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컬처프로젝트 10 KRAFTWERK/전문가 칼럼' (8건)

 

 


사람들이 크라프트베르크의 음악을 ‘미래적’이라고 일컬을 때 그건 무슨 의미일까? 오늘날 크라프트베르크의 음악을 처음 접할 청자에게 그들의 음악은 ‘혁신적’으로도, ‘첨단’을 달리는 것으로도 들리지 않을 것이다. 그들이 전자음악에 도입했던 참신한 기법들은 이제 보편적인 방식이 되었고, 최신의 장비들을 사용하여 휘황한 소리를 뽑아내는 프로듀서들과 DJ들은 차고 넘친다. 그럼에도 크라프트베르크의 음악은 여전히 ‘미래의 음악’으로 들린다. 그것은 어쩌면 그들이 만들어낸 소리와 이미지들, 그리고 그들이 제시한 개념들이 ‘미래’라는 단어의 어떤 핵심을 꿰뚫고 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크라프트베르크의 음악에는 ‘테크놀로지’가 이뤄내는 진보에 대한 매혹과 그것이 야기할지도 모를 파멸적 결과에 대한 두려움이 동시에 자리하고 있는 것 같다. 어쩌면 이는 그들의 음악적 전성기였던 1970년대와 1980년대 초반의 시대적 분위기를 은연중에 반영한 결과일 것이다. 


이제는 거의 소박하게 보이는 그 때 그 시절의 ‘첨단적’ 이미지들을 최신의 3D 기법을 동원해 소환하고 재배치하면서 사실상 ‘미디어 아트’에 다름아닌 방식으로 그려내고자 하는 것이 다름아닌 ‘테크놀로지에 대한 매혹과 두려움’이라고 한다면 너무 단순한 관점일까? 하지만 눈이 부실 정도의 빨간 바탕을 배경으로 마치 눈앞에서 튀어나올 듯 팔을 뻗는 거대한 마네킹이 등장하는 첫 곡 ‘The Robots’에서 느꼈던 것이 바로 그것이었는데 어쩌겠는가? 한때 ‘실제’ 로봇이 등장했던 무대는 이제 3D 안경 너머에서 생생하고 압도적으로 표현되었고, 그룹은 선명한 이미지와 강렬한 메시지를 통해 당시 그들이 꿈꾸었던 미래의 풍경을 그려냈다. ‘The Robots’가 발표된 것이 1978년이니 35년이 지난 지금에서야 그 때의 의도를 기술이 따라잡았다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도 눈앞에 펼쳐지고 있는 건 ‘미래의 음악’이었다.

 

 

압도적인 3D 비주얼, 공감각적인 사운드로 빈틈없이 채워진 돔 스테이지 

   

 

 

 

에누리없이 두 시간 동안 펼쳐진 공연에서, 크라프트베르크는 한편으로는 다양한 방식으로 관객들을 몰입시키는 동시에 다른 한편으로는 그들이 제시하는 이미지들을 낯설게 보이도록 계속 주의를 환기시켰다. 그것은 아득한 우주를 유영하는 다음 곡 ‘Spacelab’과 차갑고 기하학적인 흑백의 스카이라인을 천천히 조감하는 ‘Metropolis’로 이어지는 놀랍고 황홀한 순간에도 마찬가지였다. 이는 통상적인 공연이 관객들을 홀리는 데 더 많은 에너지를 투입하는 것과는 대조적인 광경이었고, 관객들은 눈앞에 펼쳐지는 광경에 그저 넋을 놓고 있는 것이 아니라 그들이 보는 것에 대해 ‘생각’을 하도록 요구 받았다. 숫자들이 공격적으로 튀어나오는 ‘Numbers’, 세상을 움직이는/움직였던 온갖 기관들과 보통명사들을 열거하면서 그 모든 것들을 지배하는 컴퓨터의 존재를 탐구하고 있는 것 같은 ‘Computer World’와 ‘Home Computer’, ‘Dentaku’ 등의 곡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관객들은 ‘마음 편히’ 즐기는 대신 무대 위에 있는 아티스트에게, SF영화 [트론]에서 막 빠져 나온 것 같은 복장을 입고 서 있는 네 명의 남자들과 그들이 만들어내는 이미지들에 끊임없이 집중해야 했다.

 

 

 


하지만 그게 전부일까? 그래서야 정말로 미술관을 돌아다니는 것과 다를 바 없지 않은가? 사전에 어느 정도 레퍼토리를 숙지하고 갔음에도 불구하고 공연이 진행되는 동안 종종 ‘지금 이것이 내가 들었던 그 음악인가’ 싶은 생각이 들곤 했다. 파격적인 편곡이 이루어져서가 아니라 전체적인 소리와 에너지의 밀도가 엄청나게 높았기 때문이었다. ‘The Robots’가 이 정도로 춤추기 좋은 곡이었나 싶었고 ‘Dentaku’의 비트는 더없이 날렵했으며(랄프 휘터의 다리도 더 빨리 까닥거렸다), ‘The Man Machine’의 짱짱한 인더스트리얼 사운드는 검정과 빨강, 하양으로 빚어낸 비주얼 만큼이나 압도적이었다. 무대 앞과 뒤에 설치된 스피커에서 선명하고 입체적인 사운드가 흘러나왔다. 아무리 진지하고 멋진 이미지들이 무대 위를 날아다닌다 해도 결국 이것은 ‘음악’ 공연이고, 그런 면에서 보았을 때 그날의 소리를 언급하지 않고 넘어가는 건 말이 안 되는 일일 것이다. ‘Neon Lights’의 부드러운 서정이나 ‘The Model’의 카랑카랑한 냉소 역시 인상적인 사운드 속에서 적절하게 표현되었다.

