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퍼콘서트 20 폴 매카트니/아티스트 정보' (5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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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레논(John Lennon, 1940-1980)

비틀즈 멤버, 보컬, 기타리스트1957년, 친구 아이반 본(Ivan Vaughan)의 소개로 폴 매카트니를 만나 음악적, 정신적 교류를 나누며 작사, 작곡 콤비를 이루었다. 그들은 함께 많은 비틀즈 명곡을 탄생시켰지만 비틀즈 말기에는 사이가 틀어졌다. 1980년 존 레논은 그의 팬 마크 채프먼(Mark Chapman)에게 총살을 당해 세상을 떠났는데 폴 매카트니는 그의 솔로 3집 앨범 [Tug Of War]에 존 레논의 추모곡 ‘Here Today’를 싣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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링고 스타(Ringo Starr, 1940-)

비틀즈 멤버, 드러머비틀즈의 원년 멤버인 피트 베스트(Pete Best)를 대신해 1962년 합류했다. 비틀즈 활동 기간 동안 연기 활동을 병행하기도 했다. 폴 매카트니와 마찬가지로 세상을 떠난 존 레논과 조지 해리슨의 빈자리를 채우며 우리 곁에서 활발한 음악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2014년 그래미 어워즈(GRAMMY AWARDS)에서 폴 매카트니와 합동 공연을 펼쳐 감동을 선사하기도 했다. 2013년 알려지지 않은 비틀즈 사진을 담은 사진집 발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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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지 해리슨(George Harrison, 1943-2001)

비틀즈 멤버, 리드 기타리스트폴 매카트니와 어린 시절 하굣길 버스 안에서 알게 되어 친구가 되었다. '음악'이라는 공통 관심사로 인해 급격히 가까워졌고 폴 매카트니의 권유로 존 레논의 스키플 밴드 '쿼리맨(The Quarrymen)에 들어가기 위해 존 앞에서 오디션을 보았다. 존 레논은 조지가 나이가 어리다는 이유로 자신의 밴드 멤버가 되는 것에 반대했지만 끈질긴 조지의 설득 끝에 한 달 후 멤버가 되었다. 비틀즈 초기, 폴과 존 콤비에 가려져 그의 작곡실력은 그다지 주목 받지 못했으나 비틀즈 후기 'Something', 'Here Comes Sun' 등의 명곡을 발표하며 자신의 진가를 드러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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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OU(현대카드 슈퍼콘서트 20)

단 한번의 기회,2015년 PAUL McCARTNEY 현대카드 슈퍼콘서트 20에서 폴 매카트니를 만나게 될 당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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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텔라 매카트니(Stella McCartney, 1971-)

폴 매카트니의 딸, 패션 디자이너폴 매카트니와 린다 매카트니와 뜻을 같이하는 동물보호운동가로, 그녀의 패션 디자인은 모피와 가죽을 사용하지 않는 것으로 유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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린다 매카트니(Linda McCartney, 1941-1988)

폴 매카트니의 첫 번째 아내, 사진 작가, 뮤지션1969년 폴 매카트니와 결혼했다. 폴 매카트니와 함께 결성한 밴드 윙스(Wings)에서 보컬과 키보드를 담당했다. 폴 매카트니와 함께 동물인권운동가로 활발한 사회운동을 펼치는 등 모범적인 부부의 모습을 보여줬다. 1998년 유방암으로 사망했다. 1973년 발매된 윙스 앨범 [Red Rose Speedway]의 수록곡 ‘My Love’는 폴 매카트니가 린다를 위해 만든 곡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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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사(Martha, 1966-1981)

폴 매카트니의 애완견1966년 태어난 마사는 폴 매카트니의 첫 번째 애완견이다. 비틀즈의 [The Beatles(The White Album)]에 수록된 폴 매카트니의 곡, ‘Martha My Dear’의 주인공이기도 하다.
폴 매카트니는 “한 사람의 인성은 그 사람이 동물을 어떻게 대하는가를 보면 판단할 수 있다(You can judge a man’s true character by the way he treats his fellow animals)”는 말을 하는 등 동물권리보호운동을 활발하게 펼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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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노 요코(小野 洋子, 1933-)

존 레논의 두 번째 아내, 아티스트존 레논의 두 번째 아내로 존 레논 보다 연상이다. 일본을 대표하는 아티스트로 존 레논에게 예술적 영감을 주는 상대였다. 비틀즈 해체의 원인으로 오노 요코의 지나친 간섭이라고 알려져 있지만, 폴 매카트니는 때가 되어 자연스럽게 해체한 것이라고 한 인터뷰에서 직접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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맷 그로닝(Matt Groening, 1954-)

비틀즈 팬, 만화가1989년부터 지금까지 방영되는 미국 애니메이션 심슨 가족(The Simpsons)의 원작자로 비틀즈 마니아로 알려져있다. 심슨 가족은 특히 유명인들이 목소리 출연을 하는 것으로 유명한데, 1980년에 사망한 존 레논을 제외한 비틀즈 멤버들 역시 목소리 출연을 했다. 폴 매카트니는 아내 린다 매카트니(Linda McCARTNEY)와 함께 ‘Lisa The Vegitarian’이라는 에피소드에 등장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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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티비 원더(Stevie Wonder, 1950-)

싱어송라이터폴 매카트니의 솔로앨범 [Tug Of War](프로듀서: 조지 마틴, George Martin)의 수록곡 ‘Ebony and Ivory’를 듀엣으로 함께 불렀다. 이 곡은 영미 모두 싱글차트 1위를 기록하며 세계적인 인기를 얻었다.
특히 스티비 원더는 2010년 현대카드 슈퍼콘서트 11의 주인공으로 수많은 국내 팬들에게 감동적인 무대를 선보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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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J KIM(김명중, 1972-)

폴 매카트니 전담 사진작가한국인 사진작가 김명중씨는 2008년부터 폴의 공연과 행사를 따라다니며 일거수 일투족을 사진으로 남긴다. 2011년 거슈인 어워드를 수상해 백악관 웨스트윙에서 진행한 공연, 2012년 런던 올림픽과 영국 여왕 다이아몬드 주빌리(즉위 60주년) 행사도 등을 촬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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릴리 콜(Lily Cole, 1988-)

