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퍼콘서트 03 빌리 조엘/아티스트 정보' (5건)

 

빌리 조엘과 엘튼 존은 이름만 들어도 알만한 팝 아티스트입니다. 피아노를 치며 노래를 하고 곡을 만들어내는 싱어송 라이터적인 기질을 유감없이 발휘하는 이들이 서로 만난다면 어떤 공연이 될지 상상만으로도 궁금해집니다.

 

 

 

 

팝 음악을 대표하는 두 거장의 만남

 

빌리 조엘은 ‘Uptown Girl’과 ‘Piano Man’ 등 수많은 히트곡을 남긴 팝의 거장이며 엘튼 존은 영국 런던의 작곡가이자 피아니스트로 작곡가 최고의 명예인 명예의 전당에 입성한바 있습니다. 엘튼 존과 빌리 조엘, 이 두 거장은 지난 1994년 첫 작업을 함께 했으며 2003년 이들의 공연은 24회 전석이 매진되는 등 큰 화제를 모았습니다. 지금까지도 둘은 공연을 함께하고 있는 아티스트로 알려져 있죠.

 

 

빌리 조엘과 엘튼 존, 2007년 공연의 난항

 

하지만 두 사람의 유명인이 함께 공연하는 경우는 한 사람이 공연하는 것 보다 더 힘들 수 있습니다. 두 명 중 한 명이라도 건강에 문제가 생기면 공연의 의미는 없어지기 때문에 둘의 각별한 건강상의 주의가 필요하기 때문이죠. 빌리 조엘과 엘튼 존이 2009년 5월부터 두 달 동안 전 세계를 돌며 합동공연을 벌이던 중 7월 빌리 조엘의 건강에 이상이 생겼습니다. 극도로 피로함을 호소하며 신종 인플루엔자 증상을 보인 것입니다. 의사의 72시간 내에 공연하면 안 된다는 진단에 엘튼 존과의 뉴욕 합동 공연을 연기하기에 이르렀습니다.

뒤 이어 11월 엘튼 존도 심각한 독감과 대장균 감염으로 예정 되어있던 콘서트를 연기했습니다. 엘튼 존은 미국 시애틀과 포틀랜드에서 빌리 조엘과 함께하는 콘서트를 예정하고 있었으나 이를 모두 연기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하지만 이들은 여전히 환상의 커플로 불리며 공연을 지속하고 있습니다. 빌리 조엘과 엘튼 존의 공연이 앞으로도 지속되길 바래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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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퍼콘서트를 기획할 때 가장 고심하는 것은 아티스트의 섭외입니다. 이는 무엇보다 중요하고 신중한 일이죠.

 

 

 

 

레전드급 아티스트를 잡아라!

 

현대카드 슈퍼콘서트 02의 주인공이 비욘세였던 만큼 슈퍼콘서트 세 번째 주인공은 이에 뒤쳐지지 않는 아티스트여야 했습니다. 그리고 고심 끝에 결정한 아티스트가 바로 빌리 조엘 이었습니다. 관객의 타겟층과 공연의 퀄리티를 우선적으로 고려했을 때 한국인의 정서에 깊이 자리잡은 빌리 조엘은 관객에게 깊은 감동을 주는 콘서트를 만들어낼 최고의 아티스트였습니다. ‘Piano Man’과 ‘Honesty’등 주옥 같은 그의 음악은 11월 이라는 쌀쌀한 가을 날씨에 따듯한 온기를 불어 넣어 줄 공연이 될 것이라는 판단도 있었습니다.

이런 현대카드의 선택 결과 빌리 조엘의 공연은 대성공을 거두었습니다. 공연을 마친 후 빌리 조엘과 참석한 관객 모두 뜨거운 감동을 느끼기까지 했으니 더 이상 말이 필요 없는 공연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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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iano Man’ ‘Uptown Girl’로 유명한 싱어송라이터 빌리 조엘은 비틀즈 식의 음악스타일과 브로드웨이의 멜로디를 조화시킨 음악으로 대중을 사로잡은 장본인입니다. 하지만 황홀한 음악적 성공 뒤에는 세 번의 이혼, 자살시도 등의 아픔이 이면에 자리잡고 있습니다.