 

 

한국 팬들에게 전하는 크라프트베르크의 메시지

 

 

 


회색 폴크스바겐이 초기 3D 게임 화면처럼 디자인된 도로를 달리기 시작하면서 밴드의 대표곡 ‘Autobahn’이 울려 퍼졌고, 이때부터 공연은 절정을 향해 차곡차곡 올라갔다. 아우토반을 일주하는 느긋한 여정이 끝나자마자 선수들의 가쁜 신음소리와 함께 크라프트베르크의 이름을 다시 한 번 사람들에게 상기시킨 대표곡 ‘Tour de France’가 화사한 삼색 화면에 맞춰 꿈틀거렸다. 단단하게 때려대는 비트 위에서 절묘하게 편집된 흑백 화면 위를 색색의 선과 추상적인 도형들이 날렵하게 움직였으며, 탄성이 터져나올 정도로 멋진 장면들이 끊임없이 나타났다 사라졌다. 그러나 공연의 진짜 하이라이트는 아직 등장하지 않은 상황이었다. 알약들이 둥둥 떠다니던 ‘Vitamin’을 지나 ‘Radioactivity’의 익숙한 전주가 등장하자 관객들이 환호성을 질렀다. 체르노빌, 해리스버그, 셀라필드, 히로시마 등 핵 관련 사고가 일어난 지명들이 차례차례 등장했다. 최신 ‘업데이트’라 할 수 있는 후쿠시마도 포함되었다. 일본어 자막과 원자력을 상징하는 이미지들이 번갈아 나타나다가 후렴구가 다시 한 번 반복되는 순간, ‘이제 그만 방사능’이라는 한글 가사가 뜨고 랄프 휘터가 그 가사를 불렀을 때 관객들은 엄청나게 흥분하며 스마트폰을 본능적으로 치켜 올렸다. 공연 초반 ‘Spacelab’에서 한반도를 비췄을 때보다 훨씬 더 큰 함성이 터져 나왔다.

 

 

그렇다. Music, Non Stop!

 

 

 

 

밴드의 또 다른 대표곡인 ‘Trans Europe Express’의 느긋한 활력을 적절하게 표현해낸 ‘뮤직 필름’이 끝나면서 공연은 후반부로 접어들었다. 녹색 화면 위에 추상적인 도형이 울렁거리다가 인상적인 투시도가 펼쳐지는 일렉트로 넘버 ‘Planet Of Visions’가 분위기를 돋구더니 유체역학을 형상화한 것 같은 아이디어가 돋보인 ‘Aerodynamik’이 바톤을 넘겨받았다. 말 그대로 ‘다이나믹’한 구성과 화면이 인상적이었던 ‘Aerodynamik’을 지나 공연의 마지막을 장식한 것은 밴드의 팬들에게는 무척 익숙할 3단 콤보인 ‘Boing Boom Tschak’-‘Techno Pop’-‘Music Non Stop’ 메들리였다. 화려한 팝 아트 풍의 말풍선이 팡팡 터지는 ‘Boing Boom Tchak’에 이어 입체 설계도처럼 변형된 멤버들의 모습이 등장하는 ‘Techno Pop’이 연주될 때 스크린에는 악상기호들과 음표들이 둥둥 떠 다녔다. 마지막 곡 ‘Music Non Stop’의 통통 튀는 로보틱한 비트가 스피커에서 찰랑거리는 동안 맨 오른쪽부터 멤버들이 하나씩 무대를 떠나기 시작했다. 마지막으로 랄프 휘터가 짤막하고 정중한 인사와 함께 무대에서 내려갔고, 스크린에 뜬 커다란 얼굴이 ‘지켜보고 있다’는 표정으로 객석을 응시하면서 공연이 끝났다. 아쉬움 속에 자리를 뜨는 사람들 틈에 섞여 공연장을 빠져나갈 때 한 커플의 대화가 들렸다. “어땠어?” “또 보고 싶어.”

 

말없이 빠져나간 사람들 모두, 틀림없이 그렇게 생각했을 것이다.



<Set List>

 





Writer. 최민우


 대중음악웹진 WEIV (http://weiv.co.kr) 편집장.

2002년부터 음악 관련 글을 쓰기 시작했다. 현재 여러 온․오프라인 매체에 기고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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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11일, SNS로 전해진 크라프트베르크 내한 소식에 인터넷은 난리였다. 그도 그럴 것이 아무리 크라프트베르크가 전자 음악의 시작이니 전설이니 해도 한국에는 그 이름이 덜 알려진 것이 현실이니 말이다. 꿈도 꾸지 못했던 이 독일 밴드의 내한 소식은 몹시도 반가웠지만, 찻잔 속의 태풍일 수도 있단 냉소적 시선도 버릴 순 없었다. 지금까지 실력 있고 인정받는 외국 뮤지션 내한공연 대부분이 소수의 흥분 속에서 치러진 것도 사실이니까. 그런데 예매가 시작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지인 하나가 흥분해서 연락을 해왔다. 반응을 조금 지켜보다 티켓을 사려 했는데, 순식간에 사라지고 있다는 이야기였다. “아까 봤을 땐 300장이 넘게 남았었는데 지금은 178장 남았어. 안 되겠다. 당장 사야겠어.” 결국, 공연 티켓은 매진되었고 설마 하던 이들은 매일 취소표를 체크해야만 했다. 신기했다. 다들 이렇게나 크라프트베르크를 원하고 있을 줄은 정말 상상도 못 했다.

 

KRAFTWERK at MoMA

 

 

라디오헤드(Radiohead)와 밥 딜런(Bob Dylan)이 내한하는 시대가 왔어도 크라프트베르크의 공연만은 한국에서 볼 수 없을 줄 알았는데, 내한도 모자라 매진 사례까지 벌어지는 일련의 사태가 너무도 신기해 주변인들을 붙잡고 물었다. 도대체 왜 이리도 열광하느냐고. 그런데 의외로 크라프트베르크를 잘 아냐는 질문에 그들은 쉽게 답하지 못했다. ‘아우토반(Autobahn)’ 같은 대표곡들을 알고 있으며, 그들의 영상을 인터넷에서 꽤 찾아보았음에도 말이다. 현실적으로 국내의 음악 팬들에게 크라프트베르크의 활동 시기나 지역은 너무나도 동떨어져 있던 데다, 원체 대단한 전설로 여겨지는 만큼 뭐라 언급하길 어려워했다. 하지만 손꼽아 기다려온 팬이건 그저 전설적 밴드의 희귀한 내한에 호기심을 가졌던 사람이건 입을 모아 이야기하는 것이 있었다. 3D로 보는 공연 영상이었다. 사람들은 크라프트베르크의 이름이 새겨진 3D 종이 안경을 갖고 싶어했고, 또 그 안경으로 실제 공연을 보고 싶어했다.