영국 출신의 모델 및 배우폴 매카트니의 딸이자 디자이너로 활동 중인 스텔라 매카트니와 모델과 디자이너의 사이를 넘어 개인적인 친분이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폴 매카트니와는 2013년에 발매한 [New]의 수록곡 ‘Queenie Eye’ 뮤직비디오에 출연하기도 했으며, 최근에는 릴리 콜이 만든 소셜 네트워크 Impossible 런던 본사에서 팬들과의 만남을 진행했다. 올해 발표한 컴퓨터 게임 음악 'Hope For The Futrue'에 관련된 이야기를 비롯해 게임음악 작곡에 대한 주제와 첫 작곡에 대한 일화, 작곡에 대한 질문응답, 작곡에 필요한 팁 등을 릴리 콜의 임파서블 홈페이지를 통해 선정된 뮤지션들과 토론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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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클 잭슨(Michael Jackson, 1958-2009)

뮤지션팝의 황제라 불리는 마이클 잭슨은 폴 매카트니의 정규 5집 앨범 [Pipes Of Peace](프로듀서: 조지 마틴, George Martin)의 수록곡 ‘Say, Say, Say’를 폴 매카트니와 듀엣으로 불렀다.
이 곡은 전세계적으로 인기를 끌며 영국 싱글차트에서 8위, 미국 싱글차트에서 2위를 기록했다. 그리고 마이클 잭슨의 [Thriller]앨범에 수록된 ‘The Girl is Mine’ 역시 폴 매카트니와의 듀엣곡으로 영미 차트에서 상위권을 기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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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엘 갤러거(Noel Gallagher, 1967-)

영국 뮤지션1994년에 데뷔하여 지금은 해체한 영국 록 밴드 오아시스의 작곡가이자 리드 기타리스트, 보컬로 데뷔 당시 제 2의 비틀즈라는 평가를 받았다. 평소 비틀즈, 그 중에서도 폴 매카트니의 팬으로 유명한 그는 비틀즈의 곡을 즐겨 오마주했다. 비틀즈의 With a Little Help from My Friend의 맨 마지막 코러스 부분을 본인의 곡 She's Electric에 이용하거나 A Day in the Life의 건반 연주를 연상케하는 I'm Outta Time 등을 발표, 1995년 발매한 자선앨범 Help!에서는 1969년 비틀즈의 히트곡 Come Together을 다른 뮤지션과(폴 웰러, 폴 매카트니, 쟈니 뎁)부르기도 했다. 간접적으로 링고 스타와는 특별한 인연이 있는데, 정식 멤버는 아니었지만 링고 스타의 아들이자 드러머로 활동 중인 잭 스타키가 드럼을 맡아 함께 호흡을 맞추기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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줄리안 레논(Julian Lennon, 1963-)

존 레논의 아들, 뮤지션존 레논과 존 레논의 첫 번째 아내 신시아 레논(Cynthia Lennon)의 아들이다. 존 레논이 그의 어머니 ‘줄리아(Julia Lennon)’의 이름을 따서 지은 이름이다. 폴 매카트니가 만든 곡 ‘Hey Jude’의 주인공으로 존 레논과 신시아 파웰의 이혼 때문에 슬퍼하는 어린 줄리안 레논을 위해 만들었다고 한다.

 


 

감수. 김영훈
안나푸르나 대표

비틀즈 앤솔로지』, 『폴 매카트니 비틀즈 이후, 홀로 써내려간 신화』기획 및 출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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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est Of Best 폴 매카트니의 기록들

1963년, 첫 앨범 발표와 함께 대중음악의 역사를 새로 써내려간 비틀즈. 그리고 그 중심엔 폴 매카트니가 있었다. 20세기 대중음악의 상징적인 인물이자, 경이로움으로 대변되는 그가 남긴 화려한 기록들을 파헤쳐 본다.

기네스북

현재도 계속되고 있는 전설의 기록

  • 2005년 아시아 쓰나미 희생자들을 돕기 위한 Reach Out To Asia 주관 자선경매에서 폴 매카트니를 포함한 아티스트*의 사인이 담긴 펜더 스트라토캐스터 기타가 2천7백만 달러에 낙찰되었다. * 브라이언 아담스(Bryan Adams), 믹 재거 (Mick Jagger), 키스(Keith Richards), 에릭 클랩튼(Eric Clapton), 지미 페이지 (Jimmy Page), 브라이언 메이(Brian May)
  • 2005년 미국 캘리포니아주 애너하임에서 열린 폴 매카트니 단독 콘서트의 실황이 국제 우주정거장에서 생중계되었다. 이는 아티스트로서 우주에 공연 중계를 한 최초의 기록이다.
  • 1973년 폴 매카트니가 작곡하고 싱글로도 발표한 영화 제임스 본드의 주제가 live and let die로 오스카 Best Original Song 부문에 노미네이트 되었다. 본드 영화가 오스카에 노미네이트 된 첫 번째 기록이다.

수상

명예로운 폴 매카트니, 아니 폴 매카트니 경!

  • 비틀즈 뿐만 아니라 솔로 아티스트로서도 록앤롤 명예의 전당에 입성
  • 1965년 비틀즈의 멤버로, 1997년에는 단독으로 기사 작위를 수여
  • 1999년 모차르트, 베토벤을 제치고 BBC가 뽑은 밀레니엄 최고의 작곡가로 선정
  • 2008년 예일대 명예박사 학위를 수여
  • 2011년 제53회 그래미 어워드 최우수 솔로 록 보컬 퍼포먼스상
  • 2013년 제55회 그래미 어워드 최우수 트레디셔널 팝 보컬앨범상
  • 2014년 제56회 그래미 어워드 베스트 뮤직 필름 & 최우수 록 음악상

세기의 명곡

악보를 읽고 쓸 줄 모르는 천재 음악가 폴 매카트니, 그가 작곡한 음악은 무려 486곡!

악보를 읽고 쓸 줄 모르지만 기타, 베이스, 드럼, 피아노, 팀파니 등 40여 가지 이상의 악기 연주

Yesterday

1965년 발표한 비틀즈의 명곡 중의 명곡으로 앨범에는 "Lennon-McCartney" 작사 작곡이라고 적혀 있지만 실제로는 폴 매카트니 혼자 작업한 곡. 당시의 밴드로서는 이례적으로 바이올린, 첼로, 비올라와 같은 현악기를 사용하여 혁신적인 편곡으로 찬사받는다. 20세기 가장 사랑받는 곡으로 수많은 아티스트들이 즐겨 부르고 리메이크했으며, 그와 같은 현상은 21세기에도 진행형이다.

Yesterday는 과연 몇 명이 리메이크 했을까?