 

 

 

 

가슴 아픈 세 번의 이혼

 

빌리 조엘은 1982년 첫 번째 아내 엘리자베스 웨버와 9년 결혼생활에 종지부를 찍고 이혼했으며 1986년에는 두 번째 아내 모델 크리스티 브링클리와 결혼했지만 8년만인 1994년에 이혼했습니다. 그리고 지난 2009년 환갑이 넘은 나이로 황혼 이혼을 했습니다. 33세 연하의 나이인 아내 케이티 리 조엘과 5년 만에 파경을 맞은 것입니다. 이 이혼으로 빌리 조엘은 세 번에 이르는 이혼 경력을 갖게 되었습니다.

 

 

빌리 조엘, 파란만장한 음악인생을 살다

 

지금은 만인의 사랑을 받고 있는 빌리 조엘이지만 그가 성공하기까지는 많은 어려움이 있었습니다. 1967년 빌리 조엘은 존 스몰과 듀오 아틸라를 결성하고 앨범을 발표합니다. 하지만 별 반응을 얻지 못했고 빌리 조엘의 첫 번째 아내인 엘리자베스와 사랑에 빠지게 되면서 듀오는 해체를 맞이하게 되었습니다. 침체기의 빌리 조엘은 한동안 실의에 빠져 자살시도를 하게 되고 정신과 치료까지 받기 시작했습니다.

그 후 그는 재기해 앨범 ‘Cold Sprint Harbor’를 발표하고 좋은 반응을 얻지만 곧 소속사와의 분쟁에 들어가 또다시 혼란을 겪습니다. 하지만 이어 내는 앨범들의 반응이 연달아 좋았고 1978년도에는 음반 ‘52nd Street’로 한 달에 2백만 장의 판매고를 올리는 기염을 토했습니다.

그의 이러한 성공은 그냥 찾아온 것이 아니었습니다. 어려움이 찾아와도 다시 일어나는 그의 도전정신이 있었기에 지금의 자리에 설 수 있었던 것입니다. 빌리 조엘, 그의 끈기에 박수를 보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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팝 음악만으로 뮤지컬 레퍼토리를 완성시키는 것은 상당히 어려운 일이죠. 빌리 조엘이 작곡한 26곡의 노래가 브로드웨이 뮤지컬 ‘Moving Out’으로 제작된 사연을 소개합니다.

 

 

 

 

그의 음악, 무빙 아웃과 만나다

 

지난 2002년 빌리 조엘의 음악과 에미상 수상 안무가인 트윌다 다프가 연출하는 댄스 뮤지컬 ‘Moving Out’이 완성되었습니다. 무빙 아웃은 보통 뮤지컬과 다르게 색다른 구성을 보여 뮤지컬계의 주목을 받았습니다. 한쪽 무대에선 빌리 조엘의 모창을 연주하는 라이브 콘서트를 진행하고, 다른 한쪽에선 모던 댄스 공연을 선보여, 뮤지컬계의 새로운 장을 열어 준 것입니다.

보통 뮤지컬보다 음악적 중요도가 높은 ‘Moving Out’은 빌리 조엘의 아름다운 곡들 덕분인지 브로드웨이에서 폭발적인 인기를 얻으며 토니상을 받었습니다.

 

 

 

 

뮤지컬의 사랑을 받을 수 밖에 없는 빌리 조엘

 

클래식 피아니스트였던 아버지와 뮤지컬 가수였던 어머니의 밑에서 자란 빌리 조엘은 어린 시절부터 자연스럽게 뮤지컬 음악을 접했습니다. 그런 탓에 그는 늘 피아노를 옆에 두고 살았으며 어머니의 뮤지컬과 퍼포먼스적인 느낌이 가미 된 음악을 접했습니다. 그래서 그의 음악에는 뮤지컬적인 요소가 숨어 있었던 것입니다. 극적인 요소가 가미된데다 가장 대중의 포인트에 맞는 그의 음악은 뮤지컬 무대 위에 오르기 충분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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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9년에 태어난 빌리조엘은 1973년 Soul, Pop, Rock을 결합된 앨범 ‘Piano Man’을 발표해 큰 인기를 얻기 시작, 이후 ‘더 스트레인저’, ‘글래스 하우시즈’등의 히트 앨범을 발표하며, 1999년 로큰롤 명예의 전당 '공연자' 부문에까지 오른 톱스타입니다. 최근에는 지진으로 인해 인명피해가 많았던 아이티를 위해 ‘We are the world’ 녹음에 참여하는 등 활발한 활동을 보여주고 있을 뿐 아니라 시간이 흐른 지금까지도 전 세계인들로부터 끊임없는 러브콜을 받고 있는 빌리조엘을 2008년 11월 25일 현대카드 슈퍼콘서트 03 빌리조엘 내한공연 에서 만났습니다.