 

 

 

 

기술마저 따라올 수 없었던, 시대를 앞서나갔던 크라프트베르크

 

지난 40년간 크라프트베르크가 지속해 온 새로운 도전과 결과물, 그러니까 전자 드럼 머신을 만들어 내고 컴퓨터를 음악 작업에 사용하기 시작했단 사실들은 3D 영상으로 연출되는 새로운 공연에까지 자연스레 호기심을 갖게 한다. 게다가 지금도 클링 클랑(Kling Klang) 스튜디오에서 음악뿐만 아니라 영상까지 멤버들이 직접 만들어낼 정도로 비주얼 요소를 중시하는 그들이기에 공연 영상에 대한 기대감은 당연히 증폭될 수밖에. 영상이 음악 공연에 이리도 큰 영향을 미칠까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다양한 자극에 익숙한 요즘 세대가 보는 대부분의 공연에선 영상이 필수적으로 활용되곤 한다. 특히 일렉트로닉 음악은 무대 위에서 멤버가 실제로 보여줄 수 있는 퍼포먼스가 록 밴드의 공연보다 한정적이라 영상에 공을 들이는 경우가 많다. 케미컬 브라더스(Chemical Brothers)는 눈이 돌아갈 정도로 멋진 영상을 거대한 스크린을 통해 보여주고, 다프트 펑크(Daft Punk)의 공연에선 피라미드로 만들어진 프로젝터가 화려한 영상을 쏟아낸다. 팻보이 슬림(Fatboy Slim)은 무대 위의 빛들이 작은 스마일 조각들로 보이는 종이 안경을 관객들에게 나눠주기도 한다.

 

그런데 이 스타 일렉트로닉 밴드들의 선구자인 크라프트베르크는 1981년부터 라이브 공연에 영상을 사용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시대를 한참 앞서나간 그들이 공연에서 원하는 것을 모두 실현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아이러니하게도 테크놀로지의 발전이 그들을 따라오지 못했던 것이다. 하지만 이제 그들이 필요한 장비는 투어마다 훨씬 수월하게 이동할 수 있게 되었고, 영상 기술 역시 발달했다. 리더 랄프 휘터(Ralf Hütter)의 말대로 ‘마침내 장비들이 크라프트베르크의 기준에 도달’ 것이다.

The Mix Booklet Front Cover

 

 

크라프트베르크는 2009년 3D 영상을 공연에 도입하기 시작했고, 2012년 공연부터는 Full HD급의 3D 영상을 구현할 수 있는 장비로 업그레이드했다. 공연장의 사운드 역시 3D가 적용되었다. 기존의 스테레오 시스템이 객석 위치에 따라 들리는 소리에 차이가 생기는 것과 달리 영화에 사용되곤 하는 WFS(Wave Field Synthesis) 시스템을 사용해 관객이 모든 공간에서 선명하고 입체적인 소리를 들을 수 있게 된 것. 그런데 3D 영상을 제외하고는 현란한 영상 장비로 효과를 남발하는 다른 공연들과 비교해 꽤 단순한 연출이란 사실이 눈길을 끈다. 고무 점프수트를 입은 환갑의 멤버들이 네 개의 작은 단 앞에 서서 큰 움직임도 없이 작은 노트북과 아이패드를 만지작대고 있을 뿐이고, 멤버들 뒤로 보이는 대형 스크린 역시 분할되거나 화려한 움직임을 보이지도 않는다.

 

그 대형 스크린에서는 반복되는 가사가 싱크로율을 자랑하며 나타나거나 낯익은 빨간 셔츠와 까만 넥타이의 로봇 멤버들이 등장하고, 흑백 영화가 플레이 되기도 한다. 모든 영상은 크라프트베르크의 음악의 연장선상에 있다. 게다가 단순하지만 강렬한 그래픽으로 대표되는 크라프트베르크만큼 3D 영상에 어울릴 공연이 어디 있을까. 진정 훌륭한 공연 연출이야말로 음악을 가장 중심에 두고 관객에게 잘 전달하는 것인데 무분별한 기술의 남발보다 꼭 필요한 정수만을 적절히 활용하는 것이 미니멀리즘을 추구해온 크라프트베르크의 음악과 잘 어우러진다. 뭐든 미니멀해질수록 완벽을 추구하기가 어렵기 마련인데 이렇게 추구하는 바를 훌륭히 구현해낸 크라프트베르크의 공연은 콘서트라기보단 하나의 예술 작품으로 여겨질 정도.

 

 

Live in 3D at Munich

 

 

순식간에 매진되었던 MoMA와 Tate Modern의 공연

 

뉴욕 현대미술관(Museum of Modern Art, 이하 MoMA)은 누구보다 이를 잘 알고 있었던 것 같다. 2012년 4월, MoMA는 크라프트베르크의 여덟 개 앨범을 매일 하나씩 공연하는 Retrospective 1 2 3 4 5 6 7 8 공연을 기획했다. MoMA에서 최초로 열리는 음악 공연이었다. 매일 450명만이 볼 수 있었던 이 공연은 한 사람당 구매할 수 있는 티켓을 두 장으로 제한했음에도 순식간에 매진되었고, 2만 원 상당의 티켓이 열 배가 넘는 가격으로 거래될 정도로 폭발적 반응이었다. 뉴욕에서의 대성공은 런던의 현대미술관 테이트 모던(Tate Modern) 공연으로 이어졌다. 2013년 2월, The Catalogue 1 2 3 4 5 6 7 8 라 이름 붙여진 런던 공연은 십만 원이 훌쩍 넘는 비싼 가격에도 순식간에 매진되어 뉴욕의 아성을 이었다. MOMA 공연에선 류이치 사카모토(Ryuichi Sakamoto), R.E.M.의 마이클 스타이프(Michael Stipe), 오노 요코(Ono Yoko) 등이 목격되었고, 테이트 모던에는 펄프(Pulp)의 자비스 코커(Jarvis Cocker), 그리고 재미있게도 우주를 연구하는 스타 과학자 브라이언 콕스(Brian Cox) 교수가 공연을 보러 왔다고 한다.

