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퍼콘서트 18 시카고 심포니 오케스트라/전문가 칼럼' (2건)

 

현대카드 슈퍼콘서트 18 시카고 심포니 오케스트라와 천재 거장, 로린 마젤의 앙상블은 리카르토 무티의 빈자리를 느낄 새도 없이 관객들의 가슴을 뛰게 했습니다. 두텁고 단단한 관악기군의 울림은 오케스트라의, 사운드의 뿌리를 견고하게 지지했으며 한 달 남짓한 기간 동안 시카고 심포니와 호흡을 맞춘 거장 로린 마젤은 그 명성에 걸맞는 명불허전을 실감케 했죠. 그들은 떠났지만 영하 10도를 아우르는 추위였던 밤을 녹인 그 날은 서울을 클래식의 온기로 가득 채워주었습니다. 멘델스존의 서정성을 느낄 수 있는 '이탈리아', 그리고 베토벤의 '영웅', 공연의 아쉬움을 달랠 앙코르 곡, 바그너의 오페라 로엔그린의 3막 전주곡과 브람스의 헝가리안 무곡 1번의 연주까지. 2월 7일, 시카고 심포니의 공연을 음악 칼럼니스트 배영수님의 생생한 리뷰로 만나봅니다.  

 



뉴욕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클리블랜드 오케스트라 등과 함께 미국 최정상의 악단으로 평가 받는 시카고 심포니 오케스트라의 첫 내한공연 소식은 근래 클래식 음악계에서 가장 주목 받는 뉴스 중 하나였다. 비록 근래 상임지휘자인 리카르도 무티(Riccardo Muti)가 독감 및 탈장으로 인한 수술 등 건강상의 악화로 한국을 비롯한 아시아 공연 일정의 소화가 불가능해지면서 과거 뉴욕 필의 평양 공연을 이끌었던 세계적인 거장 로린 마젤(Lorin Maazel)로 지휘자가 일시 대체되긴 했지만, 6일 열렸던 첫날 공연 직후 올라간 SNS와 블로그 등의 후기 글들을 통해서 팬들의 높은 만족도가 증명되기도 했다.

 

 

 

 

7일 열린 두 번째 공연 역시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관객의 입장에서는 비교적 충분한 감흥을 얻을 수 있는 연주가 펼쳐졌다. 또한 지휘자가 임시로 바뀌면서 연주 작품 역시 변동된 첫 날과 달리, 둘째 날의 경우 프로그램의 변동이 없어 지휘자 대체 시기 이전부터 시카고 심포니 오케스트라가 이 공연을 어떻게 완벽히 준비해 왔는지를 어느 정도는 엿볼 수 있는 특징도 있었다.

 

“휴대폰을 끄고 에티켓을 지키자”는 내용의 안내 멘트 직후 한 관객이 기막힌 타이밍(?)의 재채기 소리로 깨알 같은 웃음을 선사하며 분위기가 밝아진 직후 공연은 시작됐다. 지휘자가 올라서고 베르디 전성기 시절을 대표하는 오페라, 시칠리아 섬의 저녁기도의 서곡이 연주되기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아 관객들은 시카고 심포니 특유의 우수한 질감을 유감없이 느낄 수 있었다. 현재 미국 최고의 악단으로 고공비행 중인 이들의 연주엔 ‘지휘자의 임시 교체’라는 악재도 걸림돌이 되지 못했다. 오히려 시카고 심포니 오케스트라는 로린 마젤의 진지한 카리스마와 잘 조화해 적어도 공연장 안의 그 순간만큼은 무티의 방한 취소에 대한 아쉬움을 떠올리지 못했다.

 

 

 

 

특히 시카고 심포니 오케스트라의 연주에서 가장 빛이 났던 부분은 현악 파트와 관악 파트의 볼륨 및 톤이 거의 완벽한 균형감을 이루고 있었다는 점이다. 화사하면서도 섬세한 아름다움을 만들어 내며 관객에게도 확실한 존재감을 각인시킨 목관악기군의 연주는 이 공연 전체를 통틀어 최고의 하이라이트였다. 물론 섬세하게 강약을 조절하는 금관 파트의 긴장감과 첼로와 베이스 파트의 진중하고 안정감 가득한 진행, 그리고 그 위에서 마음껏 기량을 발휘한 바이올린 & 비올라 파트의 연주도 최고의 수준이었음은 두말할 나위도 없을 터.