3,500명 이상의 아티스트들이 정식 리메이크한 세계 최다 리메이크 곡! 슈퍼콘서트 14의 주인공 Maroon5의 보컬 애덤 리바인(Adam Levine)과 보이즈투맨(Boyz II Men), 엘비스 프레슬리(Elvis Presley), 프랭크 시나트라(Frank Sinatra), 레이 찰스(Ray Charles Robinson), 마빈 게이(Marvin Gaye) 등이 리메이크 하였다.

Hey Jude

비틀즈의 노래 중 가장 긴 곡(7분 11초)으로 당시 다섯 살이던 존 레논의 아들, 줄리안에게 힘과 용기를 주고자 폴 매카트니가 존과 함께 완성한 곡이다. 비틀즈의 노래 중 가장 성공한 곡으로 평가받는다.

Let It Be

가사에 등장하는 ‘마더 메리’는 유방암으로 세상을 떠난 폴의 어머니 메리 패트리시아 매카트니를 지칭하는 것이다. 당시 매니저 브라이언 엡스타인의 죽음으로 괴로워하던 비틀즈 멤버들의 심경이 노래의 가사에 잘 반영되어 있다. 비틀즈의 마지막 히트곡으로 팬들에게 전설이 된 곡이다.

Band On the Run

윙스 시절의 명곡으로 당시 폴과 사이가 좋지 않았던 존 레논도 이 곡에 대해서만은 극찬을 아끼지 않았다. 비틀즈의 멤버를 넘어 ‘폴 매카트니’로 홀로 설 수 있게 만들어준 상징적인 노래이다.

Mull of Kyntire

77년 발표된 윙스의 16번째 싱글. 영국에서는 70년대를 대표하는 명곡으로 손꼽힌다. 제목의 Kyntire는 폴이 소유하고 있는 스코틀랜드 서부 목장의 이름에서 가져왔다. 지극히 영국적인 사운드로 후반부의 백파이프가 인상적인 곡으로 그의 공연 에서는 빠짐없이 연주된다.

공연

경이로운 공연 기록들

10개국에서 200만 명 동원

1976년 10개국에서 200만 명의 관객을 동원한 Paul McCartney & Wings Rock Show 공연은 76년의 시애틀에서 투어의 정점을 찍었다. 67,000명의 팬과 윙스가 만나는 시애틀에서의 이 광경은 필름으로 녹화되어 지금도 전 세계에서 상영되고 있다.

기네스북 공연 기록 경신

1989부터 1990년에 걸쳐 진행된 폴 매카트니의 월드 투어 Get back tour. 윙스 해체 후, 첫 라이브 활동으로 하이라이트는 Paul Is Live에 담겨있다. 1990년 4월 21일 브라질 공연은 18만 명 이상의 관객을 모아 당시 기네스북의 기록을 경신했다.

Good Evening New York City

2009년 완공된 뉴욕 시티 필드 야구장에서 펼쳐진 폴 매카트니의 첫 라이브 콘서트이다. 1965년 시스타디엄(Shea Stadium)에서 열린 비틀즈의 공연을 연상케 한다.

 


 

Writer. 김영훈
안나푸르나 대표

비틀즈 앤솔로지』, 『폴 매카트니 비틀즈 이후, 홀로 써내려간 신화』기획 및 출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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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틀즈의 나라. 영국 이미지는 극과 극이다. 신사와 악동, 여왕과 펑크걸이 동시에 존재감을 뿜어내는 식이다. 그 중심에는 언제나 젊음과 음악, 그리고 패션이 있다. 1960년대, 비틀즈로부터 탄력을 받은 ‘모즈(mods)’가 거리를 휩쓸었다. 1970년대엔 데이비드 보위(David Bowie)를 필두로 한 '글램록'과 섹스 피스톨즈(Sex Pistols)나 클래시(The Clash)를 중심으로 ‘펑크’가 한바탕 소용돌이를 일으켰다. 1980년대 들어 듀란듀란(Duran Duran)과 컬처 클럽(Culture Club)이 이끈 뉴웨이브가 ‘컬러풀’의 극단을 보여줬다면, 조이 디비전(Joy Division)이나 큐어(The Cure)가 생산해내는 기이한 ‘어둠’도 짙게 드리웠다. 그리고 1990년대 ‘브릿팝’은 비단 영국뿐만 아니라 동시대를 살아가는 젊은이들의 '젊음' 그 자체를 표현했다.

 

 

 

 

돌이켜보건대, 비틀즈의 패션은 트렌드라기보다는 시대 자체라고 보는 게 맞다. 누가 일부러 퍼뜨린 게 아니다. 그렇게 될 수밖에 없는 운명 같은 것이 아니었을까 싶을 정도다. 1960년에 비틀즈 멤버들이(아직 ‘비틀즈’라는 이름도 갖기 전에) 함부르크에서 만난 한 여자에게 머리를 깎아달라고 했다. 분명 친구들끼리 장난에서 시작한 것이다. 그것이 바로 ‘모즈 룩’이라는 거대한 조류의 시작이 됐다. 또한 장식적이며 과장된 재킷과 바지를 벗고 몸에 딱 맞는 수트에 첼시부츠를 신은 건 단순히 옷을 갈아입은 것이 아니다. 시대를 통째로 갈아입은 표상이 됐다. 

 

 

‘모즈’의 마법사들 혹은 비틀즈의 다섯 번째 멤버들

 

알다시피 비틀즈 멤버는 폴 매카트니(PAUL McCARTNEY), 존 레논(John Lennon), 조지 해리슨(George Harrison), 링고 스타(Ringo Starr) 이렇게 네 명이다. ‘다섯 번째 멤버’라 불리는 이들이 몇  더 있다. 오늘날 비틀즈를 위대한 전설이자 여전히 현재진행형인 뮤지션으로 살아있도록 하는, 그야말로 비틀즈가 비틀즈일 수 있게 만든 이들이다. 소위 비틀즈의 상징인 ‘바가지머리’라 불리는 ‘Mop Top Hair’를 비틀즈에게 제안한 사람이다. 혹은 가죽재킷과 웨스턴 부츠 대신 칼라 없는 회색 수트에 첼시 부츠를 신도록 한 사람도 있다. 누구일까?

 

스튜어트 서트클리프(Stuart Sutcliffe)는 존 레논의 대학 동창이다. 전공은 미술. 잭 케루악(Jack Kerouac) 같은 동시대 미국 ‘비트’ 문학에도 관심이 깊은 멋쟁이였다. 존 레논은 그를 자신의 밴드로 데려와 베이스 기타를 치게 했지만, 함께 한 시간이 길진 않았다. ‘전설의 시작’쯤으로 여겨지는 비틀즈의 함부르크 시절까지였다. 스튜어트 서트클리프는 거기서 만난 한 여자와 사랑에 빠지면서 결국 밴드를 떠났다.