     

 

KRAFTWERK at MoMA

 

 

KRAFTWERK at Tate Modern

 

 

Kraftwerk at Tate Modern Video 

 

 

젊은이들이 클럽에서 즐기는 음악이란 오해를 종종 받아온 일렉트로닉 음악은 사실 댄스 음악뿐만 아니라 듣기 편한 칠 아웃(chill out) 같은 장르나 음침해서 춤추기엔 난감한 위치 하우스(Witch house) 같은 장르까지 포용하는 실로 거대한 음악 장르다. 그리고 이 장르의 선두에 섰던 크라프트베르크의 음악은 생각보다 그리 난해하거나 낯설지 않다. 반복되는 비트는 심장박동과 비슷하고, 어떤 멜로디는 쉽게 흥얼댈 수 있을 정도다. 어쩌면 춤보단 감상에 더 어울리는 편인데, 탄성을 자아내는 3D 영상까지 더해진 공연에선 잡담할 마음조차 안 생길 정도로 집중하게 된단다. 무엇보다 40년 넘게 찬사를 받아온 크라프트베르크의 대표곡들을 크고 선명한 최고의 사운드로 들을 수 있는 라이브라니 지금까지 유튜브나 음반을 통해 보고 듣던 것과는 완전히 다른 경험이 될 것이 틀림없다.

 

참고로 최근 중국은 크라프트베르크가 15년 전 미국에서 티베트 독립 공연에 나가려고 했단 이유로 공연 비자 발급을 거부했다고 한다. 아쉬워하고 있을 중국의 팬들을 생각하니 문득 한국은 꽤 살만한 나라란 생각이 든다. 크라프트베르크가 내한할 뿐만 아니라 H.O.T. 오빠들 덕분에 이 전설적 밴드의 이름조차 모르던 시절부터 그들의 음악을 좋아할 수 있었으니 말이다. 무슨 소리냐고? 이번 서울 공연에서 ‘Tour de France '83’가 나오면 알게 될 것이다. 90년대에 H.O.T. 음악 좀 들었던 신세대라면 절로 장우혁의 춤을 추게 될지도.

 

 


 

Writer. 맹선호

 

인디 음악 매거진 엘리펀트슈 디렉터. 이제는 절판된 전설 속 페스티벌 원정기 페스티벌 제너레이션 저자.

어쩌다 보니 이렇게 글을 쓰며 살고 있지만, 아직도 공연기획에 몸담았던 기간이 글을 쓴 기간보다 오래인 글 쓰는 대중음악 공연인.

 

 

 

 

 

[전문가 칼럼] KRAFTWERK의 ‘보이는 사운드(Seeing Sound)’

[전문가 칼럼] 그래픽으로도 노래하는 KRAFTWERK

[전문가 칼럼] 독특한 그들만의 컨셉, 크라프트베르크의 운송 시리즈 3부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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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RAFTWERK


나의 직업은 사운드(Sound)를 비쥬얼(Visual)로 만드는 일이며 브이제이(Visual Jockey)라고도 한다. 음악이 몸과 내면의 경험과 연결되어 있다면, 영상은 이 부분을 연결하는 시각적 연결고리를 가지고 있다. 사운드가 청각과 육체의 울림으로 느낄 수 있는 체험이라면, 비쥬얼은 시각적인 체험이기 때문에 서로 다른 선상에 놓여 있는 것 처럼 보이지만 청각과 시각이 합쳐지는 부분에 크라프트베르크의 지난 40여년간의 활동이 녹아있다.

 

크라프트베르크의 등장이 비틀즈나 비치보이스 류의 밴드들과 확연하게 차별을 두는 것은 ‘보이는 사운드’이기 때문인데, 1960년대 유럽에서 유행하던 미국의 히피문화나 영국의 음악과 전혀 다른 루트가 펼쳐진 이유는 독일의 미래파(Futurism)들 때문이다. 거의 모든 나라들이 미국과 영국의 락앤롤에 심취했었지만 크라프트베르크의 고향인 뒤셀도르프에는 요셉보이스와 백남준으로 대표되는 전위예술단체인 ‘플럭서스’ 그룹이 있었다. 발전된 미래도시와 기계미학에 심취해 있는 독일인의 DNA는 예술과 기계에 대한 끊임없는 문제제기와 실험을 시도했으며, 콘나드 쉬니츨러(Conrad Schnitzler)같은 일렉트로닉 음악의 선구자가 등장했다. 그들은 멜로디 위주의 음악이 아닌 기계의 소리, 노이즈에 심취하며 새로운 사운드와 나아갈 길을 제시한다.


 

로봇들의 레트로 퓨쳐리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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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의 링크를 보면 낯설은 전자악기들을 들고 전자계산기의 버튼을 누르듯 연주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전자계산기나 컴퓨터는 고유의 버튼이 있고 버튼마다 기호와 소리가 함께 동작된다. 공연현장에서 비디오의 전자신호를 제어하는 기술은 이것과 흡사하다. 이렇게 되면 사운드와 영상을 하나의 기계로 동시에 연주할 수 있게 되며, 비쥬얼이 연주되는 특이한 상황이 연출된다. 그들은 이미 오래전부터 이런 기술을 감지하고 있었다. 실로 놀라운 부분이 아닐 수 없다. 사운드의 움직임에 반응하는 파장이나 데이터들이 그래프나 컬러, 숫자 등으로 만들어지는데 이 부분은 크라프트베르크의 새로운 비쥬얼 컨셉들이 되기도 한다.