 

멘델스존이 이탈리아 여행 중 느낀 감흥이 작품화된 교향곡 4번 ‘이탈리아’에서는 관악기군의 화사한 느낌이 보다 도드라졌다. 존 엘리엇 가디너(John Eliot Gardiner, 1943~)와 레너드 번스타인(Leonard Bernstein, 1918~1990) 등이 남긴 음반으로도 팬들에게 친숙한 이 작품을 통해, 시카고 심포니는 오케스트라가 보여주는 완급 조절의 긴장감과 탄탄한 안정감을 어떻게 보여줘야 하는지를 모범적으로 증명했다. 공연 시작부터 여지없이 드러난 현악기군과 관악기군의 조화 속에서 보여지는 섬세한 표현력은 한 치의 흐트러짐이 없었으며, 로린 마젤의 의도에 찰떡처럼 붙어든 악단의 진행 역시 (아무리 그가 객원 자격으로 시카고 심포니 오케스트라를 자주 지휘했던 커리어가 있었다손 치더라도) 과연 임시 합류한 지 3주 만에 맞춘 호흡이 맞나 싶을 정도였다. 몇 분 정도의 인터미션 이후 다시 연주된 베토벤의 교향곡 3번 ‘영웅’에서도 이러한 시카고 심포니 오케스트라의 장점은 빛을 발했다.

 

 


 

이날 로린 마젤의 지휘는 속도감이나 열정보다는 진중하고 섬세한 표현을 염두에 둔 진행을 보여줬다. 이는 템포를 다소 늦추면서 작품의 심연을 수면 위로 들어 올리려는 듯한 아우라를 자주 선사하는 그의 ‘전형적’인 스타일이기도 한데, 특히 멘델스존의 교향곡 연주에서는 흔히 접하는 다른 지휘자들의 음반보다도 확연히 느린 진행을 보여주기도 했다. 때문에 박력 있게 몰아붙이는 연주를 기대한 사람들이었다면 조금은 실망했을 수도 있었을 터. 개인적으로는 마젤 합류 전의 시카고 심포니 오케스트라가 리카르도 무티와도 다소 속도를 늦춘 진행을 선택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는데, 이를 전제한다면 로린 마젤 특유의 진중하고 우아한 스타일과도 맞아떨어진 것으로 유추할 수 있다(물론 로린 마젤이 지휘봉을 잡으면서 원래보다 더 느리게 연주된 측면도 있을 것이고). 다만, 활화산 같은 열정적 쇼맨쉽을 보이는 리카르도 무티에 비해 로린 마젤의 스타일은 몇몇에겐 다소 재미없게 느껴질 수는 있었을 것 같다. 하지만 연주하기까지 비교적 진중하게 악단을 이끌며 왼손으로 가끔 지휘대 손잡이를 잡는 정도의 모션만 있었던 그의 지휘는 베토벤의 작품을 연주하면서 보다 적극적인 모션을 보여주기도 했다.

전날 공연에서도 모든 프로그램을 마친 뒤 커튼 콜을 길게 하지 않고 앙코르 무대를 이어간 점은 지휘자들 중에서도 대표적인 ‘지한파’로 분류되는 로린 마젤이 커튼 콜 문화에 아직은 완벽히 익숙치 않은 한국 관객들의 특성을 사전에 파악하고 있었던 것으로 판단된다. 앙코르에서는 바그너의 오페라 로엔그린의 3막 전주곡과 브람스의 헝가리안 무곡 1번이 연주됐는데 이는 전날 공연과 순서만 바뀐 같은 레퍼토리였다. 주목할 만한 점은 가장 마지막에 연주된 헝가리안 무곡이었는데, 많은 사람들이 클라우디오 아바도(Claudio Abbado, 1933~)와 빈 필하모닉 오케스트라가 남긴 도이치그라모폰 발매반으로 처음 접하는 것을 전제한다면 이날 로린 마젤은 루바토(지휘자의 자의적인 해석으로 템포를 바꾸는 것)를 적극적으로 개입시켜 몰아침과 늘어짐의 차이를 보다 심하게 벌려놓은 진행을 선보이기도 했다. 아무튼 앙코르 무대에서도 시카고 심포니 오케스트라 특유의 섬세한 표현력과 볼륨의 기막힌 밸런스는 끝까지 유지돼 관객들의 우레와 같은 박수를 받아내기에 이르렀다.