 

 

[With The Beatles](1963) 앨범커버 (출처: The Beatles

 

 

그 여자의 이름은 아스트리드 키르헤(Astrid Kirchherr). 아스트리드는 패션을 공부하며 사진을 찍는 젊은 예술가로, ‘멋’과 ‘스타일’에 눈을 뜬, 앞서가는 여자였다. 어느 날 아스트리드는 스튜어트의 머리를 ‘동그랗게’ 잘라줬다. 이것은 곧 다른 멤버들에게로 퍼졌다. 비틀즈의 상징과도 같은 ‘바가지머리(Mop Top Hair 혹은 Mushroom Cut)’가 탄생하는 순간이었다. 지금 그 풍경을 상상해보면 꽤나 장난스런 분위기였을 뿐이다. 이것이 세계를 발칵 뒤집어놓는 트렌드를 만들어 낸 것인 줄 당사자들은 꿈에도 몰랐을 것이다. 그런가 하면 그녀가 찍은 1960년대 초기의 비틀즈 사진은 지금 봐도 군더더기 없이 절제된 세련미를 풍긴다. 아스트리드가 사진을 찍고 스튜어트가 디자인을 맡은 비틀즈의 [With The Beatles](1963) 앨범커버를 보라. 트렌드를 초월하는 간결한 아름다움이 결정처럼 박혀있다. 그렇게 두 사람은 비틀즈의 ‘스타일’을 처음 만들었다.

 

 

1964년 존 F. 케네디 공항에 도착한 비틀즈 (출처: WIKIPEDIA

 

 

브라이언 앱스타인(Brian Epstein)은 비틀즈의 고향 리버풀에서 레코드가게를 하다 비틀즈의 매니저가 됐다. 그는 타고난 감각으로 비틀즈를 ‘디자인’했다. 단순히 어떤 옷을 입어야 할 지부터, 모든 이미지를 비틀즈라는 이름으로 엮어냈다. 그는 비틀즈의 실밥 하나까지 챙겼다. 그 절정은 1964년 브리티시 인베이전(British Invasion)의 시발점이 된 비틀즈의 미국 진출이었다. 당시 미국 젊은이들의 패션이면 청바지나 럭비셔츠 같은 몇 가지 고정적인 아이템부터 넉넉한 실루엣을 만드는 소위 ‘아이비리그 룩’ 정도가 전부였다. 그런데 비틀즈 네 명이 자로 잰 듯 몸에 꼭 맞는 수트를 입고 비행기에서 내렸다. 그 장면은 지금으로선 상상할 수 없는 충격이었을 것이다. 디올 옴므(Dior Homme)의 수장 에디 슬리먼(Hedi Slimane)이 ‘스키니’로 무장한 깡마른 소년들로 ‘남성복’시장을 초토화시켰던 일과 비교할 수 있을까? 어림없다. 비틀즈는 이미 우상 그 자체였다.

 

 

‘모즈’ 이후의 비틀즈

 

[Revolver](1966) 앨범커버,  [Sgt. Pepper’s Lonely Hearts](1967) 앨범커버,  [Let It Be](1970) 앨범커버 (출처: The Beatles

 

 

1964년 미국 방문 이후 비틀즈는 끊임없이 음악적 영토를 확장해갔다. 어떤 것이 먼저랄 것도 없이 스타일도 덩달아 변해갔다. 앨범커버만 봐도 변화는 뚜렷하다. 멤버들의 헤어스타일은 단정한 바가지머리 대신 치렁치렁하게 긴 스타일로 변했다. 작은 듯 꼭 맞던 수트는 기이하게 너풀거리는 셔츠로 바뀌었다. 그들의 스타일은  사이키델릭(psychedelic)이자 히피(hippie)였다. 인도 풍의 전위 예술이거나 또 다른 그 무엇이기도 했다. 그러다 비틀즈는 [Let It Be]를 끝으로 해체했다. 멤버들은 흩어져 각자 음악에 몰두했다. 폴 매카트니는 장르가 무색하게 다양한 사람들과 협업하며 자신의 음악적 역량을 한껏 드높였다. 존 레논은 오노 요코(小野 洋子)를 만나면서 음악을 넘어 사회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2014년의 비틀즈


폴 매카트니는 부드럽다. 그의 얼굴을 그린다고 생각하면 계속 머릿속에 동그라미가 생겨난다. 눈과 눈두덩도 동그랗다. 턱과 코, 심지어 목소리까지 동그랗게 그려야 할 것 같다. 옷차림도 마찬가지. 그가 서 있는 무대는 마치 벨벳이나 새틴처럼 부드러워 보인다. 꾸실꾸실 잘 말린 면처럼 온화한 기운이 번지기도 한다. 그는 넉넉한 셔츠를 즐겨 입는다. 사이즈가 큰 셔츠를 벙벙하게 입는 게 아니다. 잘 맞는 셔츠에서 나오는 여유를 즐기는 스타일이다. 엄격한 턱시도 셔츠라면 두세 개 단추를 풀어 느슨하게 입는 식으로 폴 매카트니만의 분위기를 만들어낸다.

 

 

2014년 그래미 어워즈 무대의 폴 매카트니와 링고 스타 (출처: PAUL McCARTNEY

 

 

올해 제56회 그래미 어워즈(The 56th GRAMMY AWARDS)에서 오랜만에 폴 매카트니와 링고 스타는 협연 무대를 선사했다. 그들은 2013년 폴 매카트니가 발표한 앨범 [New]에 수록된 ‘Queenie Eye’를 들려줬다. 비틀즈 시절처럼 폴 매카트니가 노래를 부르고 링고 스타는 그의 뒤에서 드럼을 연주했다. 객석에선 존 레논의 부인 오노 요코와 아들 션 레논(Sean Lennon), 조지 해리슨의 부인 올리비아 해리슨(Olivia Harrison)이 무대를 지켜봤다. 비틀즈를 기억하고 사랑하는 사람들에겐 행복하고 특별한 시간이었다. 이제 국내에서도 비틀즈의 팬들이 행복한 시간을 누릴 수 있는 기회가 온다. 2014년 5월 28일 PAUL McCARTNEY 현대카드 슈퍼콘서트 20에는 부드럽고 넉넉한 셔츠를 입은 폴 매카트니가 들려주는 ‘Yesterday’를 함께 따라 부르는 마법과도 같은 시간이 예정되어 있다.