 

크라프트베르크는 기계와 인간의 움직임을 사운드로 표현하는데 많은 관심을 가졌고 그들의 첫 앨범부터 최근의 앨범까지 보면 Autobahn, Radio Activity, Trans Europe Express, Man Machine, Computer World, Tour De France까지 기계와 인간의 운동성과 사운드를 시각적으로 표현해 왔다. 공연에서 사용되는 악기들은 대부분 무대 뒤에 세팅이 되어 있으며, 신시사이저와 컨트롤러들만 멤버들 앞에 설치되어 있다. 정지 화면 같은 그들의 무대에 엄청난 에너지를 불어 넣는 것은 영상이다. 음악가들이 악보를 쓰는 것처럼 ‘The Robots’을 영상으로 만든다고 가정하고 만든 영상악보를 만들어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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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ROBOTS

 

KRAFTWERK의 THE ROBOTS의 무대, 조명과 실루엣을 이용한 흑백 INTRO 화면이 40초간 이어진다. 그리고 마치 뮤지컬의 시작을 알리듯 커튼이 열리면서 조명이 밝아지고 실루엣의 주인공들, 크라프트베르크 멤버들의 모습을 본딴 Robot 4개가 등장한다. 화면을 채우는 레드 색상이 강렬하게 관객들의 시선을 빨아들이며 화면의 중심에는 컴퓨터 시스템폰트로 제작된 We charsing our(붉은색) BATTERY(흰색, BATTERY가  붉은색 ‘바’가 움직이면서 BATTERY를 강조, BATTERY 8번 깜빡거림)and now We’re full of(붉은색) Energie라는 메시지가 반복적으로 노출되며 로봇의 메시지를 관객들에게 전하는 광경이 흥미롭다. Bbm We are the(붉은색) Robots(흰색 점선으로 그려진 로봇 4개가 등장하며 리듬에 맞춰 춤을 추기 시작) 화면에는 실제 로봇들이 등장하고, 멤버들의 얼굴을 로봇들의 클로즈업 샷으로 이어진다. 실제 무대위의 로봇 4개의 군무와 화면에 등장하는 흰 색 선으로 만들어진 로봇의 군무를 비교해보는 것도 하나의 감상 포인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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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UTOBAHN

 

독특한 인트로, 시동소리에 맞춰 폭스바겐이 화면 뒤로 달려간다. 화면은 폭스바겐의 달리는 옆모습을 보여주다가 그리고 뒷모습을 끝으로 사라진다. '아우토반'이라는 가사대로 아우토반 로고가 서서히 커지면서 등장, 무대는 로고의 배경색인 푸른색, 멤버들은 검정색 실루엣으로만 보인다.  Wir fahr'n fahr'n fahr'n auf der Autobahn 파란색 배경과 Autobahn 앨범자켓의 일러스트만 무대의 중앙에 배치되다가, Vor uns liegt ein weites Tal / Die Sonne scheint mit Glitzerstrahl 일러스트가 무대전체로 확대되며, 아우토반이 내려다 보이는 풍경화가 나오면서 아름답고 서정적인 고속도로 풍경으로 전환된다. 흑백화면으로 전환되면서 아우토반을 달리는 흑백 다큐멘터리 영상이 점차 컬러 화면으로 변화하며 문명의 발달을 드러낸다. 자동차와 도로, 문화가 만나는 지점을 영상으로 효과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폰트의 크기, 컬러의 선택 만으로도 그들은 음악의 비트를 만들어 낸다. 그렇다면 폰트와 이미지에 컬러를 입힌 후 움직이고, 회전시킨다면 사운드의 구체적인 현실을 보게 되는 것이다. 위의 내용들을 사운드컬러(Sound Color), 물리음악 등으로 전문가들은 이야기한다.

 

 

Tour De France

 


크라프트베르크와 3D 영상

 

TV는 그리스어로 ‘멀리 보다’라는 뜻이다. 크라프트베르크의 라이브 무대가 3D로 구현된다면 TV의 사전적 의미가 더욱 완벽해진다. 헐리웃의 대자본 영화들을 보면서 우리는 이미 3D에 익숙해졌다. 3D 텔레비젼이 대중화되었지만 3D 라이브 공연을 본 적은 많지 않았을 것이다. 크라프트베르크가 뉴욕 모마와 런던 테이트 모던의 터빈 홀에서 공연할 수 있었던 이유도 여기에 있다. 현란한 영상보다는 간결하고 철학적인 이미지인 그들의 그래픽들이 3D로 만들어지는 라이브 완결 편을 우리는 모두 기다려 왔기 때문이다.

 

사운드가 나의 몸으로 들어오는 시각적 경험을 하게 되는 이 공연이 크라프트베르크라는 점, 믿어 의심할 여지가 없다. 그들은 활동해온 40여년간 레퍼런스나 모델로 생각했던 팀이 없으며, 앨범 제작 시간을 염두해 둔 적도 없다고 한다. 대부분의 밴드들이 비틀즈를 보고 음악을 시작했다면, 유명해지거나 정상에 선 밴드들은 크라프트베르크를 종착역으로 생각한다. 이제 우리는 밴드들의 종착역으로 초대되는 익스프레스에 오르는 일만 남았다.