 

 

 

 

불가항력적인 문제로 갑작스럽게 지휘자가 일시 교체된 상황에서도 흔들림 없는 연주를 보여준 시카고 심포니 오케스트라의 공연은 왜 그토록 국내의 팬들이 이 악단의 공연을 기다려왔는지를 입증한 무대였다. 특히 앞서도 계속 언급했지만 환상적인 연주의 관악기군은 시카고 심포니 오케스트라 최고의 자랑거리로 전혀 손색이 없었다. 더불어 여든을 넘긴 로린 마젤이 왜 아직도 나이보다 훨씬 젊은 정력적인 연주를 보여주고 있는지, 그리고 갑작스럽게 지휘봉을 잡은 상황에서도 성공적인 결과를 만들어낸 그가 왜 세인들에게 ‘천재적 거장’이라는 칭호를 받는지를 인증하는 무대이기도 했다. 시카고 심포니 오케스트라의 방한이 이후 언제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아마 많은 애호가들은 이들이 다시 한 번 한국을 찾아줄 것을 기대하지 않을까. 이왕이면 이번에 오지 못한 리카르도 무티의 임기가 끝나기 전에 말이다.

 

 


 

Writer. 배영수

대중음악 전문지였던 52street와 인천시청 인터넷방송기자 출신으로

여러 문화예술 관련 매거진과 언론 등을 통해 좋은 음악을 전하기 위해 노력하는 중이다.

“모든 음악은 장르에 상관없이 통한다”는 신념을 굳게 믿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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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addr | edit/del | reply Favicon of http://blog.naver.com/marsis96 화성인 2013.02.08 18:59 신고

    클래식에는 문외한이고 이 공연을 보진 못했지만 마치 그 현장에 있었던 것처럼 생생한 후기네요. 잘 봤습니다. 올해엔 저도 클래식 공연 좀 보러 다녀야겠습니다.

    • addr | edit/del Favicon of http://superseries.kr 슈퍼시리즈 2013.02.15 11:28 신고

      고맙습니다. 다음에도 로린 마젤과 시카고 심포니 오케스트라 못지 않은 감동의 공연을 준비하고 있을테니 그 때 꼭 뵙겠습니다^ ^

 

시카고 심포니의 역사적인 첫 내한무대, 현대카드 슈퍼콘서트 18 시카고 심포니 오케스트라 2월 6일 수요일 공연이 성황리에 마쳤습니다. 공연이 끝나고 나서도 관객들의 끊임없는 박수 갈채 덕에 시카고 심포니 단원들도 한동안 자리를 뜰 수 없게 만들었던 감동과 여운은 하루가 지난 지금까지도 강하게 남아있는데요. 영하 10도의 추운 겨울날을 따뜻하게 녹인 150여분간의 무대를 통해 다시 한번 시카고 심포니 오케스트라의 명성을 확인할 수 있었던 소중한 순간들. 마에스트로 로린 마젤의 연륜 넘치는 지휘와 시카고 심포니와의 완벽한 앙상블로 더욱 화제가 되었던 현대카드 슈퍼콘서트 18 시카고 심포니 오케스트라의 감동을 클래식 칼럼니스트 김여항님의 글로 다시 한번 느껴봅니다.

 


 

시카고 심포니 오케스트라의 역사적인 첫 내한을 맞이하며 그 기대감 속엔 우려가 팽배했다. 투어를 아끼는 시카고 심포니가 처음으로 선택한 한국 방문에서 2010년부터 단체를 이끌어 온 리카르도 무티와의 조합이 결국 무산됐기 때문이다. 리카르도 무티의 건강 악화를 이유로 우여곡절 끝에 투어의 지휘봉을 내려놓기로 결정되면서 리카르도 무티의 특색을 여실히 볼 수 있는 스트라빈스키의 발레 모음곡 ‘요정의 입맞춤’ 중 디베르티멘토와 부조니의 ‘투란도트 모음곡’이 모차르트 <교향곡 41번 ‘주피터’>로 변경이 되었다.