 

 


 

Writer. 장우철
 남성 잡지 ‘GQ KOREA’의 피처 디렉터로, 다양한 분야를 아우르는 칼럼과 화보, 인터뷰를 선보이고 있다.
2012년 독창적인 첫 책 『여기와 거기』를 냈다. MBC 라디오 '타블로와 꿈꾸는 라디오'에 출연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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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틀즈(The Beatles)는 여전히 세계 대중문화의 중심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무엇보다 지난 두 번의 올림픽에서도 그 흔적을 진하게 느낄 수 있었다. 2014년 소치 동계올림픽 피겨 스케이팅 갈라쇼에서 김연아 선수가 존 레논(John Lennon)의 ‘Imagine’에 맞춰 멋진 연기를 펼쳤고, 지난 2012년 런던 올림픽 개막식에서는 폴 매카트니(PAUL McCARTNEY)가 ‘Hey Jude’를 부르며 마지막을 장식했다. ‘007’ 시리즈의 ‘제임스 본드’ 다니얼 크레이그(Daniel Craig)가 첩보작전처럼 경기장에 등장하고, ‘해리 포터(Harry Potter)’ 시리즈의 작가 조앤 K. 롤링(Joan K. Rowling)이 아이들에게 동화를 읽어주며, 축구 스타 데이비드 베컴(David Beckham)이 성화를 꽂은 보트를 타고 템즈강을 가로질러왔던 그 ‘경이로운 영국(Isles Of Wonder)’ 퍼포먼스의 실질적인 주인공은 바로 비틀즈였던 것. 이처럼 비틀즈는 영국 대중문화의 꽃이기도 하다. 영화 ‘러브 액츄얼리(Love Actually, 2003)’에서 영국을 방문한 미국 대통령(빌리 밥 손튼, Billy Bob Thornton)과 회담을 나눈 영국 수상(휴 그랜트, Hugh Grant)은 당당한 목소리로 연설에 임한다. “영국은 작지만 위대한 나라입니다. 셰익스피어도 있고, 숀 코너리도 있고, 해리 포터와 데이비드 베컴의 오른 발도 있죠. 그리고 바로 비틀즈의 나라입니다.”

 

 

 

 

애비로드를 걸어보지 않은 사람들은 누구인가

 

영화 '하드 데이즈 나이트' 촬영 장면과 영화 '헬프!' 촬영 장면 (출처: The Beatles, 왼쪽, 오른쪽)

 

 

비틀즈는 영국에서 태어났지만 마치 성경처럼 세계인의 것이 됐다(심지어 존 레논은 1966년 한 인터뷰에서 “우리가 예수보다 더 인기 있다”고 말해 미국에서 한바탕 홍역을 치른 적이 있다). 세계 대중문화 역사에서 그 자체로도 위대한 것은 물론이요, 수많은 영화와 소설들이 그들을 인용하며 애정을 바쳤다. 먼저 비틀즈는 직접 영화배우로 활동했다. 1964년 ‘I Want to Hold Your Hand’가 미국 빌보드 차트 1위를 차지한 역사적인 순간, 미국을 다녀온 비틀즈는 첫 번째 장편영화 ‘하드 데이즈 나이트(Hard Day’s Night, 1964)’를 촬영했다. 당시 스타의 인기에 편승해 급조해 만든 영화는 많았지만, ‘하드 데이즈 나이트’는 실제와 허구가 뒤섞인 독특한 스타일로 그들의 새로운 면모를 보여주며 음악영화의 고전이 됐다. 이를 무려 25번이나 봤다는 영화평론가 로저 에버트(Roger Ebert)는 ‘사랑은 비를 타고(Singing In The Rain, 1952)’와 견줄만한 작품이라 극찬했다. 당시 비틀즈는 유나이티드 아티스트(United Artists)사와의 계약에 의해 ‘하드 데이즈 나이트’와 ‘헬프!(Help!, 1965)’ 이후 한편의 영화에 더 출연해야 했는데, 비틀즈의 애플 필름스(Apple Films)의 공동책임자 중 한 명이었던 데니스 오델(Denise O’Dell)은 J. R. R. 톨킨(J. R. R. Tolkien)의 소설 『반지의 제왕(The Lord Of The Rings)』의 영화화를 제의했다. 멤버들은 흔쾌히 승낙했고 거장 영화감독인 스탠리 큐브릭(Stanley Kubrick)에게 연출을 맡기고 싶어 했으며, 존 레논은 등장 인물 중 간달프 역을 맡겠다고 했다. 영화 역사상 가장 궁금한 미완의 프로젝트 중 하나다.

 

 

비틀즈 [Abbey Road] 앨범커버 (출처: The Beatles)

 

 

아무래도 비틀즈의 향기를 가장 짙게 머금은 영화는 상영시간 내내 비틀즈의 음악에 취하게 만드는 ‘아이 엠 샘(I Am Sam, 2001)’일 것이다. 지적 장애로 7살 지능밖에 갖지 못한 샘(숀 펜, Sean Penn)은 어느 날 예쁜 딸(다코타 패닝, Dakota Fanning)을 얻게 된다. 비틀즈의 노래 ‘Lucy in the Sky with Diamond’에서 따온 ‘루시 다이아몬드’를 딸의 이름으로 짓고 둘만의 생활을 시작한다. 물론 오리지널 곡들의 라이센스를 얻는데 막대한 비용이 들기 때문에 영화에서는 리메이크로 녹음된 곡들을 사용했지만 오히려 그것이 색다른 분위기를 풍긴다. 또한 샘과 루시가 횡단보도를 건너면서 비틀즈 앨범 [Abbey Road]의 커버를 흉내 내는 장면 등 영화 곳곳에서 비틀즈를 떠올릴 수 있다. [Abbey Road] 앨범커버는 영국 런던 웨스트민스터 세인트 존스우드(Westminster St. John’s Wood)에 있는 애비로드 스튜디오(Abbey Road Studio) 근처 횡단보도를 4명의 비틀즈 멤버가 건너는 모습을 담고 있는데 그야말로 수도 없이 패러디 됐다. 애니메이션 ‘심슨 가족(The Simpsons)’도 그 길을 건넜고 영화 ‘트레인 스포팅(Trainspotting, 1996)’의 주인공 이완 맥그리거(Ewan McGregor)도 친구들과 함께 성큼성큼 횡단보도를 건넜다. 물론 똑같은 애비로드는 아니지만 바로 그 길 위에 선 것처럼 비틀즈를 떠올리며 걸었다. 박중훈이 1988년도 가수왕 최곤으로 등장하는 영화 ‘라디오스타’(2006)에서 최곤을 졸졸 따라다니는 록 밴드 ‘이스트리버(4인조 국내 밴드 노브레인이 연기한 극 중 밴드이름)’도 강원도 영월의 한 횡단보도를 애비로드인 양 건너는 장면이 있다.