 

 


 

Writer. 박훈규

 

aka PARPUNK
VJ, Graphic Designer
VIEWZIC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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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저 싱글들을 모아 앨범을 내던 시대를 지나 일관된 지향을 갖고 음악세계를 창조하려는 앨범아티스트(Album Artist)가 출현하면서 앨범 커버아트(Album Cover-art)도 새로운 의미를 지니게 되었다. 형태가 없는 소리 덩어리를 눈과 손으로 느낄 수 있도록 만드는 작업을 통하여 음악인의 요구와 듣는 이의 기대에 부응하고, 커버아트 자체로도 색다른 미적 취향을 만족시킬 수 있었다. 음악만큼이나 앨범 커버아트가 무시할 수 없을 정도로 발언권을 행사한 예도 적지 않다. 도어스(The Doors)의 Strange Days(1967)는 조엘 브로드스키(Joel Brodsky)의 커버 사진과 함께 기억되며, 앤디 워홀(Andy Warhol)의 바나나는 벨벳 언더그라운드(The Velvet Underground)의 Velvet Underground & Nico(1967)에 대한 망각의 가능성마저 지워버렸다.

 


음악, 미술, 영상, 공연이 하나가 됨을 일찍 깨우쳤던 크라프트베르크

 

크라프트베르크는 바나나 대신 컴퓨터와 라디오 그리고 마네킹을 선택했다. 대중성 있는 실험 혹은 실험적인 대중음악을 구현하며 전자음악의 세계에 굵은 획은 그어놓은 크라프트베르크가 앨범 커버아트를 대수롭지 않게 만들었을 리 없다. 1970년대에 자신들의 스튜디오 클링클랑에서 이런저런 궁리를 하면서 멀티미디어아트를 떠올린 크라프트베르크는 보고 듣고 만지고 느끼는, 즉 음악과 미술과 영상과 공연이 하나가 되는 장면을 일찌감치 생각해냈다. 앨범 커버아트 역시 중요한 표현수단들 중 하나였다. 실제로 이들의 앨범 커버아트는 공연 콘셉트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그래서 크라프트베르크의 음반을 많이 가지고 있는 사람일수록 무대 위의 영상에 더 강하게, 그리고 반갑게 반응할 수 있다.

 

 

Techno Pop Booklet

 

 

중공업 도시에서 조립되어 전자음악을 생산한 크라프트베르크가, 굳이 The Man-Machine(1978)과 Computer World(1981)를 펼쳐 보지 않더라도, 현대 기술문명과 산업사회를 음악으로 표현하면서 시각적으로도 그려내려 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네 명의 멤버들을 대량복제가 가능한 마네킹이라든가 획일화된 유니폼을 입혀놓고 강조해놓은 아트워크에서 누군가는 전체주의 국가의 제복을 떠올릴지도 모른다. 좀 더 나아가면 이러한 비주얼은 엉뚱하게도 독일의 인더스트리얼 헤비메탈 밴드인 람슈타인(Rammstein)에게 활용되었을 때엔 공격적인 느낌을 주면서 전혀 다른 효과를 일으킨다. 크라프트베르크의 출세작인 Autobahn(1974)이 노래한 아우토반, 즉 유럽 최초의 고속도로를 건설한 자 역시 공교롭게도 아돌프 히틀러이다.



그래픽 디자이너이자 구성주의 예술가인 엘 리시츠키에게 영향을 받다


물론 유럽 68혁명의 세례를 받은 크라프트베르크에게 그러한 신호들은 전혀 다른 의미를 가지고 있다. 특히 전자음악의 특징이자 앨범 아트워크를 채우곤 하는 ‘복제’는 현대산업문명과 떼어놓을 수 없다. 사실 그들의 앨범 아트워크에 등장하는 단순한 도형과 붉은 색 그리고 타이포그래피는 혁명시대의 포스터와도 무관하지 않다. The Man Machine에 노골적으로 영향을 드러낸 사람이 사회주의자였기 때문이다. 러시아 출신의 그래픽 디자이너이자 구성주의 예술가인 엘 리시츠키(El Lissitzky, 1890~1941)이다. 독일에서 건축학을 공부하고 러시아로 돌아가 기하학적 추상화를 추구한 엘 리시츠키는 ‘예술≒노동’의 공식을 증명하기 위하여 기계적이고 대량복제가 가능한 이미지를 활용했다. 혁명옹호자였던 그는 예술을 차원 높은 무엇이 아니라 노동과 생산 활동으로 만들고자 했다. 그를 평하는 ‘예술의 사회적 역할 확장’이란 말의 진짜 의미는 이것이다. 엘 리시츠키가 기술을 동원하여 그래픽 디자인을 자신의 이상을 표현하기 위하여 활용했다면, 크라프트베르크는 더욱 발전한 기술을 동원하여 그래픽 디자인을 전자음악과 현대문명을 표현하는 데에 활용했다. 엘 리시츠키도 주목한 사진은 20세기 후반에 앨범 커버아트에 큰 영향을 끼쳤는데, 크라프트베르크는 사진에서 더 나아가 3D 컴퓨터 그래픽을 십분 활용했다. 그리고 레베카 알렌(Rebecca Allen) 등의 디자이너들에게서 Techno Pop과 Electric Cafe(1986)에 그어진 3차원의 선들을 선물로 받아냈다.

  

 

 

KRAFTWERK album artwork


음악 장르들마다 다른 앨범 커버아트 스타일을 갖고 있다. 마찬가지로 크라프트베르크의 기하학적이고 타이포그래피를 배치하는 앨범 커버아트는 전자음악의 전범이 되었다. 그들의 음악처럼 어렵지 않고 누구나 쉽게 기억할 수 있었다. Autobahn은 푸른 색 배경에 흰 색으로 그려진 고속도로를 매우 단순한 도형으로 표현했고, Trans-Europe Express에선 검은 색 배경에 흰 색으로 고속열차를 새겨놓았다. 단조롭지만 강한 색상과 단순하지만 속도감 있는 심볼들로 이루어져 있다. 몇 가지 색만을 사용하는 선전물 같은 효과는 검은 색과 붉은 색이 대조를 이루는 The Man Machine처럼 크라프트베르크가 애용하는 수법이었다.