 

 

 

 

리카르도 무티를 대신하여 아시아 투어를 지휘하게 된 로린 마젤은 1973년 처음 시카고 심포니와 연주한 후 그 뒤로 객원으로 호흡을 맞춰 왔기에 그들의 조화에 대한 안정감에 의문의 여지는 없었으나 자주 내한하여 우리 앞에 모습을 보인 친근한 거장, 마젤과의 조우에 큰 호기심을 갖는 음악 애호가들이 다소 적은 듯한 분위기가 피부로 느껴졌었다. 그러나 빈 자리가 보이지 않을 정도로 꽉 찬 객석으로 청중은 최고의 오케스트라에 기대감을 전했고, 늘 암보로 연주하는 영원한 거장의 풍모는 시카고의 사운드를 여실히 드러내면서 그 가운데 우뚝 선 엄청난 존재감을 내보였다.

 

 

 

 

모차르트의 교향곡 중 가장 장대하여 그 별명 또한 ‘주피터’로 붙여진 41번. 브람스 교향곡을 앞두고 작게 편성되어 대열하고 있는 오케스트라 사이를 느긋하게 걸어 나온 마젤은 나오자마자 비장하게 지휘봉을 들고 소리를 뽑아내는 대신 청중을 향해 손을 흔들며 인사를 건넸다. 보면대 없이 오케스트라를 마주한 마젤이 뽑아낸 사운드는 첫 순간부터 그 자체로 놀라움을 자아냈다. 정확한 사운드의 진수를 보여주겠다는 듯 마젤은 매우 진중하고 차분한 템포로 ‘주피터’의 시작을 열었다. 놀라울 정도로 차분한 템포로 ‘주피터’의 음 하나 하나를 쌓아나가는 이들의 연주를 들으며 모차르트의 경쾌함 속에 가려져 있는 거대한 구조가 수면 위로 빠르게 떠오름을 느꼈다.

 

피치가 다소 높게 들리는 시카고 심포니 오케스트라의 사운드는 명징하고 정확했으며, 실내악을 연주하듯 악기의 한 음 한 음이 선명하게 떠오르면서도 고도의 유기적인 조직력을 보여주었다. 휘몰아치듯 유려하게 흘려 보내버리지 않으면서 매끈한 소리로 아기자기함을 극대화시키지 않으면서도 곡의 구조를 명확하게 드러내면서 그 안에 악센트 처리와 다이내믹 표현을 자유자재로 적재적소에 드러내는 해석은 오케스트라 자체의 연주력과 모차르트 교향곡의 본질을 줄타기 하면서 판단할 수 있게 만들었다. 약음기를 낀 채 연주하는 2악장에서는 현의 정제된 사운드를 여실히 드러냈고, 목관들은 선율을 주고받으며 각자의 따뜻함을 최고로 발휘하여 하나의 음색으로 어우러지는 조화력을 보여주었다. 정제된 익살을 보여주는 3악장을 지나 4악장에서는 밀도 높게 조직적으로 짜여져 단단한 구성력을 보여주는 현악기의 능력이 극대화되어 나타났다. 현악기의 소리 하나 하나가 통통 튀어서 생명력을 얻으면서도 톱니바퀴처럼 맞아떨어지는 현악기의 조직력은 이 시대 오케스트라들이 지향하는 기계 같은 정확함과 민첩함의 표본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였다. 오케스트라의 마지막 C음이 산뜻하게 울리자 말꼬리를 잡아 물듯 브라보 소리가 노래처럼 경쾌하게 받아 치면서 1부가 끝났다.