 

 

전설의 옥상 콘서트부터 하루키의 『노르웨이의 숲』까지, 비틀즈는 전설이 되었다

 

비틀즈의 애플사 옥상 콘서트

 

영화 '어크로스 더 유니버스'의 옥상 콘서트 장면

 

 

[Abbey Road] 앨범커버만큼이나 무수히 인용된 ‘비틀즈의 장면’은 바로 옥상 콘서트다. 1969년 1월 30일 비틀즈가 런던의 애플(Apple)사 옥상에서 가졌던 즉흥 콘서트는 팝 역사에 길이 남을 명장면이다. 당시 멤버들 간의 갈등은 최고조였고 조지 해리슨(George Harrison)은 밴드를 탈퇴하겠다는 발표까지 했는데 조지가 내건 조건을 다른 멤버들이 수용하면서 사건은 일단락됐다. 그리고 옥상 콘서트 날만큼은 완벽한 호흡과 연주력을 선보였다. 1시간 가까이 하늘에서 울려 퍼지는 음악에 시민들은 눈물을 흘리며 감격했다. 역시 비틀즈 노래에서 제목을 따온 영화 ‘어크로스 더 유니버스(Across The Universe, 2007)’의 마지막 옥상 콘서트 장면이 바로 그에 대한 오마주다. 실제로 비틀즈의 공연은 경찰이 불법공연으로 규정하고 전력 공급을 중단하면서 마무리됐는데, ‘어크로스 더 유니버스’에서도 경찰들에 의해 옥상에서 쫓겨난 주드(짐 스터게스, Jim Sturgess)는 루시(에반 레이첼 우드, Evan Rachel Wood)를 향해 비틀즈의 노래 ‘All You Need Is Love’를 부른다. 또 ‘심슨 가족’의 한 에피소드에서는 주인공 호머가 과거에 가수였다는 설정으로 술집 옥상에서 공연을 펼치는 장면이 나온다.

 

돌이켜 보면 ‘심슨 가족’의 비틀즈 사랑은 엄청났다. ‘심슨 가족’의 기획자이자 각본가인 맷 그로닝(Matt Groening)이 비틀즈의 엄청난 팬이기 때문이다. 사망한 존 레논을 빼고 세 멤버 모두 ‘심슨 가족’의 목소리 더빙에 참여한 경험이 있을 뿐만 아니라 한 에피소드에는 음료수 캔에 쓰인 이름들이 다음과 같았다. 존 레몬, 오렌지 해리슨, 폴 맥아이스티, 망고 스타. 더불어 비틀즈가 개성 넘치는 4명의 조합이었던 만큼, 그들 중 누구를 좋아하느냐는 오랜 관심사인데, 가령 영화 ‘500일의 썸머(500 Days Of Summe, 2009)’에서 “링고 스타(Lingo Starr)를 좋아하는 사람이 어디 있어?”라는 톰(조셉 고든 레빗, Joseph Gordon Levitt)의 말에 썸머(주이 드샤넬, Zooey Deschanel)는 “그래서 좋아하는 거야!”라며 [Abbey Road]에 실린 링고 스타의 노래 ‘Octopus Garden’이 비틀즈 노래 중 최고라고 말한다. 이 장면은 대부분 ‘폴이냐, 존이냐’로 싸울 때 조지 해리슨과 링고 스타를 흠모하는 사람들도 있다는 사실을 이야기하고 있다. 

 

문학 작품으로 넘어오면 비틀즈의 노래 제목을 차용한 무라카미 하루키(村上 春樹)의 소설 『상실의 시대(원제: 노르웨이의 숲, Norwegian Wood)』를 빼놓을 수 없다. 37살이 된 주인공은 함부르크 공항(Hamburg Airport)에 착륙한 비행기 기내에 흐르던 비틀즈의 ‘Norwegian Wood(This Bird Has Flown)’을 들으며 자신의 10대 끝자락으로 돌아가 이야기를 시작한다. 한 여자를 만나 밤새 사랑했지만 다음날 깨어나 보니 그녀가 사라지고 없었다는 상실감을 노래한 ‘Norwegian Wood(This Bird Has Flown)’는 소설 속 주인공의 정서로 자연스레 이어진다. 비틀즈가 1965년 발표한 앨범 [Rubber Soul]에 실려 있는 이 곡은 기타리스트 조지 해리슨이 인도 전통악기 ‘시타르’로 연주하는 것을 들을 수 있다. 국내 작품 중에서는 은희경이 1999년 발표한 소설 『그것은 꿈이었을까』가 비틀즈의 향기로 채워졌다. 『그것은 꿈이었을까』는 ‘Norwegian Wood(This Bird Has Flown)’를 비롯해 [Rubber Soul]에 실린 ‘Girl’, ‘Michell’, ‘Nowhere Man’ 등 14곡의 노래 제목을 각각 소제목으로 했다.

 

 

영화 '노웨어 보이' 예고편

 

 

[Rubber Soul]의 수록곡 ‘Nowhere Man’에서 제목을 조금 변형한 영화 ‘노웨어 보이(Nowhere Boy, 2009)’의 이야기로 마무리하면 어떨까 싶다. 영화는 비틀즈의 초기 역사(독일 함부르크로 떠나 활동하기 직전까지의 이야기)를 그린 작품이다. 영화 속에서 어린 폴 매카트니와 존 레논의 첫 만남이 인상적이다. 맥주를 마시겠냐는 존의 물음에 ‘샌님’같은 은 차를 달라고 한다. 그리고 이 에디 코크런(Eddie Cochran)의 ‘Twenty Flight Rock'을 기타로 연주해 보이는데, 존은 당시 자신이 가장 좋아했던 곡을 이 한 번도 들어보지 못한 코드로 연주 하자 깜짝 놀란다. 그리고 두 사람은 음악적, 정신적으로 깊은 교분을 나누는 사이가 된다. 그렇게 세계를 정복한 문화대통령 비틀즈의 역사가 시작됐다.