 


음악과 기술 그리고 미술이 상봉하는 장을 만들어냈던 크라프트베르크

 

 

20세기 후반부터 헤아리기 힘들 정도로 많은 음악 장르와 복합적인 스타일이 공존하며 교차하고 있다. 분화와 역사의 축적, 산업의 발달은 커버아트 전문작가, 심지어 특정 장르의 커버아트만을 작업하는 장르 전문작가를 출현시켰다(애석하게도 장르음악의 토대가 약하고 외국보다 훨씬 빠른 속도로 음반시장이 축소된 한국에선 제대로 꽃을 피우기도 전에 한파를 맞은 셈이다). 그래서 크라프트베르크의 디자인을 말할 때엔 죽은 사람만이 아니라 산 사람, 그러니까 현재 활동하는 아티스트를 호명하는 편이 더 의미 있을 수도 있다. 물론 수백 년 전에 죽었는데도 앨범 커버아트로 애용되는 작품을 남겨놓은 히에로니무스 보슈(Hieronymus Bosch)와 피테르 브뢰헬(Pieter Bruegel)도 있긴 하지만.


KRAFTWERK



조금 망설이는 척 하다가 대표로 한 사람을 언급해보려 한다. Autobahn부터 The Man Machine과 Minimum Maximum(2005) 등에 이르기까지 앨범 커버아트의 레이아웃과 디자인을 맡은 요한 잠브리스키(Johann Zambryski)가 선택받은 주인공이다. 1970년대부터 크라프트베르크와 함께 했을 뿐만 아니라 이니그마(Enigma)의 앨범 커버아트 작업들로도 유명한 그는 Computer World에서 네 남자의 얼굴을 컴퓨터 모니터 안에 옹기종기 집어넣고, Tour de France Soundtracks(2003)에선 그들에게 사이클을 태워주기도 했다. 재미있게도 Tour de France Soundtracks는 실제로 사이클 대회인 ‘투르 드 프랑스’의 의뢰를 받은 앨범이었는데, 크라프트베르크의 랄프 휘터는 사이클 마니아로도 알려져 있고, 이 앨범 커버아트는 우표에서 힌트를 얻은 것이다.

앨범 커버아트는 음악과 만나며 때로 욕망을 대변했고, 간혹 착시를 일으켰으며, 종종 증발했다. 그러나 크라프트베르크의 아트워크들은, 굳이 높게 평가하려고 애쓸 필요까진 없지만, 팬들에게 기억되고 밴드 자신에 의하여 무대로 계속 불려나오고 있다. 무엇보다 커버아트가 감싸고 있는 음악 자체가 근사했다. 그래서 크라프트베르크의 ‘Robot Pop’에 다프트 펑크가 ‘Robot Rock’으로 화답한 것처럼 후대에도 3차원의 연결선이 끊어지지 않았다. 엘 리시츠키처럼 예술과 기술의 접목을 꿈꾼 크라프트베르크는 음악과 기술 그리고 미술이 상봉하는 장을 만들어냈다. 물론 그 모두의 합은, 라이브 공연이다.

 

 


 

Writer. 나도원

 

잠을 좋아하지만 잠잘 시간이 부족한 음악평론가.

한국대중음악상 선정위원 및 장르분과장.

평론 활동 외에도 페스티벌 기획과 예술인 운동을 해왔고, 음악과 관계 맺은 미술과 영화에 대한 글도 함께 쓴다.

<결국, 음악>, <시공간을 출렁이는 목소리, 노래> 등의 책을 펴냈다.

 

 

 


[전문가 칼럼] 독특한 그들만의 컨셉, 크라프트베르크의 운송 시리즈 3부작

[전문가 칼럼] 크라프크베르크를 전세계에 알린 대표 앨범들

[전문가 칼럼] 크라프트베르크, 성공의 아우토반을 질주하기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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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RAFTWERK

 


3부작으로 기획된 ‘운송수단 시리즈’는 크라프트베르크의 음악적/상업적 전성기를 대표한다는 점에서 상징적이다. 각각 Autobahn, Trans Europe Express, Tour De France를 음악적으로 형상화하며 전자 음악의 어떤 이상향을 제시했다는 평가를 일궈냈다. 이번 내한공연에서 이 세 장의 음반 수록 곡들 중 상당수가 셋 리스트에 포함될 거라고 확신할 수 있는 이유다. 공부는 복습만 해도 충분하지만, 공연은 예습이 필수다. 철저하게 체크해서 다들 환호하는데 혼자만 멍 때리고 있지 말도록 하자.

 



독일 산업사회를 나타내는 이미지와 음악을 완벽히 조화시키다


Autobahn (1974)
보통 크라프트베르크의 최고 작으로 평가 받는 앨범이다. 독일 산업사회를 나타내는 이미지와 음악을 완벽히 조화시킨 작품으로 영국과 미국에서 큰 성공을 거뒀다. 데뷔작부터 그들의 음악에 참여한 코니 플랑크(Conny plank)가 프로듀서를 맡았고 (후일 울트라복스(Ultravox), 유리드믹스(Eurythmics)와 함께 작업을 해서 더욱 유명해졌다.), 사운드의 보강을 위해 클라우스 로더(Klaus Roeder, 기타, 바이올린)와 볼프강 플러(Wolfgang Flur, 퍼커션)를 영입, 디지털과 아날로그의 조화도 꾀했다. 4인조로 제작한 첫 번째 작품이기도 하다. 빌보드 차트에서는 25위, 영국에서는 11위에 올랐다.

하이라이트는 당연히 22분이 넘는 대곡 ‘Autobahn’에 위치한다. 크라프트베르크는 이 곡에서 아우토반을 달리는 자동차의 경적과 굉음, 작동중인 엔진 소리를 집어넣음으로써 초기와 비교해 훨씬 역동적인 사운드를 구현해냈다. 실제로도 크라프트베르크는 차를 몰고 아우토반을 질주하는 느낌을 구현하기 위해 당시로서는 최첨단의 장비들을 대거 투입, 원하는 사운드스케이프가 나올 때까지 끊임없이 작업을 반복했다고 한다. 음반 커버도 마찬가지다. 아우토반을 달리는 자동차와 그 뒤로 떠오르는 태양을 앨범커버로 사용해 전후 독일 사회를 음악적으로, 이미지적으로 묘파하는데 성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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밴드 이름 그대로 크라프트베르크가 전자 음악계의 ‘파워 스테이션’으로 자리매김하는데 가장 큰 공헌을 한 작품. ‘Autobahn’ 외에 ‘Kometenmelodie 1&2’ 연작도 주목 받았는데, 이 두 곡은 ‘Comet Kohoutek’, 그러니까 ‘코후테크 행성’으로부터 영감을 받아 작곡한 것이라고 한다.