 

 

 

 

1부에서는 절제되고 이성적인 모습을 보여주었다면 브람스 교향곡 2번을 연주하는 2부에서는 마젤의 손아귀에서 자유자재로 미끄러져가는 흐름을 보여줄 지가 관전 포인트였다. 목관과 저음 현악기의 진중한 선율 끝을 현의 고음이 되받고, 다시 목관이 그 선율을 받고, 이어 전체 오케스트라의 유려한 선율이 끝없이 이어지면서 브람스 교향곡이 시작되었다. 브람스에서도 구조를 명확하게 드러내고, 건축적인 구성을 중요시하는 이지적인 면모가 빛을 발했다. 곡을 손아귀에 꽉 쥐고 있는 거장의 위풍당당한 면모는 이 유명한 레퍼토리를 군더더기 없이 담백하게 보여주었다. 휘몰아치는 격정을 통해 카타르시스를 느끼길 기대하는 청자에게는 다소 심심했을 수 있겠으나 기름기 낀 모차르트, 화려한 모차르트라는 군더더기에 질려 있는 청자에게는 그 불만을 해소시킬 법한, 자신이 들은 실연 중에 최고로 꼽을 수 있을 법한 모범적인 연주였을 것이다. 옥타브를 건너 뛰어 도약하는 주제가 다시금 반복할 때는 장엄함과 비장함을 폭발시키다가, 다시 그 차분한 정서를 잃지 않는 마젤의 지휘는 한 순간도 긴장을 늦출 수 없게 하는 치밀함이 내재되어 있었다. 모차르트 교향곡에서는 시카고 심포니의 현악 사운드가 어떠한지를 들려주었다면, 브람스 교향곡에서는 시카고 심포니의 목금관이 과연 이 시대의 최고라 자부할 수 있음을 내비쳤다.

 

수십 년 동안 파트를 지키고 있는 목금관 주자들의 오랜 경력에서 나오는 안정감 있는 소리, 그리고 이를 받쳐 주는 현악의 기민함을 듣고 앉아 있자니 자신만의 사운드와 전통을 만들어내려는 미국 특유의 정서가 20세기 동안 공고해져서 유럽의 오케스트라와는 또 다른 그들만의 정통 사운드를 가지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각 파트 간의 하모니에 집중하는 그들의 능력은 곡 전체에 특유의 안정감을 부여하였고, 독창적인 해석이나 과장된 표현 없이도 믿음직한 분위기를 형성하면서 오케스트라와 지휘자, 청중 간의 긴밀한 호흡을 이끌어내면서 최고의 집중력을 만들어 나갔다. 마지막 4악장에서는 다소 템포를 당기면서 가느다란 선율이 모이다가 결국에는 폭발적인 에너지를 쏟아냈다. 그야말로 거장의 치밀함이 독창성을 과시하지 않으면서도 천재성을 발휘할 때 명문 오케스트라의 안정된 호흡과 만나 어떠한 시너지 효과를 발휘할 수 있는지 보여준 것이다.

 

 

 

 

여든이 훌쩍 넘은 노장은 커튼콜을 최소화하면서 바로 앙코르 곡으로 넘어갔는데, 자주 영웅적으로 드라마틱하게 앙코르 곡으로 연주되곤 하는 브람스 헝가리 무곡 1번에서 마젤은 루바토를 군데군데에 과하게 넣는 자의적인 해석으로 이 곡의 서정성을 한껏 보여주었다. 이어 시카고 심포니의 바그너를 경험하지 않고는 돌려보내지 않겠다는 듯 ‘로엔그린’의 3막 전주곡이 힘차게 울려 퍼졌다.

 

숄티가 무리수를 두면서 바이로이트로 데려가고자 했던, 전임 상임지휘자들이 지극히도 자부심을 느꼈던 시카고 심포니의 화려한 금관이 그 위용을 뽐냈다. 미국 오케스트라 최초로 음반을 낸 시카고 심포니의 첫 앨범에 수록된 레퍼토리이기도 한 바그너의 ‘로엔그린’ 3막 전주곡을 마지막으로 육중한 관과 화려한 현악기가 일사분란하게 움직임을 끝내면서 시카고 심포니 오케스트라는 과연 이 시대가 원하는 사운드를 들려줄 수 있음을 증명해냈다.

 

 


 

Writer. 김여항

 

2009년 월간객석에서 음악 기자를 시작한 후

현재는 미학을 공부하며 프리랜서로 음악 관련 글을 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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