 

신화가 된 밴드 비틀즈의 세계적인 파급력은 지금까지도 끊이지 않고 이어져 오고 있다. 비단 음악에만 국한되지 않고 문화 전 영역에 걸쳐 퍼져있다. 비틀즈를 주제로 재생산된 문화 콘텐트들은 문화의 장을 풍요롭게 할 뿐만 아니라 전세계 수많은 비틀즈 팬들에게 그들의 팬심을 발산할 수 있는 하나의 소통창구가 되기도 한다. 비틀즈가 영원하기를 바라는 팬들의 바람을 실현하는 또 다른 가치 있는 결과물일 것이다. 이번 PAUL McCARTNEY 현대카드 슈퍼콘서트 20은 그간 미디어를 통해서만 만날 수 있었던 문화대통령, 비틀즈의 멤버인 폴 매카트니를 직접 볼 수 있는 기회로 그의 공연을 만끽할 수 있는 기념비적인 날이 될 것이다.

 

 


 

Writer. 주성철
<씨네21> 취재팀장
『홍콩에 두 번째 가게 된다면』, 『그 시절 우리가 사랑했던 장국영』, 『우리시대 영화장인』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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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세기 최고의 팝 아티스트 폴 매카트니(PAUL McCARTNEY)가 내한 공연을 펼친다. PAUL McCARTNEY 현대카드 슈퍼콘서트 20을 통해 최초로 국내 팬들 앞에 서는 것이다. 비틀즈(The Beatles)의 멤버로서 1960년대 세계 음악시장을 움직였던 그는 팝 뮤직사의 전설로 머무르지 않았다. 비틀즈 시절 이후에도 활발한 솔로 활동을 통해 10억 장 이상의 앨범과 싱글을 판매했으며, 1979년 60개의 골드디스크(비틀즈 활동 포함)를 보유한 ‘역사상 가장 성공한 작곡가이자 레코딩 아티스트’로 기네스북에 등재됐다. 2012년 런던올림픽 개막식에서는 비틀즈 시절 히트곡 중 하나인 'Hey Jude'를 불러 전 세계인들에게 감동을 선사했으며, 2013년에는 16번째 스튜디오 앨범 [New]를 발매하는 등 열정적으로 음악활동을 이어오고 있다. 올해 열린 제56회 그래미 어워드(Grammy Award)에서는 ‘최우수 록 음악상’ 등 5개 부문을 수상하였을 뿐 아니라 그가 속했던 비틀즈가 평생 공로상을 받았으며, 비틀즈의 드러머였던 링고 스타(Ringo Starr)와 함께 [New]의 수록곡 'Queenie Eye' 무대를 꾸미기도 했다. 그는 국내 첫 내한공연인 PAUL McCARTNEY 현대카드 슈퍼콘서트 20을 통해 그 동안 그를 기다려온 수많은 국내 팬들에게 큰 기쁨을 선사할 것으로 기대된다. 

 

 

 

 

소년, 로큰롤과 존 레논을 만나다

 

폴 매카트니는 1942년 6월 18일 영국의 항구도시 리버풀에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 제임스(짐) 매카트니(Jim McCARTNEY)는 1920년대에 '짐 맥스 재즈 밴드(Jim Mac’s Jazz Band)'를 결성하여 피아노와 트럼펫을 연주했다. 모범생이던 폴 매카트니가 음악에 관심을 나타내기 시작했던 것은 12살 무렵이다. 아버지로부터 자연스럽게 영향을 받기도 했지만 당시 영국에 불어 닥친 스키플, 로큰롤 열풍의 영향이 컸다. 특히 로큰롤의 제왕 엘비스 플레슬리(Elvis Presley)에 매료되면서 관심은 더욱 커졌다. 그는 14세 생일선물로 아버지로부터 트럼펫을 선물 받았는데 연주하면서 노래도 부르고 싶어 트럼펫을 제니스 기타로 바꿨고, 'I Lost My Little Girl’을 작곡하는 등 음악적 재능을 나타내기 시작했다.

 

로큰롤에 몰두해 있던 폴 매카트니는 학교 친구 아이반 본(Ivan Vaughan)에게 존 레논(John Lennon)이 결성한 스키플 밴드 ‘쿼리맨(The Quarrymen)’의 무대를 보러 가자는 제안을 받았다. 훗날 대중음악사에서 중요한 날로 기록되는 1957년 7월 6일, 친구를 따라 지역 축제 구경을 나선 폴 매카트니와 존 레논의 역사적인 만남은 그렇게 이루어지게 되었다. 쿼리맨의 무대가 끝나고 무대 뒤에서 존 레논을 만난 폴 매카트니는 'Twenty Flight Rock'을 기타로 연주하며 노래를 불렀는데, 그 모습에 매료된 존 레논은 폴 매카트니에게 쿼리맨의 멤버로 들어올 것을 제안했다. 

 

폴 매카트니는 쿼리맨에서 기타리스트로 활동하면서 존 레논과 인간적, 음악적으로 친밀한 관계를 쌓아나갔다. 사교적이고 모범생이었던 폴 매카트니와 다소 냉소적이고 문제아였던 존 레논은 친해질 수 없는 사이처럼 보였지만 로큰롤에 빠져있던 두 사람은 음악이라는 공통 관심사를 통해 급격하게 가까워졌다. 특히 작곡, 작사를 함께하기 시작하면서 역사상 가장 유명하고 성공적인 음악적 파트너를 이루게 됐다. 이 때 두 사람은 한 가지 약속을 했는데, 누가 곡을 쓰더라도 두 사람의 이름(Lennon- McCARTNEY 혹은 McCARTNEY-Lennon)으로 발표하기로 한 것이다. 이는 비틀즈가 해체되기 전까지 지켜졌다. 쿼리맨은 이후 레인보우(Rainbow), 조니 앤 더 문 독스(Johnny And The Moon Dogs), 실버 비틀즈(The Silver Beetles) 등의 팀 명을 거쳐 드디어 1960년 비틀즈(The Beatles)가 됐다. 멤버의 경우 폴 매카트니, 존 레논에 이어 조지 해리슨(George Harrison), 링고 스타가 들어옴으로써 최종 네 명의 라인업이 완성되었고, 1962년 첫 싱글 ‘Love Me Do’를 발표했다.