 


유럽을 횡단하는 열차를 시각화한 듯한 밀도 있는 사운드

 

 

Trans-Europe Express at Tate Mordern

 

 
Trans-Europe Express (1977)

Autobahn에 이은 ‘운송수단 시리즈’ 두 번째 작품이다. ‘Trans-Europe Express’는 유럽의 국가들을 연결하는 유럽 국제 특급열차를 지칭한다. 과거 대학생 시절, “내가 태어난 해에 발표된 모든 걸작을 다 들어보겠다.”는 집념에 불탔던 적이 있었다. 그렇다. 나는 동안이지만, 1977년생이다. 어쨌든, 이 앨범을 듣고 한동안 얼이 쏙 빠졌던 기억이 생생하다. 유럽을 횡단하는 열차를 시각화한 듯한 밀도 있는 사운드가 이전까지 경험해보지 않은 ‘청각적 체험’을 내게 안겨줬던 까닭이다.

이 앨범은 Autobahn과 비교해 훨씬 ‘메이저적’이고 ‘팝적’이라는 특징을 지니고 있다. 한마디로 크라프트베르크가 활동 초기에 선보였던 ‘크라우트록’과 음악적으로 거리가 있는 스타일이라고 보면 된다. 자연스레 더욱 ‘선명한’ 멜로디를 만날 수 있는 이 음반의 수록 곡들은 9분이 넘는 ‘Europe Endless’를 제외하면, 상당히 짧은 러닝 타임을 지니고 있다. 그래서였을까. 상업적으로 성공을 맛봤고, 무엇보다 위대한 아티스트들이 크라프트베르크를 우러러보게 되는 결정적 전기를 마련해줬다.

그 중에서도 데이비드 보위(David Bowie)가 그들의 음악에 반해 함께 작업하자고 제안했지만, 쉬크한 크라프트베르크 형님들이 단칼에 거절했다는 일화는 유명하다. 이 시기, 그들의 영향력은 어마어마해져 바다 건너 미국에서도 그들을 추종하는 팬들이 급속도로 증가했다고 한다. 음악 전문지 ‘큐(Q)’가 이 앨범을 평하며 “미국 댄스 음악의 표정을 바꿔버렸다”고 정리한 가장 큰 이유다. 

 

 

‘기술과 예술’ 결합의 선구자 크라프트베르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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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our de France (1983)

‘Tour de France’는 앨범이 아닌 ‘곡’이다. 주지하다시피, ‘Tour De France’란 매년 7월에 개최하는 프랑스 일주 싸이클 대회인데, 사이클광인 랄프 휘터가 이 프로젝트를 주도적으로 기획했다고 한다. 과거 랄프 휘터는 어떤 인터뷰에서 “나는 우리의 음악이 감정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테크놀로지와 감정은 함께 할 수 있다.”는 언급을 남겼던 바 있다. 크라프트베르크의 음악 전체가 이에 부합하지만, 그 중에서도 가장 정확한 사례를 꼽으라면 바로 이 곡이 아닐까. 실제로 이 싱글을 공개하기 이전의 작품들, 예를 들면 The Man-Machine(1978), Computer World(1981)의 디지털리즘적인 세계관과 비교해 ‘Tour de France’에는 확실히 인간적인 온기가 넘친다. 아마도 자전거 체인 소리와 기어 메카니즘, 싸이클리스트의 거친 숨소리 같은 아날로그적 효과음들을 적극적으로 활용한 덕분일 것이다.

  

 

at. MoMA, 2012

 

 

사실, 2013년의 시점에서 크라프트베르크의 음악을 들어보면, 생각과는 달리 파격, 충격 같은 단어들이 쉬이 떠오르지 않을 것이다. 이런 이유로, 위 삼부작이 발표된 해가 각각 1974년, 77년, 83년이라는 점을 명심하고 음악을 감상해야 한다. 가장 가까운 ‘Tour de France’만 해도 현재로부터 무려 30년 전의 음악인 것이다. 지금이야 지천에 널린 게 일렉트로닉 음악이지만, 당시로서는 생소한 ‘문명의 이기’ 신시사이저를 크라프트베르크만큼 자유자재로 운용할 줄 아는 밴드는 없었다. DJ 배철수씨가 당시 그들의 음악을 듣고 “큰 충격을 받았다”고 고백하는 결정적인 이유이기도 하다.

때로 우리는 음악에 있어 ‘기술’의 중요성을 간과하고는 한다. 크라프트베르크가 등장하기 훨씬 전에 철학자 발터 벤야민은 다음과 같이 강조했던 바 있다. “예술에 있어서의 혁신은 내용도 아니고 형식도 아니고, 기술에서 나온다.” 즉, 크라프트베르크는 전자 음악을 통해 이걸 선구적으로 증명한 밴드였던 것이다. 지금과 같은 통섭의 시대에 ‘기술과 예술’의 결합은 일종의 상식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이번 크라프트베르크의 내한 공연에서 우리는 바로 이 점을 환상적인 무대 연출과 함께 목도하게 될 것이다.

 

 


 

Writer. 배순탁

 

배철수의 음악캠프 작가.

음악이라는 느낌의 층위에서 당신과 나는 대체로 타자다.

그러나 아주 가끔씩, 하나의 공동체가 되는 짧지만 강렬한 순간들도 있다. 그 순간을 오늘도 기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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