 

 

 

 

빌리조엘이 ‘Piano Man’으로 불러지기까지

 

‘현대카드 슈퍼콘서트III 빌리조엘 내한공연’의 주인공 빌리조엘에게 'Piano Man'첫 히트곡이며, 팬들로 하여금 그가 항상 피아노 앞에 앉아 있는 모습으로 그려지게 했습니다. 사실 그가 피아노 맨이 된 것은 우연이 아닙니다. 뮤지컬 배우인 엄마와 피아노를 사랑하는 아버지 사이에서 태어난 그는, 걸음마와 동시에 피아노를 배웠습니다. 15세 무렵엔 이미 모든 건반 악기를 통달한 빌리조엘이었기에, 그의 부모는 빌리조엘이 모짜르트가 되기를 기대했습니다.

하지만 빌리조엘은, 1964년 에드 설리반 쇼(Ed Sullivan Show)에 출연한 비틀즈(Beatles)를 본 후 대중음악의 길을 선택합니다. 그룹 에코스(Echoes)에서 활동하는 한편 레코딩 세션으로 일하던 그는 1967년에는 밴드를 탈퇴하고 로큰롤 그룹 헤슬스(Hassles)에 가담, 2장의 앨범을 발표합니다. 그러나 상업적으로는 실패한 헤슬스(Hassles)는 1969년 해체하며, 오르간과 드럼으로만 구성된 Attila라는 이름으로 듀오를 결성합니다. Attila는 빌리조엘이 같은 멤버였던 존의 아내 엘리자베스와 사랑에 빠짐으로써 불가피하게 다시 해체를 맞이합니다.

 

 

 

 

Attila가 실패로 돌아간 뒤, 빌리조엘은 생계를 위해 Changes라는 잡지에 록 비평을 쓰기도 했고, 광고 음악을 연주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지속되는 어려운 생활고에 빌리조엘은 극심한 우울증에 빠졌고, 술에 마시기 시작하였으며, 결국 자살기도까지 하게 됩니다. 이후 미도우브룩 병원에 입원하여 우울증 치료를 받고 1971년 다시 음악을 연주하기 시작합니다. 악보출판사도 겸하는 매니지먼트 패밀리 프로덕션과 계약한 빌리조엘은, 얼마 지나지 않아 프로덕션의 주선으로 레코드사와 계약을 맺습니다.

데뷔 앨범을 발매한 뒤로 그는 소규모 투어를 진행합니다. 그리고 1973년, 필라델피아의 라디오에서 Captain Jack을 라이브로 연주한 버전이 전파를 타기 시작하면서, 빌리조엘은 콜롬비아 레코드사와 계약을 하게 됩니다. 이때 콜롬비아 레코드사를 통해 'Piano Man'이 발표되며, 1974년 봄에 차트에서 27위까지 기록합니다.

'Piano Man'은 그가 클럽에서 연주하던 경험을 바탕으로 만든 노래로, 그의 아픈 시련의 시간이 없었더라면 이 노래도 존재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현대카드 슈퍼콘서트 03 빌리조엘 내한공연’을 통해 만난 그의 음악은 그 동안 쌓아온 연륜과 음악에 대한 사랑을 피아노 선율에 담아낸 한편의 드라마였습니다. 그가 Piano Man이라 불리는 이유는 아마도 그것은 그의 최대의 히트곡인 'Piano Man'과 대중들에게 많은 사랑을 받는 피아노 앞의 빌리조엘의 모습, 그의 인생에서 항상 함께했던 피아노와의 질긴 인연 이 세가지가 만들어 낸 그만의 심볼인 것입니다.

사진제공 ㈜비포에이치엔터테인먼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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