 

 

1960년대 전세계 최고의 슈퍼스타, 비틀즈

 

영국 리버풀에서 인기를 얻고 유명해지게 된 비틀즈는 레코드 가게를 운영하던 브라이언 앱스타인(Brian Epstein)을 만났고, 이후 그는 비틀즈의 매니저로 활약하면서 EMI레코드사와 계약을 성사시켰다. 비틀즈는 1962년 발매한 2장의 싱글 앨범에 이어 1963년 3월 22일에 첫 정규앨범 [Please Please Me]를 성공적으로 발매하며 공식 데뷔했다. 1964년에는 미국에 진출해 큰 성공을 거두는데 이를 일컬어 '영국인의 침공(British Invasion)'이라 칭하기도 한다. 비틀즈는 1970년 해체 전까지 영국, 미국 등에서 활발하게 활동하며 그들의 거대한 인기와 성공을 보여주는 신조어 '비틀마니아(Beatlemania)’를 탄생시켰다. 대중음악사에서 가장 성공적인 밴드로 불리는 비틀즈는 전세계적으로 16억 장 이상의 공식 판매고를 올려 가수 중 최고로 기록되기도 했다.

 

 

조지 해리슨, 폴 매카트니, 존 레논, 링고 스타 (왼쪽부터)

 

 

폴 매카트니는 베이스와 보컬을 맡았으며 존 레논과 주축이 되어 팀을 이끌며 다수의 곡을 작곡, 작사했다. 그는 'Yesterday', 'Hey Jude', 'Let It Be', 'The Long and Winding Road', 'Michelle'(존 레논과 공동작곡), 'Here There and Everywhere', 'Penny Lane', 'Eleanor Rigby' 등의 히트곡들을 작곡하여 그만의 음악세계를 넓혀 갔고, 존 레논과 서로 시너지 효과를 내며 비틀즈를 발전시켰다. 특히 폴 매카트니의 가장 유명한 곡인 'Yesterday'는 현재까지 2,200명 이상의 음악가가 정식 리메이크하여 세계에서 가장 많이 리메이크된 곡이기도 하다.

 

1960년대 중반 이후 비틀즈는 [Sgt. Pepper's Lonely Hearts Club Band(1967)], [The Beatles(The White Album, 1968)] 등 실험적인 앨범들을 발표하며 높은 평가와 인기를 누렸으나, 멤버 간의 불화로 인해 1970년 해체하고 말았다. 불화의 원인은 여러 가지가 있으나, 매니저 브라이언 앱스타인의 죽음(1967년), 존 레논과 오노 요코(小野 洋子)의 관계 등이 거론되었다. 한편 폴 매카트니는 비틀즈의 마지막 앨범 [Let It Be]의 발표에 앞서 자신의 첫 솔로앨범 [McCartney]를 발표했고, 같은 해 비틀즈의 해체를 공식적으로 선언했다.

 

 

폴 매카트니의 음악은 현재진행형

 

그룹 '윙스(Wings)' 결성

 

 

그룹 윙스 멤버 중 데니 레인, 폴 매카트니, 린다 매카트니 (시계방향)

 

 

폴 매카트니는 1969년 그와 결혼한 사진작가 린다 매카트니(Linda McCARTNEY)가 백업보컬로 참여한 두 장의 솔로앨범 [McCartney], [Ram]을 냈다. 이후 1971년 기타리스트 데니 레인(Denny Laine)과 드러머 데니 세이웰(Denny Seiwell)을 영입하여 ‘윙스(Wings)’라는 밴드를 결성했으며 잦은 멤버 변경에도 불구하고 1981년까지 유지했다. 초기에 윙스는 좋은 평을 받지 못했으나 1973년 발표한 세 번째 앨범 [Band On The Run]이 비틀즈 이후 최고의 앨범이라는 평가를 받으며 상업적으로도 성공했다. 이후 계속해서 성공적인 앨범을 발매했고, 영국과 미국 투어를 갖기도 했다. 1980년에는 솔로 앨범 [McCartneyII]를 발표했는데, 같은 해 비틀즈의 멤버 존 레논이 암살당하는 충격적인 사건이 일어났다. 그 사건으로 라이브 공연을 자제했던 폴 매카트니와 윙스는 그 다음 해인 1981년 자연스럽게 해체됐다. 

 

다양한 음악장르 도전 

 

음악이라는 범주 안에서 가능한 다양한 시도를 했다는 점은 폴 매카트니의 음악 이력에서 빼놓을 수 없는 부분이다. 그는 윙스 해체 이후 1980년대에 스티비 원더(Stevie Wonder), 마이클 잭슨(Michael Jackson), 엘비스 코스텔로(Elvis Costello) 등과 콜라보레이션을 하여 호평을 받기도 했다. 1990년대에는 클래식 음반에도 여러 차례 참여했다. 한편 1993년에는 ‘더 파이어맨(The Fireman)’이라는 이름으로 듀오를 결성하여 일렉트로닉 음악까지 선보이는 등 장르를 불문하고 자신의 음악적 영역을 계속 넓혀왔으며, 그러한 활동은 현재까지도 이어져 오고 있다. 

 

 

 

PAUL McCARTNEY – OUT THERE! 투어 소개 영상

 


폴 매카트니는 2013년에 16번째 스튜디오 앨범 [New]를 발표했다. 그는 [New]를 통해 여전히 식지 않은 음악에 대한 열정으로 젊음과 새로움이 가득한 곡들을 선보여 팬들에게 신선함을 안겨줬다. 이는 음악의 다양한 장르를 적극적으로 수용해 왔던 폴 매카트니의 행보를 보면 그리 놀라운 일은 아니다. 음악에 대한 열린 태도가 그를 지금의 현재진행형 레전드로 만든 것이다. 이번 PAUL McCARTNEY 현대카드 슈퍼콘서트 20은 과거부터 현재까지 이어지는 그의 다양한 음악적 스펙트럼을 현장에서 직접 확인할 수 있는 특별한 공연으로, 그의 내한이 성사되기를 손꼽아 기다려 온 팬들에게 최고의 선물이 될 것이다. PAUL McCARTNEY 현대카드 슈퍼콘서트 20은 인생에서 오직 단 한 번 경험할 수 있는 소중한 기회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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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addr | edit/del | reply 앤디248 2014.04.06 13:51 신고

    30만원이라는 돈이 부담스러울수도 있지만, 헤이 쥬드 한곡만 라이브로 들어도 돈 아까울거 같지않은 공연입니다.

  2. addr | edit/del | reply 리버 2014.04.06 20:22 신고

    슈퍼콘서트라는 명칭에 가장 걸맞는 이름이 아닐까싶네요
    수고했어요 현카

현대카드 패션위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