. 미야자키 하야오와 계속해서 손잡아 온 제작자 스즈키 도시오는 이 작품이 “세계에 헌법 9조(2차 대전 후 전쟁 포기를 선언한 일본의 헌법, 현재 아베 총리를 위시한 일본의 우익 성향 정치가가 이 헌법을 바꾸려고 하는 중이다)의 존재를 다시 호소하는 이야기”라고 말한다. 어쩌면 이 영화에서 미야자키 감독은 (그가 한 번도 직접 다룬 적은 없는) 태평양 전쟁의 중심으로 돌아가, 지금까지 우리에게 건네 온 생태주의와 반 전체주의의 키워드를 가장 강력하게 주창할지도 모른다. 미야자키 하야오는 나이가 들었어도 조금도 나이 먹지 않았으며, 오히려 더 도전적인 발걸음으로 전진하고 있다. 모든 것이 무뎌지는 이 세계에 여전히 이런 예술가가 살아 있다는 사실은 얼마나 근사한가.

 

 


 

Writer. 김도훈

 

월간지 ‘GEEK’ 피쳐 디렉터.

‘씨네21’에서 오랫동안 영화 기사를 써왔다.

좋아하고 싫어하는 것들에 대해 거침없이 쓰고 말한다.

 

 

 

 

 

 

 

"위 글은 스튜디오 지브리의 의견과 다를 수 있습니다."

 


 

[전문가 칼럼] 미야자키 하야오의 설계도, 레이아웃이란?

[전시 정보] 스튜디오 지브리의 중심,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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